할리 오토바이로 세계를 도는 老人
"노후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쓸데없는 걱정들이 많아서 그렇지 굶어죽을 염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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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탄 구만 삼천 톤의 루미나스 호는 홍해의 훈김을 헤치며 요르단의 아카바 항 쪽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드넓게 누워있는 회청색의 바다는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뱃전을 스치는 단조로운 물결소리와 엔진의 은은한 진동이 오층 선실 발코니에 앉아있는 내게 전해져 왔다.
  
  나는 순간순간 변하는 바다의 모습이 좋았다. 어느 날은 바람 한 점 없이 진공 속 같은 신비한 기운에 감싸인 납빛의 바다다. 또 어떤 날은 하얀 갈기를 얹은 파도가 점점이 보이는 파란 바다였다.
  
  며칠 전 어둠이 수평선 저쪽에서 내려와 저녁과 섞일 무렵이었다. 아내와 배의 2층에 있는 식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 가까운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몇 명의 한국인들이 우리 부부와 합석을 하자고 청했다. 외국인들 사이에 우리 부부만 있는 게 쓸쓸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 자리에는 배 안에서 몇 번 보았던 낯익은 칠십대 쯤의 특이한 부부가 앉아 있었다. 그 남자의 행동은 특이했다. 인디언처럼 이마에 띠를 묶고 노란 깃털 하나를 귀 옆에 꽂고 다녔다. 외국인들과도 격이 없이 사귀는 모습이었다. 그가 외국인 남자를 향해 손가락으로 총을 쏘는 시늉을 하면서 인사를 한다. 그걸 본 외국인 노인은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처럼 총에 맞고 바닥에 쓰러지는 연기로 화답을 하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바디 랭귀지와 마음의 언어로 그는 외국인들과 영혼을 교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는 노인 부부였다. 쉽게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식사 도중 아내가 내 옆에 있는 그 활달한 노인에게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죄송하지만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건데요, 뭐를 하시며 어떻게 살아오신 분인지 묻고 싶어요.”
  
  “저요? 젊어서 부산의 지하상가를 얻어 악세사리를 팔았어요. 그러다가 금반지와 시계를 파는 가게를 하기도 하구요. 대중없이 이것저것 많이 해 봤습니다. 택시영업을 하기도 하고 집을 지어 팔기도 했죠. 그러다가 나이 사십부터 칠십인 지금까지 미친 듯이 놀기만 해 왔습니다. 이번 세계를 도는 배에도 단 이틀 만에 결정을 하고 올라탔습니다.”
  
  “뭐하고 노셨는데요?”
  아내가 다시 물었다.
  
  “저요? 저는 사십대 초부터 오도바이 할리 데이비슨에 미친 사람이에요. 세상 곳곳을 할리만 타고 다녔어요. 처음에는 우리나라를 돌아다니고 그 다음은 일본 전체를 돌았죠. 그러다가 육십대 중반에는 미국 전역을 돌았어요. 전 세계를 할리를 타고 도는 게 나의 꿈이죠. 이제 남과 북의 통행이 자유로워지면 부산에서 시작해서 파리까지 내 할리를 타고 갈 생각입니다.”
  
  인간답게 사는 것 같았다. 부자도 아닌 것 같았다. 아무나 용기를 내어 그렇게 살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저는 할리에 미쳤어요. 그걸 타는 복장도 여러 스타일인데 저는 저는 남과 의상이 겹치는 게 싫어서 옷을 사다가 제가 또다른 장식을 붙여 나만의 개성 있는 복장을 만듭니다. 그런 특색있는 가죽 옷을 입고 헬멧을 쓰고 고글을 쓰고 다니면 남들은 내 나이를 몰라요. 이십대고 삼십대고 다 친구가 돼요. 젊은 아가씨들이 저보고 오빠라고 해요. 그렇게 젊어지는 거죠. 혼자 묵직한 할리를 타고 해변가의 도로를 달리면서 바람을 온 몸에 맞는 순간이 내게는 행복 그 자체예요.”
  
  “삶은 여러 방면에서 끈으로 우리를 묶고 있는데 어떻게 그렇게 잘라낼 수가 있었죠?”
  내가 물었다. 노후생활비에 대한 걱정이 있을 수도 있고 자식이나 여러 가지 크고 작은 파도가 인생에는 있기 마련이었다. 어느날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산 속으로 들어가 중이 되듯이 그는 할리 데이비슨이라는 오토바이의 길로 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는 아들을 대학 졸업을 시키면서 더 이상 아버지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말라고 했어요. 심지어 결혼문제도 다 알아서 하고 청첩장 돌릴 무렵 어느 예식장으로 몇 시까지 오라고 연락하라고 했죠. 노후 걱정도 하지 않습니다. 지금 나이가 칠십인데 정 없으면 국가에서 노령연금이라도 나옵니다. 쓸데없는 걱정들이 많아서 그렇지 굶어죽을 염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어떤 각오로 세계의 바다를 흐르는 배에 탄지 알 것 같았다. 젊어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어느 순간부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사는 것, 그래야 인생을 가장 가치 있게 보내는 게 아닐까. 나중에 다른 사람을 통해 그 노인에 대한 얘기를 하나 더 들었다. 그는 사십대 초 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새로운 인생을 부여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암이 그의 새 삶을 만들어 준 것 같다.
  
  
  
  
  
  
  
  
  
  
  
  
[ 2019-05-12, 00: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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