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紅海) 위에서 받은 세 메시지-일, 가족, 복음
걱정이 없어지니까 무료해졌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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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얗게 타오르는 한낮의 태양이 짙푸른 바다로 쏟아지고 있었다. 하얀 갈기를 얹고 오르내리는 파도에 사방으로 튕겨지는 빛의 입자들이 유리조각 같이 날카롭다. 뱃전에는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나는 에티오피아 쪽을 보면서 선실의 발코니에 앉아 있다. 싱가포르에서 배를 탄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내가 탄 배는 인도양을 건너 아라비아해와 에덴만을 거쳐 홍해를 북상하고 있다.
  
  어느 날 집을 훌쩍 떠나 먼 길을 가는 걸 나는 임종(臨終)연습같이 생각하기도 한다. 죽음도 그렇게 알 수 없는 미지의 먼 곳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닐까. 얼마 전 아내가 먼저 죽은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대학을 같이 나오고 눈 덮인 강가의 방갈로를 빌려 함께 법서(法書)를 읽던 친구였다. 비슷하게 삼십 년 이상 변호사 생활을 해 왔다.
  
  그가 운영하던 로펌의 변호사들을 내보내고 혼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남은 인생을 자식들이 있는 뉴질랜드로 가려고 한다는 소리를 전해 들었다. 그는 친구들과의 인연도 끊은 것 같았다. 친구들은 그의 행동을 인정하고 조용히 받아들이자고 했다. 각자 자기를 정리하는 시간들이 된 것 같다.
  
  대학교수를 하던 한 친구는 분주하게 이 모임 저 모임을 주재했었다. 그가 어느 날 사라졌다고 한다. 동양의 고전 ‘장자(莊子)’를 싸들고 은거에 들어갔다고 했다. 집과 도서실만 오간다는 얘기가 들렸다.
  
  인생의 황혼을 맞아 어둑어둑한 저녁이 내리기 시작한 우리들은 각자 나름대로 삶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배를 타고 세계의 바다를 한번 건너보고 싶은 게 들어있었다. 십여 년 전부터 조금씩 나누어 실행했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항구에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넜다. 하와이와 타히티 그리고 뉴질랜드까지 갔었다. 드넓게 누워있는 태평양을 보며 항해하는 순간은 아무런 말썽도 걱정도 없었다.
  
  걱정이 없어지니까 무료해졌다. 사는 게 아닌 것 같은 역설적인 느낌이 들었다. 내가 읽고 있었던 ‘희랍인 죠르바’의 주인공 죠르바가 책 속에서 내게 말했다. 삶은 말썽을 찾아 혁대를 조이고 세상에 나서는 것이라고. 나는 거기서 말썽을 찾아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일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다시 틈을 내서 평택에서 LNG선을 얻어 타고 동지나해를 건넜다. 최인훈의 소설 ‘광장(廣場)’에 나오는 이명훈이 배를 타고 이동했던 경로였다. 그가 배에서 바라다보던 검은 하늘에 총총이 떠있는 별들을 찾았었다. 주인공 이명훈이 좌익 아니면 우익으로 나누는 한국을 떠나 제3국으로 가는 배에서 추구하던 그 삶의 본질이 무엇일까 생각했었다.
  
  이번에는 싱가포르에서 배를 타고 인도양을 거치고 아라비아 반도 남단을 거쳐 홍해를 북상하고 있다. 이번에 내가 찾는 의미는 뭘까. 낯선 바다 위에서 어쩌다 핸드폰을 한 번 켜 봤다. 내가 살아왔던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한 줄기의 선이다. 나를 찾는 메시지가 딱 한 통 왔다. 내게 사건을 의뢰하려는 오래된 고객이었다. 아직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한다는 데 대해 감사한다.
  
  아들 딸한테서 오는 카톡이 있었다. 인간의 근본은 가족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한 사랑이 아닐까. 끈질기게 내게 메시지로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있다. 그 메시지도 와 있었다.
  
  내가 본 메시지에는 인생의 본질이 잘 정리되어 있는 것 같았다. 노동, 가족사랑, 복음이 그것이었다. 이십대 중반부터 노동을 시작해서 사십 년 동안 일을 해 왔다. 이제부터는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 아니라 남을 위로하고 돕기 위한 노동으로 그 질을 변화시켜야겠지. 무리하게 많은 일은 하고 싶지 않다. 내게 주어진 아주 작은 일을 감사하며 하고 싶다. 아들딸이나 손녀 손자에게도 사랑을 듬뿍 주어야 할 것 같다. 애들이 시간이 나면 같이 이렇게 배를 타고 세상을 흐르는 여행으로 추억 만들기를 해 주면 좋을 것 같다.
  
  남은 시간을 聖書(성서) 연구와 성령(聖靈)의 체험을 깊이 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죽기 전날까지 사색하는 인간이 되고 싶다. 사색하고 글을 쓰고 사색하고 글을 쓰고 그러다가 어느 날 죽음이 와서 이제 가자 하면 미련 없이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밤이 되어 자는 것 같이 그렇게 가벼웠으면 한다.
  
[ 2019-05-12, 18: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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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유의메아리    2019-05-13 오전 9:41
예수믿으시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1935년 乙亥생으로 지금 84세입니다 아직 60대 같으신데 연부역강하신 님의 생각이 부럽습니다 저도 한이없는 인생을 살아왔읍니다 엄선생님께서도 초심을 버리지 마시고 한평생 주님의 뜻대로 살다 가시기바랍니다 주께서 엄선생님을 보호하시고 후회없는 인생을 살게 하시옵소서 우리주님께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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