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바 거리의 아랍인 이발사
남을 즐겁게 해주고 자기도 행복한 것, 그게 진짜 좋은 직업이 아닐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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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4월 20일 나는 한낮의 아카바 거리를 걷고 있었다. 성경 속의 이스라엘 민족이 갈라진 홍해를 건너 도착한 곳이다. 검은 수염의 아랍인들이 길거리에 놓여진 음식점 식탁에서 둥그런 마른 빵을 뜯어 소스에 찍어 먹는 모습이 보였다. 이따금씩 그들의 주식인 둥근 빵을 만드는 빵공장이 보였다. 꼬마 하나가 그 빵을 가득 자루에 담아 짊어지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른 찻잎을 파는 가게가 나왔다. 가게 앞에 차잎이 가득 담긴 푸대자루가 나란히 놓였다. 푸대 자루 중에는 ‘사막에서 따온 차’라는 영어로 쓴 메모판이 꽂혀 있는 것도 있었다. 길거리의 작은 공원이 보였다. 공원 입구의 식탁에는 검은 히잡을 둘러쓴 아랍인 여자가 음식을 내놓고 아이들을 먹이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는 곳은 어디서나 먹고 마시고 웃고 비슷한 모습들로 살아가는 것 같다.
  
  거리 모퉁이에서 노숙자풍의 비쩍 마른 한 남자가 앉아 앞에 있는 다른 남자의 턱수염을 다듬어 주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내가 어린 시절 이발소에서 흔히 보았던 작두 같은 긴 면도칼이 들려있었다. 순간 면도칼 하나를 가지고도 남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들꽃을 보듯 하나의 기쁨을 발견했다.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자기도 즐거운 것 그게 향기 짙은 쾌락이 아닐까. 나는 다시 걸었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길거리에 작은 이발소가 보였다.
  
  “웰컴, 웰컴.”
  길다란 검은 곱슬머리에 코가 우뚝 솟은 아랍인 남자가 부리부리한 검은 눈으로 나를 보며 불렀다. 작은 그 이발소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하우 마치 유로?”
  내가 가격을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손가락을 다섯 개 펴 보였다. 5 유로를 내면 된다는 말이었다.
  “오케이.”
  
  나는 대답을 하고 그가 가리키는 낡은 이발의자에 앉았다. 그 옆의 의자에 눈이 동그란 귀염성 있는 아랍인 꼬마아이가 보였다. 나는 누구냐고 이발사에게 손짓과 표정으로 물었다. 그는 자기 아들이라고 했다. 꼬마는 얼른 서랍에서 바리캉을 꺼내 아버지에게 주었다. 능숙한 조수였다. 부자지간에 협업체제가 되어 있었다.
  
  그런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60년 전 그 또래의 아이 시절로 순간이동을 했다. 어머니는 작은 편물점을 했다. 사람들이 헌 스웨터를 가지고 오면 실을 풀어서 새 옷을 짜주고 품값을 받는 일이었다. 꼬마인 나는 가게에서 어머니 옆에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는 게 좋았고 어머니 일을 돕는 것도 재미있었다.
  
  낡은 실에 양초를 먹이는 게 내 일이었다. 기계바늘에 실이 상하지 않고 부드럽게 통과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초를 먹인 실을 깡통에 감는 것도 내가 했던 일이었다. 그렇게 일을 통해 모자지간에 또다른 절대적인 유대관계가 형성됐었다.
  
  아랍인 이발사는 순식간에 윗머리만 약간 남겨두고 사막처럼 내 머리를 밀어 버렸다. 부리부리한 검은 눈을 번득이며 날이 선 길다란 면도칼로 뒷목과 뺨의 위쪽의 솜털을 긁어냈다. 긴 솔로 목에 붙은 머리를 툭툭 털어내더니 다 됐다고 했다. 옆에 있던 눈이 반짝이는 꼬마는 아버지가 일한 자리를 재빠르게 정리했다.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본 것 같다. 또 아버지와 아들이 행복하게 지내는 것도 보았다. 남을 즐겁게 해주고 자기도 행복한 것 그게 진짜 좋은 직업이 아닐까.
[ 2019-05-13, 18: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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