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韓國人은 노벨賞을 타지 못할까
‘기생충’의 受賞 뒤엔 英國人 영화평론가의 뛰어난 영어 字幕 번역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최근 봉준호 감독의 映畵 ‘기생충’이 칸 映畵祭에서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데에는 유능한 영어 字幕 翻譯家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英國人 영화평론가 다르시 파퀫(Darcy Paquet)씨를 말한다. 그는 2018년에만 한국영화 8편을 飜譯했거나 監修했다고 한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에, 영화평론을 할 만큼 영화에 대한 지식이 뛰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映畵는 日常의 生活言語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外國人의 情緖를 이해하고 그들의 心琴을 울릴 飜譯을 하기란 至難한 일이다. 다행히 우리말과 映畵에 능숙한 英國人을 만나 칸에서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고 본다.
  外國人을 설득할 만한 日常의 生活言語를 飜譯하기도 어려운 법인데, 만일 이것이 自然科學분야나, 數學, 文學의 분야로 넓어진다면 우리의 事情은 어떻게 될까.
  日本人이 노벨상을 탈 때마다, 많은 韓國人들은 부러워하고 배 아파 한다. 日本과 韓國이 國力의 差異가 얼마나 된다고 그런가 하고 말이다. 日本은 지금까지 物理, 化學, 生理-醫學 등 과학방면에서 21명, 文學 2명, 平和 1명 등 2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日本系 外國人을 포함하면 27명이나 된다. 한국은 과학, 문학 분야에서 단 한 사람의 수상자도 배출하기 못했다.
  그 이유가 뭘까. 日本人이 韓國人보다 知性과 品性이 優秀해서일까, 아니면 학문적 깊이가 너무 차이가 나서일까. 학문적으로 韓國이 日本만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정도로 下手같지는 않은데 말이다. 아직껏 누구도 이를 穿鑿하여 明白히 밝혀낸 사람이 없어서 분명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위 映畵의 例에서처럼 言語의 문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學問이건, 文學이건, 政治건 다 마찬가지다. 자신의 思想, 實力을 나타낼 수 있는 手段은 말과 글이다. 말과 글을 통해 疏通을 해야 남들이 業績을 認定해준다. 예컨대 어떤 韓國의 詩人이 神도 讚嘆할 만한 作品을 썼다고 치자. 韓國人은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그 價値를 알아줄지 모른다. 그러나 노벨상을 주관하는 외국인들도 똑같은 깊이로 우수성을 이해할까? 英語를 쓰는 英國이나 美國人들이 感動할까? 數値로 나타나는 과학적 成果도 마찬가지다. 문학작품보다는 쉽겠지만, 外國人이 자연스럽게 首肯할 만큼 그 나라 말과 글로 잘 表現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런 작업을 日本처럼 잘 해왔다고 자신할 수 있나?
  日本은 16세기 이후, 鎖國政策을 쓰는 동안에도 나가사키, 사카이 같은 都市를 열어두고 西洋의 科學文明을 받아들였다. 그 대표적인 결과가 바로 戰國時代의 日本을 統一하고, 壬辰倭亂 때 朝鮮人을 혼 뺀 鳥銃이다. 그리고 明治維新이 일어나기 전부터, 네델란드語, 英語를 가르치는 곳이 생겨났다. 福澤諭吉로 代表되는 日本의 近代 思想家들은 일찍이 외국에 留學을 가서 西洋의 文明을 접하고 이를 漢字로 表記하는 수많은 單語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수많은 近代 文明語는 90% 이상 日本人 작품이다. 지금 韓國, 中國, 臺灣 등이 그 덕을 보고 있다. 飛行機, 地下鐵, 汽車, 軍隊, 社會, 文化, 運動, 鐵道, 地下鐵 등. 이런 單語는 鳥足之血이다. 生理學, 物理學, 化學, 工學, 哲學이라는 말 그 自體와 그 속에서 쓰이는 수많은 用語들이 그 결과물이다. 이렇듯 길게는 수백 년, 짧게는 150년 이상 先進外國의 文物을 접하면서 日本人은 漢字를 이용하여 수많은 文明語를 만들어냈고, 이를 온갖 學問에 適用해서 넓고 깊게 蓄積해놓았다. 그 결과, 外國人은 正確히 定義(definition)가 내려진 單語로 作成된 日本人의 論文을 쉽게 英語로 置換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日本人이 196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産業化에 寄與한 사실은 否認할 수 없다. 請求權 資金과 技術 供與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수백 년 蓄積해온 과학 실력 뿐 아니라, 문학, 철학, 법률 등 인문학 지식을 우리가 거저 베껴오다시피 하여 借用한 것들이 어디 한둘인가. 量과 質면에서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結論은 말과 글이다. 우리 韓國人은 4350년의 歷史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한다. 그러나 오랫동안 글자 없이 살았다. 다행히 紀元前後 무렵, 漢字가 들어와 吏讀, 韓國式 漢文, 中國式 漢文으로 發展하면서 중요한 표기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1443년 세종대왕은 세계가 인정하는 우수한 글자를 만들어냈지만, 汎用한지는 100년 밖에 안된다. 우리말사전이 편찬된 지는 80년에 불과하다. 文明語로 定着하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다. 한글은 현재로서는 優秀한 發音記號에 不過한 時點이다. 飛行機는 ‘날틀’이라고 하자. 그럼 20만개가 넘는 비행기 部品은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것인가. 한글 이름을 붙이면 외국인이 알까? ‘現象學的 方法論’은 무엇이라고 한글화할 것인가. 한자말을 한글로만 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글자는 읽을 수 있겠지만, 무슨 뜻인지 모르는 ‘言語 無識者’를 양산할 공산이 크다.
  앞으로 수천 년 동안, 수많은 天才들이 태어나 한글로 문학작품, 과학, 철학서적을 펴내고 이를 읽지 않고는 世界人이 학문을 논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를 때까지, 우리는 英語와 직접 交互作用을 할 수 있는 漢字와 한자말을 적극 사용하고 勸獎해야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의 業績과 思想이 정확히 저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한국어를 사용하는 학자나 작가는 100년이 가고, 200년이 가도 노벨상을 탈 수 없다고 본다.
[ 2019-06-06, 15: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一川    2019-06-07 오전 8:20
김대중 슨상님의 노베루펭화상...을 보니

일본을 부러워하거나 미워할 것도없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본시 탐구심이 강하고 모든 일에 진지해서 당연히 노벨상이 많이 나옵니다.

우리를 돌아보면
진지하게 하려면 대충 끝내라고 하고
탐구하려면 쓰잘데기 없는 짓 한다고 쥐어 박고 ...

그러니 노벨상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입에 들어오리오

또 한가지
우리 민족의 공통점이 무엇인가? 거짓말입니다.
사기범죄가 일본에 3배라고 합니다.
아마 세계 최고가 아닐까 하는데
그러하니 슨상님의 사기펭화상이 가능했던 것이지요.

뭐든지 잘하는 게 상을 탑니다.

또 하나 잘하는 게 있는데
'따라쟁이'

남들 하면 꼭 따라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남들이 하는대로 따라갑니다.
따라오지 않으면 쥐어 팹니다. 튄다고~!


.

기껏 고은이란 자를 맨날 올리던데
미투에서 보았듯이
그따위 영혼으로 무슨 세계인을 울릴 시를 썼겄소~

.


   白丁    2019-06-06 오후 8:04
우리나라엔 위대한 김대중의 빛나는 노베루 평화상이 있다.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