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가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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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70~1980년대 초 완행버스 안에서 자주 보았던 풍경이다.
  "승객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전과 18범으로 어제까지 감옥살이를 하다 나왔습니다. 이제는 XX 교회 OOO 목사님의 전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구습을 벗고 새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나 전과자라는 낙인이 찍혀 취직도 안 되고 당장 먹고 살 길이 없어 이렇게 여러분 앞에 섰습니다. 보잘 것 없는 물건이지만 천 원짜리 한 장만 보태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곤한 여행길 안녕히 가십시오."
  인상이 고약한 젊은이는 팔뚝에 새긴 문신을 드러내며 승객을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맞추며 껌을 내밀었다.
  
  2.
  이웃 마을에 별명이 '얄라궂이'라는 불량배가 있었다. 인근 마을에서 아무도 갚지 못하는 꼴통이었다. 어느 날 '얄라궂이' 아버지가 너무 화가 나서 몽둥이를 들고 "이놈아, 동네 부끄러워 못 살겠다, 너 죽고 나 죽자!" 하며 아들을 패 죽일 듯이 설쳤다. '얄라궂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동네 아낙네들이 잡담하는 우물가로 도망갔다. 우물 앞에서 길바닥에 금을 그으며 뒤쫓아오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 금을 넘어오면 내 새끼!"
  이런 불량배들이나 동네에서 소문난 망나니들은 삼청교육대에 다 잡혀갔다. 삼청교육대에 억울한 사람도 많이 잡혀갔지만 '잡혀가서 속이 시원하다'는 불량배도 많았다.
  
  [실형받은 유성노조원 2명, 23차레 폭행, 모욕, 前科 있었다.]
  오죽 노조원의 횡포가 심했으면 유성기업 직원 150명이 "폭행 노조원의 보복이 두렵다!"며 탄원서를 냈을까?
  
  [파업 동참 안 했다고 노조원 집단 구타!]
  [전국 공사 중단시키는 노조, 노조 권력 특별대우하는 법원]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악명 높았던 '삼청교육대'가 생각난다.
  
  
[ 2019-06-12, 16: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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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19-06-12 오후 9:18
삼청교육대 – 언론통폐합조치와 더불어 國保委시절 全斗煥 장군의 위대한 치적 중의 하나이지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할 수준이 못되는 천한 족속들에게는 주어진 자유 회수하고 강력한 군사정권에 의한 철권통치로 다스려야 합니다. 법 안지키는 놈들은 군화와 몽둥이로 밟고 두들겨 패서 법 지키게 해야합니다. 노비근성 이지요. 법 잘 지키는 힘 없는 국민들이 평안히 살 길은 그런 정권이 들어서는 길밖에 없습니다. 군사혁명을 고대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천영수    2019-06-12 오후 4:38
'삼청교육대에 억울한 사람도 많이 잡혀갔지만'이란 말은 맞지 않습니다. 억울하게 잡혀간 사람 많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잡혀갈 만하니 잡혀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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