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작가
체험에 굶주린 작가들에게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권해보고 싶다. 또 변호사들에게 작가가 되어 보라고 하고 싶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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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달 문학지가 여러 권 집으로 날아오고 있다. 새로 실린 단편소설이나 시를 훑어본다. 그걸 위해서 소설가나 시인은 오랜 시간을 가슴 졸이며 장인처럼 글을 깎고 다듬었을 것이다. 그런 문학지는 서점에 내놓아도 거의 팔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다. 지금같이 볼거리가 풍성한 세상에서 문학에 관심을 쏟는 것은 소수의 매니아층일지도 모른다.
  
  글을 위해 자신의 삶을 문학의 제단에 올려놓은 작가들을 많이 봤다. 스타인 벡은 경험에 굶주려 화물선을 타고 뉴욕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견습 페인트공, 벽돌 나르는 인부 노릇을 했다. 포크너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925년 6월 유럽행 화물선에 몸을 실었다. 그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에서 도보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천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았다. ‘1929년의 여름’이라는 작품에서 포크너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아침 여섯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석탄 나르는 인부로서 옥스퍼드의 발전소에서 일했다. 외바퀴 수레로 책상 하나를 만들었다. 그리고 글을 썼다.’
  
  니코스 카찬차스키는 지팡이를 들고 어깨에 구식 여행가방을 메고 혼자 걸으면서 그리스를 구경했다. 그는 아토스 산의 승려들에게 감동을 받고 그리스도와의 영적(靈的)인 교섭을 시도했다. 그것에 실패하자 그는 세계를 그의 수도원으로 삼기로 했다.
  
  실제의 체험 속에서라야만 글이 제대로 나오는 것 같다.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출전했던 헤밍웨이가 박격포탄에 맞은 사고가 ‘무기여 잘있거라’에 활력을 넣어줬다. ‘노인과 바다’는 그가 바다에서 얻은 경험이다. 주인공들이 헤밍웨이 자신이기 때문에 생기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소설가들도 그런 사람이 많이 있다. 소설가 정을병 씨는 젊은 시절 5·16혁명후 만들어진 국토건설단에 직접 들어가 체험했다. 국토건설단은 사회의 건달이나 깡패들을 모아 도로건설 등에 강제노동을 시키기 위해 만든 것이다. 그 강제노동의 경험을 통해 ‘개새끼들’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문인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기도 했다. 황석영씨도 젊은 날의 노동체험이 많은 글을 만들어 냈다.
  
  작가들이 그렇게 체험을 갈구하는 데 비해 광맥같은 스토리 속에 있는 직업이 있다. 의사였던 서머셋 모옴은 의사가 되어 런던의 빈민가에 들어갔다. 거기서 보고 들었던 것들이 그의 변용을 거쳐 무수한 작품으로 탄생됐다. 그는 작가에게 있어서 몇 년 동안 의사 직업을 갖는 이상의 더 훌륭한 훈련이 없다고 했다.
  
  나는 변호사를 삼십삼 년간 해 왔다. 작은 사건이든 큰 사건이든 그 자체가 하나의 소설이었다. 환경을 바꾸고 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새로 창조하고 나의 관점에서 스토리의 한 부분을 부각시키면 전혀 다른 문학작품이 됐다. 따지고 재고 정죄하려는 게 검사가 만든 조서 문학인 기록이다. 그들의 실수와 슬픔에 동행하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이 변호사의 일이었다.
  
  재판관이 아니라 천사가 되고 싶은 경우도 있었다. 하나님은 악인(惡人)이라고 버려두지만은 않는 분이다. 경험했던 짧은 사건 하나를 단편소설로 써서 문학지에 기고한 적이 있다. 유명한 평론가가 우연히 나의 글을 보고 평론을 써 주었다. 한 마디 따끔한 지적이 있었다. 소설에 작위성이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은 나는 허구를 만들 실력이 없었다. 물 위에 뜬 물감을 종이로 그대로 찍어내는 마블링처럼 현실을 그대로 찍어낸 것이었다. 현실은 인간의 이성이나 감정과도 상관없이 전개되는 걸 많이 목격했다. 문학에 뜻을 두는 사람들 그리고 체험에 굶주린 작가들에게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권해보고 싶다. 또 변호사들에게 작가가 되어 보라고 하고 싶다. 시각을 달리하고 마음을 바꾸면 보는 법정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 2019-06-19, 23:1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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