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코와 시고토다’(‘남자는 일이다’)
‘행복은 노동에 있다. 일하지 않는 것은 고통이다. 우두커니 앉아 생각만 하는 것은 고통이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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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씩 일본 드라마를 보기도 한다. 다른 나라와는 다른 독특한 소재들이 있다. 아주 작은 데서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
  
  작고 허름한 심야식당에서 풍기는 사람 냄새도 있고 라면 가게 청년이 맛있는 국물을 만들기 위해 돼지뼈를 들고 고심하는 장면도 있다. 좋은 앙꼬를 만들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 맑은 물을 길어 기도하며 팥을 씻기도 한다. 소설을 만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작가도 있고 사전을 완성하기 위해 말을 찾아 사람들 사이를 누비는 출판사 직원의 얘기들도 있었다. 그 속에 배어있는 일본인들 특유의 정서를 느끼면서 고개를 숙인다.
  
  내가 고정적으로 가는 안과에서 진료를 받을 때였다. 칠십대 중반을 넘긴 의사 선생은 꼼꼼하게 진료를 했다. 내가 말하는 증상을 연필로 종이 위에 꼼꼼하게 받아 적고 그림도 그렸다.
  
  검안대(檢眼臺)에 머리를 올려놓게 하고는 눈 속을 들여다 보고 또 들여다 본다. 직접 안약을 투입하고 흐르는 걸 닦으라고 거즈를 손에 쥐어 주기도 한다. 환자당 삼십 분은 넘게 진료하는 것 같다. 컨베이어 벨트에 놓여 옮겨지는 제품의 검수 같은 대학병원의 진료와는 전혀 딴판이다. 진료를 받고 접수대로 나오면 이삼천 원 수준이 청구된다. 거의 공짜로 진료를 받는 셈이다. 약값도 부담이 없다. 의사는 대학병원에서 안과 교수를 하던 분이다. 서울대와 동경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의사 후배들은 그는 공부 자체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의사 선생이 진료 중에 불쑥 이렇게 물었다.
  
  “일이라는 걸 일본말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 ‘시고토’라고 하지 않나요?”
  나는 일본말을 조금 배웠다.
  
  “맞아요. 내가 일본에 살면서 보니까 일본사람들은 일을 참 신성시하는 것 같아요. ‘오토코와 시고토다’라는 일본 말이 있어요. ‘남자는 일이다’라는 말이죠.”
  
  일본인의 그런 성실성을 그는 배운 것 같다. 꾸미지 않은 소박한 것을 넘어 허름한 안과의원에서 종교같이 일하고 있다.
  
  내가 쓴 책을 몇 권 조심스럽게 선물을 한 적이 있다. 의사들은 책 선물을 싫어했다. 전문서적이나 의학잡지의 논문을 읽을 시간도 빡빡한데 책을 주는 사람이 제일 싫다는 말을 들었다. 다음에 책을 선물한 환자를 만날 때 그 책의 내용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척 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노인 안과의사는 달랐다.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고 내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일본의 좋은 점을 배워 온 것 같다. 일본의 기독교정신을 대변하는 백년 전의 인물인 우치무라 간조는 이런 말을 했다.
  
  ‘행복은 노동에 있다. 일하지 않는 것은 고통이다. 우두커니 앉아 생각만 하는 것은 고통이다. 일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라. 그 단순한 진리를 잊지 말아라.’
  
  사도 바울도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고 했다. 몇 년 사이에 친구들이 모두 은퇴를 했다. 모이면 하는 말들이 직장에 다니고 바쁠 때는 빨리 은퇴해서 쉬고 싶었는데 막상 그렇게 되니까 이제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일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죽을 때까지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예술가나 장인(匠人)들은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남을 도울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도 행복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런 시시한 일이나 하고 이런 낮은 자리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면서 좋은 것만 찾으려고 하면 불행이 따라붙는 것 같다. 우리 사회도 자기가 맡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 2019-06-20, 10:5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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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19-06-21 오전 2:20
절실히 공감합니다. 평생 일하는게 습관이 되다보니 노는 게 더 힘듭니다. 일 하는 게 노는 것보다 더 마음 편합니다. 나치 독일의 유대인 집단 수용소 입구에 걸려있던 “Arbeit Macht Frei” 라는 간판은 우리를 슬프게 하지만 노동이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 자체에는 공감합니다. 남자라면 늙어서도 날이 새면 집을 나섰다가 해가 지면 돌아올 수 있는, 수입의 多寡에 관계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일터가 있어야 합니다.
   1    2019-06-20 오후 4:20
엄선생님의 글은 참으로 편안한 글로 마음을 편케한다! 할일 없는 삶이 제일 불상한 삶이다!!! 인생의 마지막 고개를 바라보며 가고있는 지금 이생각에는 변함없다!!! 또 살면서 제일 복되고 쉬운 때는 부모 밑에서 공부하는것이 라고 생각한다!!! 아무 걱정할것없이 밥주고 재워주고 또 부족한것없는 돌봄 속에서 공부만 하든 때가 제일 좋은 쉬운 삶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때는 왜 싫고 짜증내고 딴 짓에 마음두고 공부를 게을리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는 그랬지,그렇지, 그럴수 있었다,라고 생각된다라며 그때를 추억한다 !!! 엄선생님의 글은 항상 편안한 글이다!!! 교회에서 한시간여의 예배시간은 참으로 편안한 한시간여 이다!!! 편안한 한시간이 필요한 사람이 많아 질수록 세상은 편안해 질것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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