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代 고객 “져도 좋으니까 소송만 걸어주세요”
“도대체 인생이 얼마나 남으셨다고 아직도 재물에 욕심을 내십니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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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흔 살이 넘은 노인이 상담을 하겠다고 나의 사무실로 찾아왔다. 귀가 잘 안 들려서 육십대 중반의 아들을 데리고 왔다.
  
  그는 부자인 것 같았다. 백억이 넘는 땅을 정부에서 공매처분을 하는데 가장 유력한 입찰자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정부가 공매를 취소하는 바람에 너무 억울하다는 내용이었다. 행정소송을 제기해 달라고 했다. 변호사 비용은 얼마든지 내겠다고 했다. 저승꽃이 얼굴에 핀 영감을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마디가 불쑥 튀어나갔다.
  
  “도대체 인생이 얼마나 남으셨다고 아직도 재물에 욕심을 내십니까? 하루하루 주어진 날에 감사하시면서 즐겁게 사셔야 할 때 아닐까요?”
  
  상담하는 변호사로 할 말이 아니었다. 종종 이런 실수를 한다. 나 아닌 다른 존재가 나의 입술을 움직여 그런 식으로 말할 때가 많았다. 나는 내 작은 혀를 제어하지 못해 많은 미움을 사기도 했다.
  
  “그래도 너무 억울해서.”
  얼굴에 저승꽃이 군데군데 핀 노인이 말했다.
  
  “그런 식의 억울한 건 많다고 생각합니다. 노름판에서 밤새 돈을 잃다가 결정적인 좋은 패가 들어왔는데 그 순간 경찰이 단속이 나온 경우도 봤습니다.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17억짜리 로또복권이 당첨됐는데 그걸 잃어버린 경우도 봤어요. 저는 변호사로 억울한 일 많이 봤죠. 영감님 자료도 제가 미리 봤습니다. 거액의 부동산 공매에서 단독 입찰자인데 공매를 취소하니까 얼마나 억울하시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억울함을 풀어드리는 건 제가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왜요? 져도 좋으니까 소송만 걸어주세요. 돈도 달라는 만큼 준다는데 왜 안 하겠다는 겁니까?”
  
  “변호사인 저 역시 건강이나 인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남은 시간을 선(善)이 아닌 인간의 욕심을 위해서 봉사하기는 싫습니다. 왜 굳이 저같은 변호사에게 상담을 오셨습니까? 돈 주겠다면 사건을 하겠다는 다른 변호사가 당연히 많을 텐데요.”
  
  “엄 변호사가 사건을 맡으면 그래도 억울함을 믿을 것 같아서요.”
  
  “저는 영감님이 느끼는 억울함을 대변하기 곤란합니다. 큰 이익을 볼 기회를 잃은 것이지 어떤 피해가 있었던 건 아니지 않은가요? 물론 그런 기회도 하나의 권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제가 할 일은 아닌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제 경험으로는 정말 억울함이 따로 있습니다. 사람을 죽이지 않았는데도 검사나 판사가 살인범으로 창조한 경우입니다. 빠삐용처럼 일생 억울한 옥살이를 지금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그런 억울함을 풀 능력은 없어도 적어도 공감하고 동행하는 겁니다.”
  
  노인은 실망한 표정으로 아들과 함께 돌아갔다. 소송을 맡을 게 아니라 오히려 말려야 할 사안이었다. 그 영감이 마지막으로 돈이 아니라 하늘에 총총하게 떠 있는 별이나 바닷가로 밀려오는 파도 그리고 손자 손녀의 모습을 눈 속에 담아 두어야 할 때라는 생각이었다. ‘전능하신 돈’님은 사람들을 눈이 멀게 한다.
  
  그날 저녁 함께 법률사무소를 하는 사위 김 변호사에게서 문자가 왔다. 사위 김 변호사를 도제식으로 내 옆에 두고 있다. 로펌의 비즈니스 윤리를 배우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오전에 상담하셨던 노인께서 다시 오셔서 상담료를 놓고 가셨어요.’
  사위가 보낸 문자의 내용이었다. 그래도 경우가 바른 노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시간과 노동을 사용하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돈을 안 주려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자네가 쓰게’
  내가 사위에게 답글을 썼다. 김 변호사가 내가 상담하기 전에 이미 그 노인을 만났었다. 나는 로스쿨을 나온 사위에게 세상 돌아가는 상담객의 얘기를 먼저 듣게 하면서 의견을 묻는다. 그리고 내가 상담하는 모습을 더러 지켜보게 한다. 잠시 후 사위 김 변호사한테서 다시 문자 메시지가 왔다.
  
  ‘노인 말이 그렇게 정직하게 상담을 해서 어디 돈이나 제대로 벌었겠느냐고 하시면서 백만 원이나 주고 가셨습니다. 제가 쓸 돈이 아닙니다. 아버님 노트북 밑에 넣어두었습니다.’
  
  사위도 이제 돈에 대한 철학이 굳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신문을 보다가 ‘변호사의 성공’이라는 제목의 컬럼이 눈에 띄었다. 어떤 변호사가 기고한 글이었다. 그는 승소율과 돈을 성공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의뢰인에게 공감해 줘야 하는 것을 새로 느꼈다고 했다.
  
  승소율에 대해서 나는 생각이 다르다. 이길 사건은 이기고 질 사건은 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억울한 사람이 없어지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없어질 것이다. 고용된 양심인 변호사의 좁은 틀을 벗어나 정의의 관점에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승부에만 집착하면 악마가 될 수 있다. 의뢰인에게도 경멸을 당하고 버려진다. 돈을 벌었다고 성공이라고 하는 것도 그렇다. 이제는 원로급에 속하는 동료 변호사들이 많다. 고급빌라와 고급의 클럽 회원권, 외제 승용차와 늙어서 클라리넷 개인 교습을 성공의 척도로 말하는 걸 듣기도 했다. 과연 만족스러울까? 그들이 머리를 굽히는 재벌 회장의 많은 소유를 가까이 보면서도 행복할까? 위를 보면 불행해지고 아래를 보면 행복해지는 게 비교하는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의뢰인과의 공감도 마찬가지다. 삶의 아픔이라면 공감하고 상처를 만져주는 게 맞다.
  
  그러나 욕심이나 증오는 공감해 줄 필요가 없다. 내가 추구하는 변호사의 성공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물통 옆의 디오게네스처럼 조직과 권력, 돈에 매이지 않는 존재였다. 그래서 개인법률사무소를 평생 했다. 그래도 지식노동자로 품값을 받고 서류를 만들어주면 밥은 먹고 사는 직업이었다. 변호사의 성공기준을 다시 생각해 본 저녁이었다.
  
[ 2019-06-21, 10: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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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19-06-21 오후 4:44
엄선생님 같은 분이
한국인 중에도 존제할수 있다는게 기분 좋습니다
그러나 과연 얼마나 될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백명의 변호사 중에 한분이나 있으런지?
변호사가 아니고 일반인들에게는 천명에 한명도 없을듯 하니
제가 나쁜 경험을 많이 한거 같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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