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과 향수 전문가
“네 달만 굽신거리면 사년을 왕같이 지낼 수 있는데 무슨 소리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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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망을 가진 검사들은 그 다음 목표가 국회의원인 경우가 많다. 경찰 간부로 간 친구도 자신의 목적지는 여의도라고 표현했다. 변호사 동료나 후배들도 불나방같이 선거철이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뛴다. 선거에 나간 한 선배 변호사가 아직 어두컴컴한 새벽에 추운 시장통 입구에 나가 서 있었다. 불쌍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코트도 입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알리기 위해 텔레비전 프로에도 여러 번 나왔다. 그가 새벽에 지나가는 행인에게 고개를 숙이고 명함을 주었다. 그 행인이 마지못해 명함을 받고 몇 발자국 지나가다가 돌아와 이렇게 물었다.
  
  “그냥 좋은 자기 일 하면서 먹고살 만할 텐데 새벽에 나와서 이렇게까지 하면서 국회의원을 하려고 하십니까?”
  
  행인의 얼굴에는 딱하다는 표정이 서려 있었다. 나는 정치 근처에 간 일이 없기 때문에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지 모른다. 한번은 종로구 국회의원을 했던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네 달만 굽신거리면 사 년을 왕같이 지낼 수 있는데 무슨 소리야?”
  
  그럴 듯한 가짜 명분을 내세우지 않은 압축적인 표현이었다. 육군 대장을 하고 장관을 지낸 사람에게 왜 늙어서도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는지 물었다.
  
  “내가 그냥 말을 해봐요. 기자는 물론이고 아무도 말을 들어주지 않아요. 그런데 금배지를 달고 하면 하찮은 말이라도 신문에 기사가 되거든. 그래서 하는 거요.”
  
  기업을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정치인에게 뜯기지 않고 돈을 지키기 위해 의원이 된다고 하기도 했다.
  
  국회의원 한 자리를 놓고 백 명쯤의 후보자들이 진흙밭의 개싸움을 한다. 법관 자리도 마찬가지였다.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였다. 선생님이 앞으로의 희망을 써내라고 했다. 초등학교 일등들만 왔다는 속칭 명문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희망이 법관이었다. 고등학교 시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문과반인 우리 학급의 거의 다 법대를 지망했다.
  
  전교생이 운동장에 모이는 조회시간에 단 위에 올라선 교장 선생님이 칭찬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써냈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은 사회의 다양성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나 역시 법대를 지망했다. 담임선생은 성적이 모자라니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가 기자가 되라고 권했다. 모든 걸 성적이라는 수직체계에 몰아넣고 상하로 따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현실론을 내게 제기했다. 서울법대를 나와도 고시에 붙지 못하고 낭인이 돼서 일생을 피폐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서울법대도 가지 못할 성적이면 아예 가능성이 없다는 논리였다.
  
  아버지는 평범한 소시민이 되라고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주말이면 낚시를 가고 집의 작은 마당에서 나팔꽃을 심고 즐기는 그런 삶도 괜찮다고 했다. 사장보다 말단 회사원인 아버지가 훨씬 삶의 고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어린 시절 나는 그 의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인생의 초겨울이 온 지금에 와서야 나뭇잎에 가려 안보이던 세상이 보인다. 같은 아파트에 검사장을 마친 고교 선배가 산다. 명문고와 대학을 나온 그는 뛰어난 수재였다. 독일유학을 한 박사이기도 했다. 그는 아들도 자기의 뒤를 이을 정도로 우수하기를 바란 것 같다. 아들은 아버지의 기대를 채워주지 못해 속으로 주눅이 들면서 자랐다고 했다. 어느 날 그 선배의 아들은 자신이 행복하다고 했다. 산자락의 조용한 연구실에서 수백 개의 영롱한 향수병에 둘러싸인 채 향기를 만들어 내는 자신의 작업이 너무 즐겁다는 것이다.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특정한 직업만 추구하기 때문에 치열한 경쟁과 다툼이 일어난다. 사람들의 목표가 제각기 다르다면 흥정을 하고 서로 협력해서 상호간의 공존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이 사회에 훨씬 이익이 커질 것이다. 적절한 사회적 협약만 있다면 이런 다양성은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것 같다.
  
[ 2019-06-29, 12: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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