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장 앞에서 조용히 무릎 꿇는 겁쟁이들
“많은 재판을 하시는 재판장님의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시간을 뺏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변론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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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 방송에서 우연히 유시민씨가 하는 소리를 들었다.
  “판사는 하나님하고 동급이잖아요? 그리고 국회의원을 아주 졸로 보잖아요? 의원 자격을 박탈할 수도 있으니까.”
  
  유시민씨는 운동권으로 민주화 투쟁을 할 때 재판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재판을 받는 입장에서 법대 위의 판사가 어떻게 보였을까? 그는 서울대를 다니는 수재였고 사회의식이나 정치의식에 일찍 눈을 뜬 사람이다. 아마도 눈에 비늘이 끼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판사들의 공허한 내면을 보면서 비웃었을지도 모른다. 판사를 ‘하나님과 동급’이라고 표현하는 그의 말도 비아냥 그 자체 같았다.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법정을 다녔다. 사람들이 법관 앞에서 지나치게 비굴한 모습을 많이 본다. 마치 죽은 체 하는 벌레같이 판사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할 말도 하지 않고 죽은 듯 엎드려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뢰인들의 심리가 그대로 담당 변호사에게도 전해진다. 한 법정에서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변론할 시간이 오자 안경을 끼고 점잖게 생긴 변호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얼굴 가득히 꾸며진 미소를 지으며 재판장을 향해 입을 열었다.
  
  “많은 재판을 하시는 재판장님의 심려를 끼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시간을 뺏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변론을 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변론을 하지 않을 거면 그가 왜 그 자리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법원에서 고위직으로 있던 판사였다. 재판장인 시절 그는 폭군이었다. 사람들을 정신없이 몰아치기도 하고 변호사들에게 모욕을 주기도 했다. 그런 그가 변호사가 되더니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변론을 하는 변호사를 고깝게 보았던 모양이다. 아양을 떠는 자기 얼굴을 보고 전관예우를 해달라는 메시지 같기도 했다.
  
  어떤 판사는 다들 앞에서 비굴하게 행동하니까 어떤 때 자기 할 말을 하는 피고인이나 변호사를 보면 마치 판사에게 저항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고 했다. 안개에 옷이 젖듯 직업 환경이 판사를 그렇게 만든다고 했다.
  
  딱한 경우가 있다. 죄 없이 기소됐으면서도 판사님의 심기를 거스를까봐 그저 조용히 있자고 하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있다. 세상을 살 만큼 살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도 대부분 그랬다. 그러나 재판은 죽은 체 조용히 하면 천적이 지나가는 벌레들의 본능적 행태와는 다르다. 천천히 도는 연자방아처럼 철저히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게 법의 심판이다.
  
  눈치 보면서 할 말조차 하지 않으면 엄청난 후회를 하게 된다. 판사에게 재판받는 한 사람은 앞에 놓인 기록 한 권의 의미일 뿐이다. 기록은 수사기관이 그를 검게 보고 악마로 묘사한 그림이다. 그림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고 덧칠로 색을 바꾸지 않으면 판사는 심플하게 보이는 대로 결정한다. 인간 자체보다는 양형기준과 법 이론으로 기록을 스크린 하는 게 현실의 재판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판사 앞에서는 '그저 조용히'라고 하면서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성경 속의 재판관 빌라도는 예수에게 자기는 너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다고 권한을 앞세웠다. 예수는 핵심을 말하고 정면으로 십자가형을 받았다. 재판관은 하나님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잠시 사용하는 소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셨다. 당당한 사람들은 그렇게 재판을 받았다.
  
  겁쟁이들은 그저 무서워하며 재판장 앞에서 조용히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이었다. 겁쟁이들 안에는 전직 대통령도 국정원장도 장관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런 세력가들이 더 두려워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모든 국민들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그 말은 법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을 변론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변론이란 벼랑 끝에 서서 자신에 대해 말을 하는 것이다. 당당히 외쳐야 한다. 판사들이 듣지 않으면 세상을 향해 목청 높여 소리 질러야 한다. 특히 정치재판을 받는 고위층에 하고 싶은 말이다.
  
  
  
[ 2019-07-07, 06: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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