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밭을 가는 방법
책 읽는 것이 기도요, 道 닦는 것이요 종교적 수행이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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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선생님은 교과서에 나오는 글들을 반복해서 읽어 암기하라고 했다. 나는 조선 시대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우는 학동처럼 교과서가 눈앞에 영상으로 떠오를 정도까지 외웠다. 그게 내가 배운 공부 방법이었다. 그러나 단순한 암기하는 기계는 아닌 것 같았다.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디킨즈의 ‘스쿠리지 영감’이 희곡형식으로 수록되어 있었다. 그것을 반복해서 읽는 동안 그 속에 담겨있는 진리를 느끼기도 했다. 죽은 영혼이 되어 자신의 쓸쓸한 장례식을 보는 스쿠리지 영감을 보았다. 일생 인색하고 고독하게 살다가 허무하게 죽은 자신을 보고 그 영혼은 참회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의 교과서 역시 보물 같은 시와 수필 단편소설을 담고 있었다. 열 번 정도씩은 읽은 것 같다. 반복해서 읽는다는 것은 그 내용을 나의 피 속에 녹여 섞는 느낌이었다.
  
  법대에 가서는 민법교과서를 읽고 또 읽었다. 어느 날 민법 교수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책장 속에 누렇게 찌든 민법 교과서가 보였다. 교수가 일제 시대 동경에 유학했을 때부터 일생 함께 동행한 늙은 책이었다. 나도 민법 교과서를 사십 년이 넘은 지금도 바로 옆에 모셔두고 있다. 대학교 졸업 무렵이었다. 눈 덮인 강가의 초막같은 방가로를 빌려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한 겨울을 보냈다. 창문으로 보이는 쩡쩡 얼어붙은 강을 보면서 생각했다. 조선 시대 선비처럼 노인이 될 때까지 내가 본 민법을 읽고 또 읽어 피와 살이 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시험만 통과하고 책을 버리면 수박 겉핥기의 지식일 뿐이었다. 딱딱한 법 교과서도 씹고 또 씹으면 그 속에 숨어있던 철학과 사상의 깊은 맛이 우러나왔다. 법은 내가 존중받을 개인으로 인간답게 살 권리가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수많은 딱딱한 법 문장의 뒤에도 영혼이 스며 있었다.
  
  삼십대 중반쯤 내게 찾아온 것이 성경이었다.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나는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여행을 가서 이스탄불의 새벽 거리로 나간 적이 있었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가 아직 걷히지 않은 어둠 속에서 핸들에 코란을 얹어놓고 소리 내어 읽고 있었다. 뒤에 있는 다른 택시의 기사도 마찬가지였다. 예수님도 구약의 율법과 예언서를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읽고 통달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같은 유교문명권의 특성은 독서인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도를 닦는 방법은 기도나 명상 단전호흡이 아니라 매일 아침 경상(經床)에다가 경전과 책을 놓고 소리 내어 읽는 방법이었다. 책을 읽는 행위야말로 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책 읽는 것이 기도요, 도 닦는 것이요 종교적 수행이었다. 절이나 교회 같은 건물이 없어도 공자의 말씀은 독서를 통해 수천 년 동양의 정신을 지배해 왔다. 선비에게는 서재가 그의 예배당이다. 나는 성경을 공부하는 늙은 선비가 되기로 했다. 더 이상 교회의 분주한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몇 년 전 유명한 시인의 임종 무렵 그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죽음 직전 그가 내게 선물하듯 이렇게 한마디 했다.
  
  “평생 책을 읽었는데 죽기 전까지 머리맡에 둘 책은 딱 두 권뿐이었어요. 제 경우는 신약과 논어였죠.”
  
  마음이 열려있는 분들한테는 꼭 함께 나누고 싶은 선물이었다.
  
[ 2019-07-13, 18: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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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19-07-13 오후 6:56
일본인들은 책을 많이 본다고 합니다
반면에 우리는 거의 책을 안본다고 하는군요
우리는 일본인들을 욕합니다만
그들은 우리를 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나쁘다고 대부분 욕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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