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더우니까 도둑놈도 억울하다고 날뛰고 있습니다”
23년 전, 나는 지옥 바닥에 있는 죄인 한 명을 자유의 땅으로 안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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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년 전이다. 감옥 안에 있는 한 죄수의 고통을 목격했다. 그 당시만 해도 감옥은 지옥이었다. 무자비하게 때리기도 하고 박스 같은 암흑 방에 넣어 인간을 괴롭혔다. 나는 지옥 바닥에 있는 죄인 한 명을 자유의 땅으로 안내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상의 거센 파도가 앞에 보였다. 먼저 악법이 보였다. 전과가 있는 질 나쁜 인간이면 죄가 없어도 그들을 긁어모아 감옥에 있게 했다. 두 번째 파도는 재판장이 흘겨보는 얼어붙을 듯한 차디찬 눈빛이었다. 그는 오만한 법관 귀족이었다.
  
  법대(法臺) 아래의 죄인은 인간이 아니었다. 그가 나를 바라보는 표정은 ‘혼자 왜 튀는 짓을 하니? 절대 봐주지 않을 거니까 까불지 마’라고 말하고 있었다. 언론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동정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 지금도 8시 뉴스시간에 앵커의 시작멘트가 뇌리에 생생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는 “날씨가 더우니까 도둑놈도 억울하다고 날뛰고 있습니다”라고 비웃고 있었다. 어떤 방송의 사회자는 별 볼 일 없는 변호사가 뜨기 위해 별 이상한 짓을 하는 것으로 매도하고 있었다. 심지어 내가 변호하는 사람의 친구까지 나의 사무실로 찾아와 돈을 뜯으려고 했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고교 동창들은 내가 바닥에 있는 쓰레기를 이용해서 좌파운동을 한다고 뒤에서 쑥덕거렸다. 나는 공명심에 들떴다는 오해를 받고 따돌려졌다.
  
  나쁜 일을 하기는 쉽고 좋은 일은 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았다. 그저 조용히 죽은 듯이 살아가면 삶은 편한 것이다. 적당히 불의에 가담하면 돈도 생긴다. 나는 후회하기도 했다. 위로를 받기 위해 성경을 들춰 보았다. 광야의 세례요한은 왕의 불륜을 지적했다가 목이 잘려 쟁반 위에 올려진 채 하룻밤 연회의 조롱거리가 됐다. 예수는 위선자 바리새인들을 욕하고 성전의 상을 뒤엎었다가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그 위에서 죽었다. 사탄이란 소리도 듣고 온갖 오해와 조롱을 받았다. 그러면서 예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의 길을 따르라고 했다.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세상의 오해를 받는 것이 십자가였다.
  
  참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한 여인의 이혼소송을 맡았다. 어느 순간 그 여인은 내가 상대방인 남편으로부터 뇌물을 받아먹고 자기에게 불리하게 변론을 한다고 오해했다. 그 오해가 그 여인의 뇌리에 화석같이 굳어졌다. 여인은 나를 배임죄로 형사 고소하고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아무리 진실을 얘기해도 그녀의 영혼은 뒤집어 진 독이었다. 내 말이 들어가 고일 수가 없었다. 피해망상에 걸려있는 사람들에게는 주위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해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의식이었다.
  
  변호사는 그런 병자들에게 걸려들기 쉬운 직업이기도 했다. 판사들은 그런 병자들을 보면 자기들도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비겁한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면 오해는 진실이 되기도 했다. 그 다음 절차는 나의 사망 같은 고통이었다. 선을 행하려고 하다가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화가 났었다. 억울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오해들이 세상의 공명이 아니라 천국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라고 생각을 해 본다.
  
  
  
  
[ 2019-07-14, 19:0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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