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죽는 노인
“이보게 인생 구십 년을 살았는데 가장 고통은 늙어서의 외로움이었네. 그런데 그걸 누가 피할 수가 있겠나? 자네도 그걸 잘 견디게.”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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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들이 많이 사는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서 있었던 얘기를 들었다. 한 남자가 아픈 아내를 끔찍하게 돌보는 모습이 이웃의 눈에 띄었다. 매일 오전 그는 아내를 휠체어에 태워 산책을 시켰다. 점심 때가 되면 근처 식당에서 음식물이 묻은 아내의 입가를 정성스럽게 냅킨으로 닦아주는 착한 남편의 모습이 이웃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의 아내가 죽었다.
  
  몇 달 후였다. 그 이웃에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 그 집에서 악취가 너무 흘러나온다는 것이었다. 아내를 돌보던 그 남자가 죽은 지 오래되어 부패되어 있었던 것이다. 가난하거나 부자거나 그렇게들 외롭게 죽어가는 것 같다.
  
  부처님은 늙고 병들고 죽는 걸 피할 수 없는 인간의 고뇌라고 했다. 그 외에 인간은 황혼이 되어 겪는 외로움이 또다른 고통인 것 같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실 무렵 마지막으로 가는 자리에서 외아들인 나를 두고 가는 게 못내 아쉬웠던 것 같다. 나이 구십인 어머니는 육십대 중반인 늙은 아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보게 인생 구십 년을 살았는데 가장 고통은 늙어서의 외로움이었네. 그런데 그걸 누가 피할 수가 있겠나? 자네도 그걸 잘 견디게.”
  
  늙은 어머니는 황혼에 어둠이 점점 섞여 깜깜해질 때까지 이십층 아파트 창가에 혼자 정물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요즈음 고독의 긴 터널 앞에 서 있는 느낌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사회적인 교제가 사라진 나이가 됐다.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만남의 기회를 내 쪽에서 거의 다 거절했다.
  
  어쩌다 졸업한 지 수십 년 만에 보게 된 동창들의 모임에 갔었다. 공유하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 세월의 풍화작용은 서로를 전혀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켰다. 세상 교회에서도 서로간의 영적인 스밈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일종의 사교장에 지나지 않았다. 교회 경영을 하는 장로나 목사에게 헌금을 내지 못하는 늙은이는 영양가 없는 존재 같았다. 말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사랑 없는 그들의 표정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기도 했다.
  
  파고다 공원 뒷골목 늙고 돈 없는 노인들이 모이는 곳에 가 봤다. 차라리 그곳에 따뜻한 온기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 잠시 앉아 있는 사이에 핫팩을 가져다주는 영감도 있고 구호단체에서 얻었다면서 기모바지와 목도리를 가져다주는 늙은이도 있었다. 아들에게 쫓겨나고 가족에게서 소외당한 그들은 조금의 온기라도 느끼기 위해 그곳으로 오는 것 같았다.
  
  재산이 조금 있는 노인들의 모임에 가 봤다. 여럿이 모여 성악발표를 하기도 하고 춤을 배우기도 했다. 악기를 합주하는 모임도 있었다. 뒤늦게 오토바이 동호회에 가입하는 노인도 있었다. 아무리 겉으로 화려하게 치장을 해도 인간의 내면에 있는 고독과 공허는 해결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난하거나 조금 있거나 상관없이 그들의 내면은 공허하고 차디찬 고드름들이 달려 있었다. 오래 전 죽은 법정 스님이 떠올랐다. 그는 평생 산 속의 오두막에서 혼자 살았다. 젊어서부터 양팔을 벌리고 고독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는 고독을 보랏빛 노을이 아니라 당당한 있음이라고 했다. 그는 높은 경지에 이른 수양으로 고독이라는 인간고를 이겨낸 것 같다.
  
  고독의 터널 앞에 서 있는 약한 나는 기도한다. 내 손을 따뜻하게 잡고 어둡고 긴 터널을 함께 가 주실 분이 오시라고. 나 혼자 그 터널을 가는 게 아니다.
  
[ 2019-07-26, 19: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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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19-07-26 오후 10:25
15년 전에 철도원이라는 유명한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깔끔한 일본사람들이 많이 봤다는 영화입니다.
인상이 깊었는데 그 이상의 깊이로 느껴진 글입니다.
종교적인 말을 아니 했지만 그렇게 느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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