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선임하사가 전해주는 ‘늙어가는 법’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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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십 년 전 군의 초급장교 시절 함께 근무하던 선임하사가 나를 찾아왔다. 그 시절 나는 장교였지만 그는 형님 같던 하사관이었다. 군대 생활을 모르고 좌충우돌하던 나를 지켜보면서 충고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다시 연락이 온 것이다. 그 자체가 감사했다. 칠십대 중반인 그는 노년을 양평에서 지내고 있었다. 사무실 근처의 식당으로 함께 가서 그는 국밥을 나는 떡국을 시켜 먹으면서 아득한 기억 저편의 사십 년 전 군대 생활을 떠올렸다. 이제 노인이 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가난해서 군대 장교가 되려다가 하사관이 됐어요. 군생활에서 하사관은 조선시대 아전같이 평생 위로 올라가는 게 막힌 계급이에요. 하사관 출신이라는 게 마음의 상처이기도 해요.”
  
  그는 오래된 상처를 드러내 내게 털어놓고 있었다. 상처는 그렇게 솔직히 드러내는 순간 맑은 강물에 씻기듯 치유가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가슴 속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고시 공부를 하다가 실패하고 다급한 바람에 장기직업 장교시험을 보고 군에 들어간 것이다. 근무할 자세보다 그 안에서 다시 공부해서 사회로 나오고 싶어 절규하던 때였다. 영혼을 제약하는 것 같은 강제로 입혀진 군복이 싫었었다. 나는 귀 기울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엄 변호사와 군단사령부에서 같이 근무할 때 상관인 박 중령이 수시로 ‘엄상익 이 개새끼 어디 갔어?’라고 뒤에서 욕할 때면 마음이 짠했어요. 그래서 정이 더 갔는지도 몰라요.”
  
  사십 년 만에 처음으로 나의 뒤에서 다른 사람이 한 욕을 전해 들었다. 그 당시 욕먹을 만했다. 상관은 저녁이면 종종 영등포 시장 안에 있는 작부 집에 함께 가기를 원했다. 그가 서울시내 음식점에서 사람과 만날 때 나를 부관처럼 바깥에 세워놓은 지프차 안에 대기시켜놓기도 했다. 나는 그걸 거부했다. 그리고 틈이 나면 부대의 내무반에서 책을 보았다. 그게 발각되는 순간 그의 눈은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그가 개새끼라고 욕하는 건 어쩌면 감정적으로 당연할지도 몰랐다. 선임하사는 핍박받는 내게 동정이 간 것이다. 그 짠한 마음의 물결이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속에 너울로 남아있는 것 같았다.
  
  “개새끼라고 욕을 먹은 게 당연해요. 상관이었던 박 중령도 나하고 똑같은 마음의 상처가 있던 사람 아니겠어요?”
  그 역시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군대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양평에 사니까 좋겠네, 전원주택에 살고 있어요?”
  내가 물었다.
  
  “아니에요. 처음에는 교사를 하다가 퇴직한 아내와 주택에 살았는데 관리하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작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전원주택을 꿈꾸지 말아요. 나이 들수록 병원 가깝게 살아야지 함부로 전원주택 지었다가 나중에 안 팔려서 애물단지가 돼요.”
  
  몇 년 전부터 파도가 조용히 밀려오는 바닷가나 장엄한 기운이 흐르는 편백나무 숲에 작은 주택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이 없었다. 전구 하나 내 손으로 갈아 낀 적이 없는 하얀 손이다. 경험을 해 본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가 뭔가 떠오른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작은 글 한 편을 내게 보여주었다. 노년에 지켜야 할 주의사항이었다. 그 내용이 대충 이랬다.
  
  ‘자식을 비교하지 말라고 했다. 자식도 아버지를 비교한다. 늘어진 러닝셔츠 입지 마라. 가뜩이나 늘어진 근육이 추하게 드러난다. 큰 옷도 입지 마라. 빌려 입은 것처럼 없어 보인다. 혼자 산에 가지 마라. 갑자기 사고 당하면 꼼짝없이 죽는다. 추울 땐 내복을 입어라 자신의 건강을 자신할 때가 아니다. 한창 때를 너무 회상하지 마라. 아직도 남은 날이 창창하다.’
  
  사십 년 전 따뜻한 형 같던 선임하사가 칠십 대 중반의 노인이 되어 내게 전해주는 ‘늙어가는 법’이었다. 하나님은 더러 사람을 보내 내가 깨닫게 해 주시는 것 같다. 사십 년 전 개새끼라는 욕을 먹은 걸 처음 알았다. 그게 사회생활을 모나게 하던 나의 정확한 모습이었다. 그가 장난같이 전해주는 글은 주님이 주는 따뜻한 훈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골방에서 사는 내게 그 분은 사십 년 전 선임하사를 보내주셨다.
  
  
  
  
[ 2019-08-07, 18: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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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중건    2019-08-07 오후 11:27
또 인생을 앞당겨 살게하는 좋은 글 보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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