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한테 소리소문 없이 돈 전해줘"
"추경예산 7조 때문에 전전긍긍하는데 내가 도와줘야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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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유리방으로 된 접견실에서 육십대 초반의 눈이 움푹 들어간 남자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사기단의 두목으로 기소되어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자신이 해외에 거액의 상속자금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그 돈을 국내로 들여오는 데 필요하니 경비를 주면 돈이 들어온 다음 몇 배로 갚겠다고 사람들을 속여 수십억을 편취했다는 범죄 내용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실 텐데 다 해 보시죠.”
  일단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할아버지가 박정희 대통령 주치의였어요. 박 대통령이 죽자 할아버지는 바로 미국으로 갔죠. 대통령의 측근 중의 측근이었어요. 무슨 돈인지는 몰라도 할아버지는 어마어마한 재산을 남겼어요. 그 돈이 지금도 세계은행에 보관되어 있어요. 제가 그 돈을 다시 국내로 들어오려고 했는데 도대체들 믿어주지를 않는 거예요. 판사가 세계은행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보면 바로 확인되는 거죠. 그런데 그걸 해주지 않는 겁니다. 입금확인서도 법원에 다 제출했어요. 그런데 판사가 그것도 믿지 않는 거예요.”
  그는 분노에 찬 어조로 말했다.
  
  “돈을 얼마나 상속받으셨습니까?”
  내가 물었다.
  
  “115경이요. 우리 예산이 일 년에 오백조 원인데 우리나라가 천년을 쓸 돈이 나한테 있어요. 그걸 대한민국에 들여오면 얼마나 이익이 되겠습니까?”
  그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실례지만 자기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변호사로서는 먼저 말씀하시는 분이 누군지를 알아야 하니까요.”
  
  “저는 아홉 살 때는 오하이오주에 살고 캘리포니아의 트리니티 대학을 나왔죠. 그 이후로는 국제금융을 했죠. 한동안 오사카에서 근무하기도 했어요. 할아버지는 워싱톤에 호텔을 가지고 계셨죠. 제 미국명은 제임스 리예요.”
  나는 그의 판결문 중 한국을 한 번도 떠나본 적이 없다는 부분을 떠올렸다.
  
  “공항의 출입국기록에는 미국을 오고 간 사실이 없던데 어떻습니까?”
  “저는 대통령 전용기가 오르내리는 서울공항에서 미국을 갔지 한 번도 김포공항을 통한 적이 없어요. 박근혜 대통령을 어려서부터 누나 누나 부르며 자라났어요. 아주 친해요. 여기 서울구치소에서도 벌써 열세 번이나 만났어요.”
  
  “미국에서는 누구와 친하게 지내셨습니까?”
  “내가 부동산 재벌이었던 트럼프하고 형님 동생 하는 사이에요. 나도 몽골에 십일억만 평 땅을 사놨죠. 오랫동안 보이지 않으니까 트럼프가 오해할지도 몰라. 사실 트럼프한테 전화 한 통이면 나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 나라 망신이니까 참고 있어요. 트럼프 말고 푸틴이나 아베하고도 친해요. 그런데 아베 그 녀석 요즈음 행태를 보면 찢어 죽이고 싶다니까.”
  
  그의 눈에서 갑자기 증오의 불길이 타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는 오래 전 다른 세계로 건너간 사람 같았다. 그에게 논리나 이성의 잣대를 들이대면 큰일난다. 나는 돈키호테를 수행하는 산쵸 판자가 될 필요가 있었다.
  
  “대단하신 총재님이시군요. 변호사인 제가 어떻게 모시면 될까요?”
  내가 공손하게 물었다. 그는 자신을 총재라고 했었다.
  
  “내가 감옥을 빠져나가는 건 너무 간단해. 세계은행 입금확인증만 법원에 내면 되니까 말이야. 내가 엄 변호사를 부른 건 두 가지 일을 맡기려고 하기 때문이요.”
  
  갑자기 그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그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계속했다.
  “내가 우선 100조 원을 줄 테니까 그 돈으로 한 번 세계적인 로펌을 만들어 봐요. 미국변호사들도 고용하고 말이야. 정직하고 성실한 변호사들을 모아서 좋은 로펌을 한번 경영해 봐요. 내가 일심에서 심부름시킨 변호사는 30억 원이나 줬는데 영 시원치 않아.”
  
  “정말 감사합니다. 그 다음 주시는 미션은요?”
  “문재인 대통령한테 1350조를 주려고 하는데 그 기증절차를 대행하도록 해요. 소리 소문 없이 하도록 해요. 추경예산 7조 때문에 전전긍긍하는데 내가 도와줘야지.”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왜 저를 부르셨습니까? 서로 모르는 사이 아니었습니까?”
  나는 그게 궁금했다.
  
  “당신이 정직하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래서 한번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왔네. 하나님이 보내주신 것 같아.”
  
  구치소를 나오면서 나는 황당했다. 그는 병원에 있어야 할 사람이었다. 망상의 세계 속에서 살지만 워낙 확신을 가져서 그런지 그를 따르는 산쵸 판자들은 그를 진짜 총재로 모셨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총재님의 재력을 얘기해서 30억 원이라는 거액을 모았다. 그건 현실이었다. 돈을 낸 그 누구도 세계적인 거물인 총재님의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같은 꿈을 꾸면서 깨어나기를 거부하는 것 같았다.
  
  40년 전 군 장교 시절 같이 근무하던 선임하사가 뜬금없이 나타나 그에게 면회를 가달라고 했다. 자기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지만 거액을 가진 총재님이시라고 했다. 하루 일당까지 넉넉히 전해 주었다. 뭔가에 홀린 듯한 하루였다. 그래도 그 광인은 망상 속의 거액으로 나라를 위하고 정의를 추구하고 있었다.
  
[ 2019-08-08, 10:5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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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19-08-08 오후 4:35
우리나라에 이런 애국자 많아 보입니다
자신도 완전히 총재로 생각하는 그야말로 달인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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