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장이 되고, 감옥에 가는 것까지 다 섭리(攝理)에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나는 구속된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다.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그는 대통령과 함께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이 뭘 잘못했느냐면서 저항했다. 손바닥만한 좁고 어두운 감방 안에서 칠십대 말의 한 노인으로 돌아온 그는 누웠다 일어날 때마다 온몸의 뼈가 덜그덕거리는 것 같다고 했다. 홑겹의 누런색 죄수복을 입고 끌려다니며 그는 구치소 의무실 앞에서 문신을 한 조폭 출신들 사이에서 떨며 서 있어야 했다. 권력은 그렇게 무상한 것이다.
  
  그는 자신에 대한 기소장을 보고 분노했다. 국정원에서 수십 년 동안 청와대에 예산지원을 해 오던 사실을 어떻게 그 자신만 찍어 개인적인 횡령죄로 다루느냐고 하면서 그게 법이냐고 따졌다. 그는 촛불혁명이 만들어낸 시대의 격류에 휩쓸려 버린 셈이다. 법치의 형식으로 죽은 권력에 대한 숙정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노아 시절의 홍수처럼 시대의 격류는 쓰레기도 치우는 역할을 했다. 수십 년 동안 국민 세금의 일부를 특별활동비라는 명목으로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장관 국회의원, 대법관 등 고위관리들이 개념 없이 써왔다. 백성의 고혈을 빤 조선시대의 부패와 마찬가지였다. 촛불정권은 적폐청산으로 민심을 얻으려 하고 있었다. 그는 희생양으로 바쳐진 것이다. 어느 날 그가 접견을 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 안에서 정말 귀중한 걸 깨달았어요. 국정원장으로 임명이 되고 감옥에 가는 것까지 다 섭리에요.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그는 섭리라고 표현했다. 고통 속에서 그가 내면의 두꺼운 껍질을 벗고 나온 것 같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감옥에 들어와서 깨달은 게 많아요. 내가 여기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마도 국정원장을 그만두고 골프나 치러 다니면서 정치나 세상 얘기를 하면서 거들먹거리면서 살았을 거예요. 감옥에서 달라졌어요. 삶의 본질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그의 영혼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 있었다. 그의 말 중에서 ‘섭리’라는 단어가 나의 가슴으로 들어와 너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게 뭘까. 인간은 보이지 않는 각자의 정해진 운명이 있는 것일까. 장자는 섭리를 체득해서 기쁨과 슬픔, 삶과 죽음이라는 허망한 굴레를 벗어나라고 했다. 생로병사는 드러난 필연이며 길흉화복은 감춰진 질서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나도 비바람 불고 눈보라 치는 현실의 광막한 땅을 걸어왔다. 인생 곳곳에 지뢰가 매설 되어 있었다. 타고난 미련함과 모난 성격 때문에 미움도 많이 받았다. 그 원인이 내게 있는지 모르고 세상을 향해서 손톱을 치켜들고 털을 곤두세우기도 했었다. 내 앞에는 항상 쓰디쓴 잔만 놓여져 있는 것 같았다. 세월의 강이 나를 싣고 장년에서 노년의 나루터로 흘러오게 했다. 돌이켜 보면 내가 사람들에게 혐오를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로 쫓겨간 것 같다. 하나님은 내게 환난을 내리셨지만 그것은 모두 다 나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응분의 환난이었다. 그런 것들이 다 섭리가 아니었을까.
  
  녹내장으로 눈이 침침하고 걸을 때 힘이 빠진 걸 보면 이제 풍화되어 가는 몸을 의식한다. 그분이 나에게 이제 일하는 것도 글 쓰는 것도 그만두고 나에게 오라는 명령을 내리실 때도 그다지 멀지는 않은 것 같다. 감사하며 햇살을 맞이하고 감사하며 간소한 식탁을 대하고 감사하며 천직에 종사하고 감사하며 잠자리에 든다. 더러 노트북 앞에 앉아 침침한 눈으로 뜻을 적어보기도 한다. 삶을 누림이 얼마나 즐거운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으면 죽음의 강도 두려움 없이 건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 2019-08-11, 14:5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1    2019-08-24 오후 8:54
주신 글에 항상감사하며 건투를 기원합니다!!! 감사1 감사! 감사!
   이중건    2019-08-11 오후 5:14
글 쓰는 것도 그만두고 나에게 오라는 명령을 내리실 때도 그다지 멀지는 않은 것 같다. 감사하며 햇살을 맞이하고 감사하며 간소한 식탁을 대하고 감사하며 천직에 종사하고 감사하며 잠자리에 든다. 더러 노트북 앞에 앉아 침침한 눈으로 뜻을 적어보기도 한다. 삶을 누림이 얼마나 즐거운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달으면 죽음의 강도 두려움 없이 건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또 철학과 종교 같은 글 감사합니다.
   초피리1    2019-08-11 오후 4:22
엄상익 변호사님, 오늘도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요즘 무더위 어떻게 보내세요? 건강 조심하세요.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코나스넷  |  리버티헤럴드  |  뉴데일리  |  뉴스파인더  |  뉴포커스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