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 피로(憐憫疲勞)
"수백억 예금을 한 푼도 쓰지 않던 노인의 돈으로 만들어진 재단은 여러 사람들이 월급을 받아먹는 놀이터가 됐습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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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노인이 평생 모은 돈을 기부하고 죽었다. 노인의 젊어서의 삶은 비참했다. 저녁 무렵이면 시장바닥에 버려진 배추 줄거리 몇 개를 주워다가 청계천변 어두운 판잣집 안에서 찌그러진 냄비에 된장 한 숟가락을 퍼넣고 국을 끓여 삶은 보리밥을 말아 먹었다. 그는 방바닥 밑에 감추어둔 지폐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다. 돈은 절대 쓰지 않았다.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는 음식점에서 사람들이 두고 간 소주병을 가져다가 바닥에 남은 술을 입 속에 털어 넣었다.
  
  개발시대와 함께 어느 순간 그는 거부(巨富)가 됐다. 6.25 전쟁 때 한강을 헤엄쳐서 건넜던 압구정 마을의 돌짝밭 몇만 평을 사두었던 것이 아파트를 지으면서 천정부지로 값이 오른 것이다. 현대건설의 정주영 회장이 찾아와 땅을 팔라고 사정했다. 그는 땅을 팔았다. 다음에는 사람들이 절대 찾지 않을 나쁜 땅을 찾았다. 교통도 나쁘고 접근하기 힘든 서울의 외진 곳을 찾아다녔다. 그는 대치동에 몇만 평의 땅을 샀다. 그 땅에 작은 집을 지어서 팔고 그렇게 반복했다.
  
  어느새 대치동 땅도 금값이 되었다. 마이더스의 손처럼 그가 하는 사업마다 황금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자신의 통장 속에 얼마나 돈이 있는지 헤아리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습관화된 그의 삶은 변화가 없었다. 어느 날 폐섬유증이라는 죽음의 사신이 갑자기 그를 데리러 왔다. 모든 게 허망했다. 그는 평생을 우상으로 섬기던 돈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전부 불에 태워 버리거나 바다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어느 날 병상에서 그는 한 텔레비전을 보다가 불쌍한 사람들이 나오는 걸 보고 전 재산을 그 방송국에 기부했다. 수백억의 현찰과 값비싼 땅이었다. 그의 돈으로 재단이 설립됐다. 그럴듯한 사회 명사가 이사장이 됐다. 어느 날 기부자인 노인의 돈을 담당하던 지점장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호소했다.
  
  “그 노인은 수백억 예금을 가지고 있어도 단 한 푼을 꺼내 쓰지 않았습니다. 지점장인 내가 선물로 가지고 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드시면서 이렇게 맛있는 건 처음 먹어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 돈을 관리한다는 사람들이 최고급 호텔에서 호화파티를 합니다. 그 파티석상에서 죽은 불쌍한 노인의 이름은 한 마디도 나오지 않습니다. 노인의 돈으로 만들어진 재단은 여러 사람들이 월급을 받아먹는 놀이터가 됐습니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 지점장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 분노가 내게도 옮겨 붙었다. 사회 명사인 그 이사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신의를 지키고 성실하게 해야 할 법적 임무를 위배했다는 주장이었다. 재판 도중 나는 이성을 잃고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그 명사에게 분노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마음이 없는 가짜인 것 같았다. 죽은 노인의 혼이 내게 들어온 것 같기도 했다. 소송을 제기하기 전에 쓸쓸한 그 노인의 무덤에 갔었다. 소송에서 졌다. 법원은 총리 물망까지 오른 그 이사장 편이었다.
  
  변호사의 평생은 그렇게 남과 다투는 일의 연속이었다. 공감을 넘어서 그들의 고통이 나의 내면으로 밀려와 나를 불태울 때가 많았다. 학문적으로는 그걸 ‘연민 피로’라고 하나보다. 분노가 내게 이입된 나에게 법정은 처절한 싸움의 장이었다. 하나하나의 사건을 무심한 남의 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생을 악취가 가득한 법정에서 지냈다. 정의가 유린되고 불공정한 세상에 분노했었다.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제 은퇴할 때가 됐다. 분쟁 속에 휘말리지 않고 평화로운 나머지 여생을 보내고 싶다. 요즈음은 어쩌다 법정을 가보면 낯선 풍경을 맞이한다. 검사나 판사가 다 어린아기 같아 보인다. 실제로 친구의 딸이나 아들이 재판장이 되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가 많다. 지금의 대법원장은 사법연수원에서 같이 공부하던 시절 나보고 형이라고 했다. 쉬고 싶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천직인 변호사를 힘이 있을 때 해야 할 것 같기도 하다. 변호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차분한 철학과 인생이 담긴 성실한 변론문을 써내는 게 변호사의 소명이 아닌가 한다. 판사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지는 하나님의 섭리다.
  
  하나님은 재판장 빌라도를 악역으로 쓰기도 했다. 내가 뭔가 바꾸어보겠다고 하면서 분노로 움직였던 행동은 어리석었다. 하나님의 섭리는 연자방아의 맷돌같이 아주 천천히 돈다. 그러나 밀가루같이 곱게 불의를 가루로 만드는 것 같다.
  
[ 2019-08-13, 18: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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