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무식하다고 해도 돼요…거짓말하기 싫었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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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칠십대 중반의 코미디언 이상해씨가 아흔일곱 살인 어머니의 손을 잡고 있는 게 보인다. 어머니도 아들도 노인이다. 그는 텔레비전 코미디 프로에서 항상 까칠한 모습을 보이면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 사람이었다. 시간의 바다 속에서 영원히 늙지 않고 웃고 떠들 것 같았다. 남아있는 영상의 세계 속에서 그는 아직도 그대로 활기찬 장년일 게 틀림없다. 그러나 현실의 그의 모습은 풍화되고 마모된 오래된 무덤 앞의 장군석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에게 잘해드리지는 못했어요. 그렇지만 같이 사니까 외롭게 해드리지는 않은 거죠.”
  
  그 한 마디에 어떤 깨달음이 온다. 나도 어머니가 칠십대부터 아흔 살에 돌아가시기까지 함께했었다. 나 혼자 방에서 책을 볼 때 어머니께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뒤에 와서 나를 보고 가시곤 했다. 함께 한다는 게 그런 의미였다.
  
  화면에 서대문 거리의 오래된 가로수 하나가 비치고 있었다. 잎을 다 떨군 겨울나무 같이 외로운 모습이었다. 그 나무를 가리키면서 늙은 코미디언이 회한을 털어놓고 있었다.
  
  “저는 연예인 중에 제일 밑바닥인 3류였어요. 유랑극단에서 노래로 시작했어요. 변두리 극장 쑈 무대를 돌아다녔죠. 돈은 생각도 하지 못하고 밥 주고 박수 쳐 주면 신나서 무대에 올랐죠. 그러다 사회자가 없어 대신 해보라는 때가 있어 사회자가 되고 코미디도 하게 됐어요. 무명시절 이 가로수 밑에서 하루 종일 일거리를 얻기 위해 서성거렸어요. 오줌이 마려워도 화장실에 가지 못했어요. 혹시 그동안 방송국에서 사람들이 나와 무대에 설 사람을 뽑아가는데 그걸 놓칠까 봐 그랬죠.”
  
  그의 말을 들으면서 새벽 노동시장에서 서성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예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그 때 죽은 코미디언 이주일은 제 후배였어요. 생긴 것만 봐도 웃음이 나오는 타고난 코미디언이죠. 같이 무대를 구걸하러 다녔죠. 한동안 같이 연기를 했어요. 이주일 씨는 대사를 주면 그걸 연기하면서 어떤 때는 진짜로 너무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대중에게 먹혀 최고의 인기 코미디언이 된 거죠.”
  
  벌레가 되어 오랫동안 땅 속을 기다가 어느 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른 매미처럼 그들은 인기 코미디언이 됐다. 대중들은 그들이 땅 속에 있을 때를 상상하지 못한다. 스타가 되어서도 또 새로운 시련의 물결은 다가오는 것 같았다. 그가 과거를 회상하는 표정으로 이런 말을 했다.
  
  “애들을 학교에 보냈는데 가정환경조사서를 보냈어요. 제가 고등학교 2학년까지 다니고 학교를 그만뒀어요. 아내는 졸업했다고 적당히 쓰라는 거예요. 저는 거짓말하기 싫었어요. 사실대로 정직하게 썼죠. 남들이 무식하다고 해도 돼요. 어쩔 수 없죠.”
  화면의 그에게서 풍겨 나오는 까칠함의 본질은 정직성인 것 같았다.
  
  “연예인인 제가 대마초를 피웠다고 해서 감옥을 갔다 왔어요. 사실은 제가 피우지 않았어요. 그런데 후배가 저와 같이 했다고 진술한 바람에 그렇게 됐어요. 그 바람에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었죠.”
  
  늙은 그의 작은 눈이 충혈되면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강변의 수초처럼 그의 백발의 머리도 듬성듬성한 모습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처음처럼 계속 이 길을 걷고 싶어요. 욕심인가?”
  진달래는 소나무를 우러러봐도 질투를 하거나 부러워하지 않는다. 나무들은 계곡 위에 있으면 햇볕이 좋을까 아래 있으면 물이 좋을까 자리를 탐하지 않는다. 있는 그 자리를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는 주어진 자기 그릇에 주어진 몫을 담고 정직하게 살아가려는 진달래 같은 사람이었다.
  
  
  
  
[ 2019-08-20, 22: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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