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돈 회장에게 배운 ‘사회적 겸손’
그는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는 나가지 않았다. 마지막에 자신의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하고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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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을 읽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주미대사로 지명한 인물이 그 자리를 거절했다는 짤막한 기사 한 줄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나이가 칠십이 다 됐고 자신이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그 일을 못 하겠다는 것이다. 그런 사양이 신선한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우연히 텔레비전 화면에서 앨범이 천만 장 이상 팔렸다는 가수의 부인이 인터뷰하는 장면을 봤다. 남편은 어려웠던 시절 “성공해도 생활에 어떤 변화도 없을 거야”라고 아내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런 자기를 잃지 않는 모습이 실현된 것 같다. 그것도 잔잔한 감동으로 내게 다가왔다. 가수는 음악이 자기의 존재 이유라고 했다. 주미대사의 직보다 자기 할 일이 더 소중하고 음악이 존재 이유인 가수같이 가치관이 다양해지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다.
  
  한 방울의 꿀에 달려드는 파리떼처럼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수십 명 수백 명이 달려드는 게 벼슬이다. 김영삼 정권이 시작할 무렵 평생 대학에 있던 한 노교수가 국가정보원장으로 지명을 받았다. 보좌관이 그를 모시러 온 차 안에서 그 교수는 들떠 이런 말을 했었다.
  
  “내가 사주팔자에 관(官)이 들어있는데 나이 육십을 훌쩍 지나도 아무것도 없는 거에요. 그래서 아닌가 했는데 역시 내가 관복이 있었어요.”
  
  그는 너무 좋아했다. 그 다음 날부터 텔레비전 화면에 비치는 그의 얼굴은 평생 학자로 살아온 온화한 표정이 아니라 정보기관장의 무서운 모습이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직위를 주면 얼굴부터 달라진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생겨도 사람은 변한다. 그게 인간의 가볍고 경박한 모습인 것 같다.
  
  그런 속물들 속에서 사회적으로 겸손하게 그리고 드러내지 않고 사는 진주 같은 현인들을 보기도 했다. 김상돈이라는 노인이 있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중학생 시절 벌써 30만 석의 지주였다. 할아버지가 조선 말 갑부였고 조선인으로 경성방직을 경영하는 아버지가 집안의 재산들을 파격적으로 늘렸기 때문이었다. 그는 조선 최고 갑부의 아들이었다. 그 집안의 부는 해방이 되도 줄지 않았다. 그룹 내에 동아일보와 고려대학교가 있었고 지금도 삼양 그룹은 재벌로서 존재하고 있다.
  
  그는 그 집안의 어른이었다. 그 노인이 살아있을 때 고문변호사였던 나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속살을 목격했다. 지독히도 검소한 사람이었다. 항상 농구화에 구겨진 면바지를 입고 다녔다. 승용차도 이십오 년 동안 타는 낡은 국산차였다. 부품이 없어 더 이상 타기 힘들 정도였다. 그의 사무실 비품들은 전부 오십 년 이상 사용되어 온 것들이었다. 한번은 그가 입은 정장의 재킷을 가리키며 얼마나 된 옷이냐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는 이십 년 전에 산 양복인데 아직 입을 만하다고 했다. 자신에게는 철저하면서도 남에게는 야박하지 않았다. 변호사의 보수도 후하게 지급했다.
  
  그는 절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는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자신의 시신을 연구용으로 기증하고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나는 그에게서 사회적 겸손이라는 걸 배웠다. 그는 부자라도 혼자 화려한 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내게 알려주었다.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최고 권력자가 되어도 평생 보리밥을 먹었다. 젊은 시절 자신과 약속한 검소한 생활을 지킨 것이다. 성경 속의 모르드개라는 인물을 공을 세워 왕이 내려준 옷과 마차를 타고 행진한 후에도 다시 예전의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다.
  
[ 2019-08-24, 19:1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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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터리    2019-08-25 오후 8:36
미국대사를 거절한것이 아니라 미국에서 반대했다는 뉴스 못 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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