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은 후에 거지 잔치 한번 더해 줘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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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시절 일요일이면 강남의 한 교회 예배당에 들어가 맨 끝자리에 조용히 앉아 설교를 듣곤 했다. 일요일마다 목사 한 사람의 말을 듣기 위해 골목이 사람들의 물결로 메워지는 현상 그 자체가 기적 같았다. 그 목사가 기적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다. 피가 끓게 하는 특별한 감동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끊임없이 몰려들었다. 그 자체가 기적이었다. 보통사람들은 좋은 음식상을 차려놓고 이웃을 불러도 몇 명 모이지 않는 게 시대상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유튜브를 통해 그 목사가 설교 중에 하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제가 어릴 적입니다. 어느 날 우리 할아버지가 ‘내가 곧 죽을 것 같구나’ 하면서 가족들을 불러 모으셨어요. 유언을 하시고 함께 기도했었죠. 그러면서 마지막에 하시는 말씀이 ‘내가 죽은 후에 거지 잔치 한번 더해 줘라’는 거였죠.”
  
  가난하고 헐벗었던 그 시절 도시는 물론 시골까지 깡통이나 바가지를 들고 밥 달라고 집집마다 다니는 거지가 많았다. 그 집에서는 일 년에 두 번씩 큰 무쇠솥에 밥을 하고 나물과 김치를 내어놓고 거지들이 와서 먹게 했다. 그걸 ‘거지 잔치’라고 불렀다. 이어폰을 통해 이제는 팔십대 중반을 넘은 목사의 말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일 동안 거지 잔치를 했어요. 고향 인근의 거지들이 모두 모여들어 먹었어요. 그런데 상을 치르는 마지막 날이었어요. 상여가 나가야 하는데 마을 거지들이 우리 할아버지 관을 지고 가겠다고 청하는 겁니다. 그래서 거지들이 할아버지 관을 들고 산까지 갔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다른 느낌이 가슴으로 다가왔다. 신도가 밀물같이 밀려드는 원인은 그 목사 할아버지가 살아서 베푼 사랑의 보답인 것 같았다. 하나님은 바로 보답을 하시지 않을 때도 많다. 그러나 후손에게, 그 후손에게 반드시 후한 대가를 치러주는 것 같았다.
  
  변호사로서 한 의뢰인 집안의 가족사를 파헤쳐가다가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한 적이 있다. 그 의뢰인의 할아버지는 조선 말 전라도 바닷가 작은 포구에서 살았다. 근면하게 일해서 넓은 땅을 가지게 됐다. 그는 부자가 됐어도 일부러 초가집을 지어 살았다. 돈이 많아도 화려하게 살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그걸 '세상적 겸손'이라고 여겼다. 그 집은 매일 오후 밥을 지을 때는 커다란 무쇠솥 하나를 초가집 앞길에 걸어놓고 밥을 했다. 굶는 사람들이 와서 밥을 먹고 가라는 뜻이었다. 밥을 주게 하던 그 노인은 쌀 한 알이라도 수챗구멍 옆에 떨어져 있으면 직접 주워서 입에 넣는 철저한 사람이었다. 자식들로 이어지면서 그 집의 재산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 집은 조선 말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부자의 반열에서 제외된 경우가 없다. 재벌인 삼양사 집안의 얘기다.
  
  평생을 변호사를 하면서 극도의 불행을 보기도 하고 일생이 행복한 사람들을 보기도 했다. 한두 번의 악한 짓으로 불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더 잘되는 수도 있다. 반석 위에 서 있다고 착각하는 그들은 그러나 사실은 벼랑에 걸려있는 외줄 위에 있었다. 한두 번의 작은 물방울 같은 선행은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선행의 물방울들이 모여 병목까지 차면 하나님은 분명히 엄청난 축복을 퍼부으시는 것 같다. 그가 아니면 자손에게라도. 악이 강한 것 같지만 천천히 오는 선이 승리하는 걸 보곤 한다.
  
  
[ 2019-08-25, 19:5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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