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쓰레기, 언론쓰레기부터 쓸어내야
저들에게 신사도(紳士道)는 통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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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을 살리는 촛불은 청와대 주사파의 촛불이 아니라 ‘베를린 장벽’ 붕괴의 물꼬를 튼 니콜라이 교회의 촛불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류성룡, 나라를 다시 만들 때가 되었나이다(송복 교수의 책)’를 오늘의 우리 처지와 비교해가며 꼼꼼히 읽어보았습니다. 늦었지만 우리야말로 진짜 나라를 다시 만들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충동을 강하게 느끼면서 이것은 ‘역사의 명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송복 교수는 책 서문에서 류성룡과 이순신, 이 두 위인이 동시대에 태어난 사실에 감탄하면서 “자신의 안위는 뒷전이며 오로지 지극정성의 일념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 이들이 있어 임진왜란이란 그 지독한 전쟁에서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위인이 없는 현실에서 북으로 끌려가는 조국(한국)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가슴에 무거운 압박을 느끼는 대목입니다.
  
  율곡(栗谷)도 당시의 조선은 나라가 아니었다며, 심하게 썩어 하루가 다르게 붕괴되어가는 한 채의 큰 집에 비유했습니다.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어느 대목(大木)도 손댈 수 없는 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집이 바로 오늘의 대한민국입니다. 어쩌면 그보다 더 고약하게 썩어 있는지 모릅니다. 그 때는 붉은 바이러스는 물론 없었고, 적어도 거짓말을 잘 해야 성공하는 그런 막된 사회는 아니었으니까요.
  
  나아가서 율곡은 “정치가 백성에게 끼치는 해독이 얼마나 심각하고 그 폐해가 얼마나 큰지 밝히고, 그것을 고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지금의 청와대발 유독성 가스처럼 당시의 ‘정치쓰레기’도 꽤나 지독한 악성 가스를 뿜어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율곡은 조선이 비록 나라는 썩었어도 인물은 있었다고 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오늘의 우리와 달랐고, 그 덕에 그런대로 나라가 글러갔던 것 같습니다.
  
  한국은 이미 발 하나가 ‘지옥의 문턱(고려연방제)’을 넘어선 상태입니다. 그런데 국민의 양심(정신)이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비돼 위기를 위기로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악마의 얼굴을 닮아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은 양심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서 ‘악의 제국’ 소련을 무너뜨렸습니다. 문제는 국민의 양심(정신)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을 겪어도 또 문재인 같은 자를 뽑아놓고 고생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노라면, 이런 국민에게도 미래라는 것이 있을까? 라는 상념에 젖게 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양심을 마음속의 삼각형에 비유하는데, 양심에 가책을 느끼는 행동을 하면 이 삼각형이 돌아가며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걸 계속 돌리다 보면 모서리가 마모돼 나중엔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고 합니다. 한국이 바로 그런 형국입니다. 김대중, 노무현에 이어 문재인 2년을 거치면서 국가(국민)의 양심은 고통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마비(부패)돼 있습니다. 그러니 어찌 선악(善惡)을 구별할 수 있겠습니까.
  
  “선악을 구별 못하는 자는 흑백을 분간하지 못하고 선악을 혼동하여 정치를 혼란케 한다.” 2천여 년 전 왕충(王充)의 말입니다.
  
  일반 사회의 부조리, 부도덕, 불법행위와 마찬가지로 정치쓰레기, 언론쓰레기도 양심의 마모현상이 빚어낸 가장 유독성(有毒性)이 강한 악성 바이러스입니다. 거기에 역사쓰레기까지 더해져 대한민국이라는 생물체가 그 유독성 가스에 감염돼 죽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민의 양심(정신)을 마비시켜 선악을 구별 못하는 멘붕 상태에 빠뜨려서 무조건 북한을 따르도록 하는 거짓말 적폐, 허구한 날 북한식 선동 선전으로 국가질서를 파괴하며 고려연방제 터전 닦기에 목숨을 건 청와대발 악성 적폐를 쓸어내지 못하면 나라는 죽게 돼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인민민주주의(고려연방제)로 이동 중에 있습니다. 청와대를 주석궁으로 바꾸는 작업이 종북 주사파세력에 의해 공공연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일반 국민과 지식인, 그리고 사회지도층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각기 제 역할을 찾아 서로 힘을 모을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합니다.
  
  청와대를 ‘주석궁’으로 바꾸는 작업은 벌써 13년 전, 2006년 6월, 전남 광주의 6.15기념행사장에 등장한 김일성의 ‘주석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평양이 아닌 대한민국 ‘광주’에 어떻게 김일성의 ‘주석단’이 등장할 수 있습니까? 지금 종북 주사파들 내부에서는 벌써 청와대를 ‘주석궁’이라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저들의 목표고 현실입니다.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부 세워내자’에 이어, 주사파 청와대의 촛불혁명 열기가 국민도덕과 사회질서는 물론 나라 자체를 불태우고 있는 최악의 국가위기에서 나라를 구해낼 특단의 수단을 찾아내야 합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야 합니다.
  
  독일의 실증사학자 랑케가 말한 시대를 주관하는 ‘時代의 神’의 등장, 다시 말해 흉포(凶暴)한 강도 프로쿠루스테스를 잡아 처치한 테세우스 같은 영웅,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의 물꼬를 튼 동독 라이프치히 니콜라이 교회의 촛불,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의 참화에서 칼레시 (Calais)를 구한 칼레시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양심)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흉포한 강도입니다. 이 강도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키가 침대보다 크면 침대 길이에 맞게 잘라내고, 키가 작으면 침대 길이에 맞게 늘려서 죽였습니다. 그런데 그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비밀장치가 있어 침대에 꼭 맞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평양 ‘주석궁’의 실체인데, 이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 바로 청와대입니다.
  
  하지만 그처럼 흉포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악행도 테세우스라는 영웅의 등장으로 끝이 났습니다. 프로크루스테스를 잡아 같은 침대에 눕히고 똑같은 방법으로 처치해버렸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종전과는 확연히 다른 새 길을 찾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프로크루스테스 같은 악마집단을 향해 헌법이 어떻고, 법이 어떻고, 양심이 어떻고 하는 정상인의 말을 백 번, 천 번 되뇌 본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저들에게 신사도(紳士道)는 통하지 않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혼돈에 빠져있는 파리(Paris)를 보고 “폭력을 멈추게 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한 프랑스의 대표적 좌파 지식인 장 폴 사르트르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테세우스가 프로크루스테스를 붙잡아 그와 똑같은 방법으로 처치한 것처럼, 청와대 주사파들을 상대하는 십계명은 역시 저들과 똑같은 방법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사도가 아니라 바로 테세우스의 방법입니다.
  
  촛불은 원래 평화와 사랑과 거룩함의 상징입니다. 1989년 니콜라이 교회의 작은 ‘평화의 기도회’를 시작으로 전국으로 펴져나간 ‘촛불행진’은 마침내 ‘독일 통일’이라는 대업을 이루어냈습니다. 바로 그 거룩한 촛불의 등장이 요구되는 때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반성하며 자신에게 되물어야 할 것은, 니콜라이 교회의 촛불은 지금도 우리에게 평화와 사랑과 거룩함의 상징으로 남아있는데, 왜 문재인의 촛불은 위선과 폭력과 파괴와 분열의 상징으로 기억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여기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가를 가슴(양심)에 손을 얹고 반성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한국을 살리는 촛불은 청와대 주사파의 촛불이 아니라 ‘베를린 장벽’ 붕괴의 물꼬를 튼 니콜라이 교회의 촛불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칼레시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이런 것입니다. 1337년에서 1453에 걸쳐 벌어졌던 영국과 프랑스 간의 100년 전쟁 당시, 영국이 힘겹게 프랑스의 소도시 칼레시를 점령하고 시민 전체를 처형하려던 계획을 주위의 간청으로 시민 6명만을 처형하기로 결정하자 칼레시민 전체가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 때 “내가 그 6명 중 한 사람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바로 칼레 최고의 부자 ‘외스티슈 드 생 피에르’였습니다. 그 뒤로 고위관리, 상류층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기로 결심하고 영국군 진지로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임신한 에드워드 왕비의 간청으로 왕은 그들의 처형을 면제시켜 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들이 칼레의 지도층으로서 누리던 기득권에 대한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정치지도자, 사회지도층, 그리고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요? 그런 상류층의 도덕적 책무와 정신이 죽어있는 국민의 양심(정신)을 깨워줄 때가 지금이란 말입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양심이 깨어나야 합니다.
  
  앞에서 말한 ‘시대의 신(영웅)’의 출현 없이는 청와대의 적색 바이러스를 청소해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청와대발 유독가스에 썩을 대로 썩은 ‘정치쓰레기’와 ‘언론쓰레기’는 더더욱 쓸어낼 수가 없습니다. 이 쓰레기들을 쓸어내지 않고는 나라가 살 수 없다는 게 문제입니다.
  
  ‘정치는 국가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 도스토에프스키’의 말대로, 이승만이 온갖 악조건 속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 ‘국가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사파 청와대에는 국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국가에 대한 사랑이 바탕이 돼야 할 정치가 종북 바이러스에 감염돼 ‘정치쓰레기’로 전락한 것은 국가적 큰 불행입니다.
  
  지금 나라 전체를 청와대발 악성(적색)바이러스로 죽게 만들고 있는 결정적 주범은 바로 눈치 10단의 ‘언론쓰레기’들입니다. 언론의 덕목(책무)은 국민으로 하여금 바르게 알도록 하고, 바르게 판단하도록 하고, 바르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완전히 권력의 개가 되어 동서남북을 못 가리는 추악한 신세가 돼 있습니다. 우리시대의 큰 불행입니다. 이제라도 양심이 깨어나 제자리로 돌아오길 하늘에 빌어봅니다.
  
  붉은 적폐로 점철된 문재인 정권, 이게 어디 나라입니까? 중국의 조공국(朝貢國)이 되고, 미국, 일본의 적이 되고, 북한의 지령 따라 움직이는 예속국(隸屬國) 같은 신세로 전락한 대한민국, 어떻게 살릴 것인가. 모두 지혜를 모을 때입니다.
  
  이제 희망은 시대를 주관하는 ‘시대의 신(영웅)’의 출현에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흉포한 강도 프로크루스테스를 잡아 처치한 테세우스 같은 영웅, 독일 통일의 물꼬를 튼 니콜라이 교회의 촛불, 그리고 칼레시민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의 출현에 국가운명이 걸려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시대의 신(영웅)’의 출현은 국민의 양심이 아픔을 느낄 만큼 회복되었을 때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정치쓰레기, 언론쓰레기 청소도 그럴 때 가능하다는 사실도 가슴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힘은 힘으로 제압할 때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진리를 실천에 옮기는 날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2019. 9. 6.
  
  
  
[ 2019-09-08, 15:5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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