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신종 양반’ 異見

홍표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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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년 들어 ‘교수(敎授)’를 우리 사회의 ‘신종 양반’ 특권층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조선조 양반처럼 국가권력층에 있으면서도 ‘실천력’이 약하고 ‘명분론’에 사로잡혀 나라를 분열시키고 국정혼란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급기야 ‘曺國 사태’로 더 확산된 듯하다.
  
  필자는 현직 교수다. ‘바다’를 연구한다. 태풍이 바다를 지나며 일으키는 각종 현상을 컴퓨터를 이용해 조사한다. 실제상황 관측이 어려운 연구 분야라서다. 이런 학문분야를 ‘해양수치모델링’이라 한다.
  
  이런 전공으로 나름대로는 평생을 진력해 왔다고 자부하고 싶다. 교수직 정년을 얼마 안 남기고 굳이 보람을 찾는다면 이뿐일 것이다. 그런데 정치와 무관한 많은 ‘교수’들을 ‘신종양반’이라 도매금으로 넘기는 걸 볼 때마다 자괴감이 든다.
  
  ‘敎授’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가르침을 주는 者’다. 영어로는 ‘professor(앞서 말하는 者)’다. ‘research(연구)’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미 남이 찾아본 걸 되찾아보는 일(re-search)’이 天職인 그룹이다. 평생 자기 전공 첨단 분야에서 ‘흥미를 좆아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교수들이, 권력을 등에 업고 ‘소득성장주도’니 ‘검찰개혁’이니 하면서 제 학문논리를 정책화하려다 자칫 나라를 망치고 있는 소위 ‘polifessor(폴리페서)’들과 왜 同種이 되어야 하나? 대다수 ‘교수’들은 폴리페서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60~70년대 근대화 산업뿐만이 아니라 오늘날 첨단 산업의 배후 役軍으로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해 온 바 클 것이다.
  
  교수는 전문직이다. 그 분야에서 사회일반을 선도할 지식인이다. 아니, 지식인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의 ‘지식’은 끝없이 ‘새로 찾는 者(researcher)’들로 쉬이 낡은 게 되고 바뀔 수 있다. 그래 ‘끝없이’ 수정되고 새로워져야 한다. 세계가 하나 된 지금은 더하다.
  
  그런데 그가 ‘연구현장’을 떠났다 하자. 사실상 교수답기는 어려울 것이다. 연구실을 벗어나 소위 ‘외도(外道)’한 폴리페서가 교수세계의 지탄을 받는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교수’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가 바로 정착될 때 지식인(전문인)의 사회적 역할도 바로 정착될 것이다.
  
  
[ 2019-11-27, 11: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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