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극장을 지키는,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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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장을 들추다가 우연히 십일 년 전 일월 육일 저녁 일곱시의 나를 발견했다. 나는 강남의 뤼미에르 극장에 혼자 앉아 있었다. 몇 명의 관람객만 있는 텅 빈 영화관이었다.
  
  화면에 영화가 흐르고 있었다. 쓸쓸한 도시의 뒷골목을 하얀 수은등이 무심히 밝히고 있다. 수염이 덥수룩한 남자가 낡은 기타를 들고 노래를 부르고 있다. 지나가는 행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웅얼거리는 노래소리는 연기같이 밤하늘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장면이 바뀐다. 그는 낮에 진공청소기를 고치는 수리공이었다. 벽에는 칠이 벗겨진 낡은 기타가 벽에 기대어 있었다. 일하는 시간 외에는 그에게서 음악이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작사를 하고 곡을 붙였다. 밤거리가 그가 만든 노래를 발표하는 무대였다. 독특한 인생이었다. 그 극장의 분위기에 걸맞는 영화 같았다.
  
  그 극장은 번잡한 강남거리에서 고독한 섬이었다. 허름한 사층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면 속이 드러난 낡은 큰크리트 벽이 보였다. 몇십 년 전 극장들의 모습 그대로였다. 좌석에서는 싸구려 향수 냄새가 피어올랐다. 그런 냄새와 허름한 극장의 모습이 기억 저편에 있던 나의 아련한 소년시절의 기억을 퍼 올리곤 했다.
  
  초등학교 시절 친구가 변두리인 신설동에 있는 노벨극장 집 아들이었다. 그 친구 덕에 극장을 무상으로 출입하는 특혜를 얻었다. 영화는 천국을 들여다보는 창이었다. 화면 속에 화려하게 펼쳐지는 세상을 보며 감수성 있던 소년인 나는 그 황홀한 세계에 빠져 들어갔다. 거기서 율 브린너가 나오는 ‘대장 부리바’를 보기도 했다. 데뷔한 윤정희라는 여배우를 보면서 세상에 저렇게 예쁜 여자도 있나 하고 며칠 밤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삼류극장은 항상 썰렁한 분위기였다. 겨울이면 그 넓은 공간의 구석에 무쇠 연탄난로를 피워놓았다. 텅 빈 영화관에서 나는 채플린의 무성영화를 보기도 했다. 그곳에서 더 이상 볼 영화가 없을 때에는 전차를 타고 제기동의 오스카극장과 청량리 로터리의 동일극장까지 진출했다.
  
  중고등학교 시절도 돈만 생기면 서울의 극장들을 순례했다. 종로3가의 단성사와 피카디리극장 그 길 건너편의 서울극장, 을지로의 계림극장, 스카라극장과 명보극장, 퇴계로의 대한극장, 탑골공원 뒤의 파고다극장, 광화문의 국제극장과 시청 뒤의 경남극장 등을 반복해서 돌았다. 어린 시절 먹던 음식이 혀에 배듯이 그 시절 극장의 분위기가 나의 마음에 밴 것 같았다.
  
  나이 사십이 넘어 강남역 부근의 법무법인에서 근무하면서 애용하던 곳이 뤼미에르극장이었다. 그 극장에는 소년 시절 갔던 극장의 분위기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극장 주인은 독특한 영화들을 고집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이 예술영화들이었다. 더러 관객이 거의 없는 기독교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항상 객석은 열 명 이내의 손님이었다. 그렇게 하고도 극장이 존재하는 게 신기했다.
  
  나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 극장 귀퉁이에 놓인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음미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날도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극장 입구 옆에 놓여진 비닐의자에 잠시 앉아 있을 때였다. 시계가 밤 열 시 가까이 됐다. 그 앞의 의자에 앉아 장부같은 걸 들추고 있는 낯이 익은 남자가 보였다. 일자로 난 짙은 눈썹의 미남 탤런트 하명중씨였다. 그가 그 극장을 운영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배우였던 그는 영화감독으로 변신해서 예술성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가 흥행에 실패했다는 토막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그는 자기가 만든 작품을 그 극장에서 고집스럽게 상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그는 철학이 있는 사람 같았다. 그의 형 하길종 영화감독이 쓴 수필집도 읽었던 적이 있다.
  
  나는 낡은 극장과 그런 극장을 고집스럽게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막연한 친근감을 느낀다. 외고집으로 사는 시대에 조금 뒤떨어진 듯한 사람들을 보면 오래된 좋은 책을 대하는 훈훈한 느낌이 든다. 그날의 일기는 그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요즈음 그 낡은 극장 앞을 지나다 보면 다른 영업을 하고 있다. 마음이 찡하다. 역사가 묻어있는 곰팡내 나는 극장이나 여관, 식당들이 더러 보존되어 있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2019-12-13, 00: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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