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없는 비참한 생활(?)'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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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쪽방촌을 추적 보도하는 화면이 나오고 있었다. 뒷골목의 낡은 건물들을 닭장같이 개조해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쪽방 하나의 크기는 가로가 2.1미터 세로가 1.5미터였다. 평수로 치면 대충 한 평 정도였다. 한 사람이 누우면 빈 공간이 거의 없었다. 창문에서는 햇빛도 제대로 비치고 있지 않았다. 화장실이나 수도는 열 명이 공동으로 쓰고 있었다. 가난한 노인들이나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그런 쪽방을 빌려 살고 있었다. 인터뷰에 응하는 사람들마다 그런 좁은 공간에서 사는 자신을 비관하고 정부 당국에 원망을 퍼붓고 있었다. 그들의 말이 끝난 후 진행자가 화면에 나타나 이렇게 세상을 고발하고 있었다.
  
  “냉장고 하나 놓을 수 있는 이런 쪽방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화장실에서도 악취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동정하는 듯한 말을 하는 피디의 입에서는 정부당국에 대한 증오가 뿜어져 나왔다. 다음 화면이 무심코 눈에 들어왔다. 좁은 방 벽에 시렁이 놓여있고 그 안에 문학서적이 차 있다. 창작과비평, 현대문학이 보였다. 작가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라는 소설 제목도 보였다. 창문 아래로 자그마한 앉은뱅이 책상이 놓여있고 구석에는 커피 포트가 보였다. 인터뷰를 하는 그 방의 주인이 취재를 나온 방송사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경희대 법대 68학번이예요. 젊어서부터 신춘문예에 응모하기 위해 소설을 써 왔어요. 지금도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이 방에서 글을 써요. 이렇게 사는 게 뭐 어때요? 괜찮아요.”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에 나는 공감했다. 젊은 시절 나도 고시원의 쪽방에서 생활을 했던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내게는 독립된 왕국이고 신성한 공간이었다. 그 좁은 공간에서 법서를 읽으면서 지냈다. 꿈이 있던 내게 그 방은 고통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는 신촌의 쪽방을 얻어 살림을 시작했다. 한 지붕 아래 열세 가구가 사는 집이었다. 바로 옆의 손바닥만한 쪽부엌에 석유풍로와 코펠 그리고 아래층 수도에서 물을 길어올 양은 찜통이 살림의 전부였다. 열세 가구의 수십 명이 층계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 하나를 사용했다. 나는 그 쪽방에서 비가 오는 날이면 따뜻한 방바닥에 배를 깔고 소설 한 권을 읽다가 배가 고프면 인스턴트 우동 한 그릇을 끓여 먹으면서 행복감을 느꼈었다. 사랑이 있으면 쪽방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공간의 넓고 좁음은 행복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다.
  
  화면 속에서 피디가 냉장고 하나 놓을 자리 없는 비참한 생활이라는 말은 유복한 세대에 태어난 그의 관념적인 멘트 같았다. 우리는 모두 냉장고가 없이 살아온 세대였다. 냉장고가 있는 집은 그걸 신주 단지 모시듯 했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구경을 하러 가고 부러워했었다. 그런 냉장고가 모든 사람들에게 필수품이 된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서 살아온 육십대 중반을 넘긴 우리 세대와 젊은 세대는 다른 것 같다. 그게 세대 차이일까.
  
  사회가 풍족해 지면서 다른 사람들은 다 가졌는데 나만 갖지 못했다고 느끼는 것들이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것 같다. 부족한 자신을 탓하면서 가지려고 애를 쓰지만 상황이 역부족인 경우 고통은 심해진다. 과연 다들 그럴까? 2011년 9월 54세의 나이로 교통사고로 죽은 김우수 씨는 철가방을 들고 오토바이를 타고 짜장면과 짬뽕을 배달하는 중국음식점 배달원이었다. 그가 잠을 자는 곳은 한 평짜리 고시원 쪽방이었고 받는 월급은 칠십만 원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부모 없는 아이들 몇 명에게 매달 십만 원씩 보내주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었다.
  
  “쪽방에 누워 내가 후원한 아이들한테서 온 편지를 읽고 또 읽었어요. 그 편지를 읽는 시간이 너무 행복했어요.”
  
  그의 영혼은 쪽방을 벗어나 광활한 천국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김정국은 ‘선비답게 사는 것’이라는 글에서 책 한 시렁,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 하나, 거문고 한 벌, 벗 한 사람, 차 화로 한 개, 지팡이 하나 그 외 필요한 게 뭐가 있겠느냐고 쓰고 있다. 우리 조상의 청빈사상이다.
  
  나는 이제는 조금 넓어진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아파트 입구 쪽에 쪽방을 만들어 거기서 책도 읽고 글을 쓴다. 작은 책상과 의자 책장 노트북이 전부다. 그 안이 나의 활동무대다. 여기서 울고 기도하고 일을 한다. 나는 하나님과 함께 일함으로써 이 작은 방 안에서 세상에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방의 넓고 좁음이 행복의 기준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행복에 대한 기준은 내가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내 마음을 돌리고 보는 시각을 바꾸고 나만의 잣대를 만들어가는 게 먼저 아닐까.
  
[ 2019-12-14, 01: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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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부자    2019-12-17 오전 7:19
다음번 자유대한민국의 대통령은 누가 됏음하고 마음속으로 정했습니다.
잘살건 못살건 자유대한민국에 태어나 성인이된 국민에게 조건없는 배당금을 주겠다고하는 사람! 모든 국민을 중산층으로 만들겠다 염원하는 사람~~

저는 평범한 자유대한민국 국민으로 꽁짜의식이 몸에 밴 사람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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