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을 바꾸니 열등감이 사라졌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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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여 년 전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무렵이었다. 정년퇴직을 한 아버지가 중풍에 걸려 어머니와 전세를 얻은 아파트의 한 방에 있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여동생이 있었고 아내와 아들딸이 있었다. 삼십대 초반의 나는 그런 한 집안의 가장이었다. 가족의 입에 밥이 들어가게 해야 했다.
  
  혼자서 법률사무소를 차릴 용기도 없었다. 법조인 출신의 국회의원 사무실에 들어갔다. 그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니다. 내가 사정을 해서 들어갔다.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 일을 해주는 대가로 사무실이 비었을 때 잠시 사용하는 것이었다. 판사를 하다가 국회의원이 된 그는 정치인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그가 꾸는 꿈의 마지막 종착역은 대통령인 것 같았다. 나는 그가 나타나면 주눅이 들었다. 나름대로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그는 자신의 성공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얼마나 자기를 밀어 주는 지를 자랑했다. 지역구를 관리하고 선거에서 이기는 비결을 말해주기도 했다. 그의 힘을 업으면 출세길이 열릴 것 같았다. 그는 직접적으로 그런 암시를 주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쫓겨났다. 그의 일을 해주다 보면 더러 돈을 쥐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그가 사건을 맡고 실제 일은 병아리 변호사인 내가 하는 걸 보고 그렇게 한 것이다. 그게 얼마간은 과장되게 의원님의 귀에 들어간 것이다. 졸지에 갈 데가 없는 신세가 된 것이다. 팁을 받을 때마다 보고를 하고 그 돈을 건네줘야 하는데 내가 잘못했던 것이다. 고민을 하긴 했었다. 그래서 그 사무실에 있는 사무장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국회의원의 매형이 되는 그는 모른 척 하고 받아 쓰라고 권유했다. 그 말을 들었다가 나만 나쁜 놈이 되어 쫓겨났다는 후회가 들었다.
  
  변호사로 밥을 먹고 살기 위해서는 부자를 많이 알아야 했다. 고교 동창 중 부자인 친구들의 모임에 착실히 참여하기도 했다. 돈 있는 친구 앞에서는 새가슴이 되었다. 잘 대하면 소송사건을 맡기거나 소개라도 해 주겠지 하는 마음이었다. 어느 날 부자인 친구가 아버지 사건기록을 가져다주면서 법률검토서를 써 보고하라고 했다. 재벌급 회사였다. 아버지는 철강회사를 가지고 있었고 아들은 거액을 뉴욕 증권시장에서 돌리고 있었다. 밤을 새워 기록을 검토하고 법률의견서를 썼다. 오탈자를 살피고 또 살피고 핵심에 줄을 그어 단번에 눈에 들어오게 신경을 썼다. 그게 변호사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다음날 오후 장충동의 넓은 잔디가 보이는 회장님의 거실에서 진땀을 흘리며 브리핑을 했다. 얘기를 다 들은 회장은 수고했다는 한마디를 하고 가보라고 했다. 그게 끝이었다. 기본 상담료조차 주지 않았다. 그날 저녁 어둠이 밀려들어오는 텅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있었다. 정말 초라한 느낌이 들었다.
  
  비참했던 또 다른 기억 하나가 갑자기 나무 사이로 밀려드는 안개같이 머리 속으로 스며들어 왔다. 큰 제약회사의 후계자로 내정된 고교 동창이 오라고 해서 그가 있는 강남의 룸살롱으로 갔다. 화려한 인테리어의 룸은 왕실 같았다. 황태자 같은 친구와 그를 따르는 다른 친구들 옆에 늘씬한 미녀들이 앉아 시중을 들고 있었다. 자존심상 팁은 내가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주머니 속에는 돈이 없었다. 그런 룸살롱에서의 팁은 고액일 것 같았다. 몇시간 그 자리에 있는 나는 고역이었다. 옆에 앉아 있는 호스티스 아가씨에게는 눈길 한번 보내지 않았다. 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술자리가 끝나자 그곳의 황태자였던 친구는 술값뿐만 아니라 두둑한 팁을 아낌없이 뿌렸다. 그 자리에 갔던 비굴한 내가 미웠다.
  
  어느 순간 작은 깨달음이 왔다. 상대방에게 열등감을 가지는 것은 그와 똑같은 잣대로 자신을 재기 때문이었다. 부자 앞에서 비굴해졌던 건 그 부자에게 신세를 져 볼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까닭이다. 권력을 가진 사람에게 아부를 했던 이면에 그의 힘을 업어 출세해 보겠다는 욕심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맞선다면 그들의 앞잡이나 종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나는 권력자나 부자보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기로 했다.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했다. 성경은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지식노동자로 바닥 사람들을 위해 땀을 흘리고 일당을 받겠다고 마음먹었다. 가치관을 바꾸니까 나는 자유인이고 종이 아닌 주인이었다.
  
  
  
[ 2020-02-13, 15:2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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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학산    2020-02-14 오전 12:51
허허 나 참......
부자와 빈자가 거래를 하면 빈자가 손해본다는 말을 왜 미리 몰랐소이까?
하긴 뭐 스스로 깨닫는 것이 최상이요 최선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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