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票의 작은 愛國心이 이 나라를 건진다

홍표정(회원)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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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총선이 21일 남았다. 필자는, 조갑제닷컴 ‘회원방’에 ‘글’ 올리는 건 곧 ‘정치 활동’이라 본다. 조금 비약하자면, 여기 필자들은 다 ‘작은’ 정치인이라는 것이다. 물론 대개는 필자처럼 ‘본업(本業)’이 아닐 터이기에 ‘직업 정치인’은 아닐 것이다. 그래, 때론 이런 참여가 과연 ‘바람직한가’ 의문이 들곤 한다. ‘주제 넘는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심지어는, ‘시간 낭비’가 아닐까 하는 심사(心思)도 든다. 정치인에 까닭 모를 ‘노여움’이 생기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사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정치가’가 제 ‘본분(本分)’을 다하는 나라일 것이다. ‘국정(國政)’을 잘 살피는 나라일 것이다. 그래 凡人들이 이렇게 정치에 나설 일이 없는 나라일 것이다. 정치인의 ‘本分’은, 필자가 보기에는 ‘국민을 目的으로 삼는 國政을 행하는 것’이라 본다. 문제는 이런 정치인 보기가 드물다는 점이다. 오늘날 이 국정혼란의 문제가 실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링컨은 남북전쟁 중이던 1863년 11월, ‘게티즈버그’에서, 저 유명한 소위,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를 천명하였다. ‘주권재민인 정부’를 강조한 것이다. 그 후, 이는 확고한 미국의 국가이념이 되었고 사실상 전 세계 민주국가의 이념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헌법 제1조(주권재민원칙)'에 이를 규정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이 나라에서 ‘지워지고 있는 원칙’이다. 링컨이 ‘정치가’로서 위대한 건, 이 ‘원칙’을 ‘현실정치인’으로서 ‘만천하’에 천명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이 ‘남북전쟁’의 판세를 결정진 ‘게티즈버그’ 전장(戰場)에서다. 단 3일 만에 무려 5만1천여 명의 젊은이를 앗아간 남북전쟁 중 가장 참혹한 전쟁이 막 끝난 자리에서다. 그로선, ‘민주국가’란 실로 이런 ‘고귀한 희생’ 위에서 서리란 점을 내외에 표방(標榜)하고 싶어서였지 않았을까? 고작 300자 단어도 채 안 되는 2~3분짜리 이 ‘연설문’이 그 뒤 美 초등교육의 ‘기초학습문장’으로 두고두고 사용되어 ‘시민의식(주권재민의식)’의 토양이 되었다. 그래 오늘의 미국이 되었을 것이다.
  
  유감스러운 건, 우리도 이 ‘정신’을 ‘헌법 제1조’에 심어놨건만 링컨처럼, 국민 앞에 ‘명백히’ 널리 알리고 국민을 깨우쳐서 ‘민주시민의식을 고취(鼓吹)’한 대통령이 이 땅에는 없었다는 점이다. 文 대통령처럼, 평소 언필칭(言必稱) ‘민주투사’인양하다, 막상 대통령이 되자 ‘표변(豹變)’해, ‘권력자’의 ‘단맛’만 즐기는 者는 있어도, 제게 ‘쓴맛’일 수 있는 이 ‘원칙’를 국민에게 일깨우는 통치자는 없었다고나 할까? 이승만·박정희의 ‘아쉬운 점’이다.
  
  사정(事情)은 있었다. ‘먹고살기에 바쁜 나라’를 바로 잡는 게 ‘먼저’였다 할까? 소위 ‘등따습고 배부르고 보자’는 거였다. 그래 소위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나왔을 법하다. 이제 세월도 꽤 지났다. ‘등따습고 배부를’만 하다. 지금이야말로 ‘시민의식’을 새로 각성(覺醒)할 때가 아닐까 한다. 그야말로 ‘投票’로써 보일 때다. ‘票’만이 위정자들에게 이를 일깨울 수 있다. 지금이 적기(敵期)일 것이다. 실로, 그 ‘시험장(試驗場)’이 이번 ‘총선’이 아니겠는가! 그래 우리 국민을 다 ‘수험생’이라 보고 싶다. ‘主權在民原則’이 살아있음을 '권력자'에게 확인시키는 시험이란 점에서다.
  
  사실, 독재자에게 맡겨 ‘民主’를 달성한 예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이 文 정권은 사실상 ‘독재정권’이다.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국민분열을 다반사로 조장, 국민의 뜻을 왜곡, 무시한 안하무인(眼下無人)의 정권이라서다. ‘헌법 제69조’에 따라, 대통령 취임식 선서(宣誓)를 통해 ‘헌법을 준수’하겠다고 국민과 '엄중히' 계약(契約)했음에도, 이를 ‘하찮게’ 위약(違約), 국헌문란(國憲紊亂)을 밥 먹듯 자행하고서도 인면수심(人面獸心)이다. 이게 실은 ‘역사에 남을’ 이 文 정권, 최대의 악정(惡政)이 될 것이다.
  
  이 惡政을, ‘프랑스 혁명’이나 ‘남북전쟁’처럼 ‘낭자한 유혈(流血)’ 없이 ‘무혈(無血)’로 바로잡을 유일한 수단이 ‘국민의 票’가 아닐까? ‘너, 나’ 한 표일 것이다. 그래 필자는 이렇게 믿고 싶다. 이 너, 나 한 표의 ‘작은’ 愛國心이 이 나라를 건지고, 이 나라를 바꿀 것이라고. 그래 이번 총선에 유권자는 다 나가 ‘작은’ 정치인이 되자고. 그 길 만이 마침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선 이 나라를 구할 것이라고.
[ 2020-03-26, 00:4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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