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형태의 인간
“돈 줬는데 변호사 새끼가 재판 빨리 끝내지 않고 뭐하는 거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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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변협신문의 편집인을 이년 동안 한 적이 있다. 그 동안 전국의 변호사들 중에서 오십 명 가량을 직접 찾아가서 인터뷰를 했었다. 같은 변호사라는 일을 해도 그 삶의 방향이 극에서 극을 달리는 것 같았다. 사법연수원을 거의 톱으로 졸업하고 대형 로펌에서 가서 일하는 변호사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 하급 기능직 공무원으로 지냈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좋은 빌라가 있어요. 최고급 골프와 헬스회원권을 가지고 있죠. 수시로 해외여행을 다니고 집에서 첼로를 배우고 있습니다. 로펌에서 주는 기사 딸린 외제차가 있구요.”
  
  가난했던 아버지에 비해 상류사회로 오른 그의 성공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의 행동을 관찰했었다. 자신의 고객이거나 필요한 걸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불의를 저질러도 외면하는 타입인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저 사법연수원에서 일등을 했습니다. 발표하시려면 그걸 꼭 써주세요.”
  
  그의 자랑과 가치관을 알 것 같았다. 나는 과시하면서 가면만 보이려는 이면에 있는 그의 상처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깔보이고 멸시당하는 환경에서 자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남해의 바닷가 도시에서 법률사무소를 하는 변호사를 만났다. 와글거리는 재래시장통의 초라한 점포 자리가 그의 사무실이었다. 사무실 안은 어지러웠다. 벽에 박스가 가득하고 녹이 슨 철 책상 서너 개가 놓여있을 뿐이었다. 가난한 공기가 그 안에 가득차 있는 것 같았다. 시장통의 허름한 식당에서 그 변호사와 마주 앉아 얘기를 들었다. 그는 마음 문을 활짝 열어놓고 속에 있는 것들을 주저 없이 털어놓았다.
  
  “저는 강원도 깊은 탄광촌에서 광부 아들로 자랐어요. 중노동의 고통을 술로 달래던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무렵 어느 날 눈이 덮인 논에서 얼어 죽었구요. 제가 공부를 좀 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영업사원으로 스테인리스 냄비를 팔러 다녔죠. 그런데 어느 날 영업소장이 나보고 거래처 사장에게 가서 무조건 빌고 오래요. 영업사원이란 게 그런 감정노동자였죠. 나는 거래처 사장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무조건 빌었어요.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한탄이 들면서 속으로 피눈물이 흐르더라구요. 그래서 사표를 쓰고 퇴직금으로 고시촌에 들어가 죽기 살기로 공부했죠. 그리고 변호사가 됐어요.”
  
  그는 거기서 말을 중단하고 잠시 침묵했다. 이윽고 그가 나를 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말입니다. 이 썩은 세상의 악취 나는 골목골목에 붉은 깃발이 펄럭이기를 희망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그게 불가능하다면 제가 이 시장통부터 다니면서 표를 얻을 거예요. 정치로 들어가서 세상을 바꾸고 말 겁니다.”
  
  나는 그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개인법률사무소를 하면서 그런 사람들을 종종 보아왔다. 나는 오랫동안 변호사를 해 오면서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만났다.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거나 없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보는 게 세상의 고약한 버릇이었다. 꼭 많이 가지고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건 아니었다. 사무직은 직급이 낮아도 공원과 같이 밥을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아파트 한 채만 가지고 있어도 경비원을 깔보고 무시했다.
  
  변호사를 하면서 나도 많은 수모를 당해 봤다. 동네 커튼가게 아저씨가 작은 민사사건을 맡겼었다. 수임료도 나로서는 몇 푼 안 되는 사건이었다. 의정부 법정까지 수시로 가서 판사에게 고개를 숙여야 하는 는 고달픈 과정이기도 했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일월의 어느 날이었다. 재판을 마치고 법원 앞에서 커튼가게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진행 상황을 알려주었다.
  
  “돈 줬는데 변호사 새끼가 재판 빨리 끝내지 않고 뭐하는 거야?”
  
  그가 평소 당해왔던 설움을 내게 거꾸로 토해내는 것 같았다. 이기적이고 천박한 인간들은 먼저 개개인의 영혼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개인의 영혼이 변하지 않는 껍데기만의 혁명은 가짜다. 사회주의권의 몰락은 인간의 본질을 착각한 데서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은 내게 예언자의 입을 사용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말을 가슴에 품고 사는 너 똑똑히 들어라. 누가 너를 조롱하더라도 너는 두려워하지 말아라. 사람들이 아무리 깔보고 멸시해도 겁을 내거나 무서워하지 말아라. 그들은 좀 먹은 털옷처럼 해어지지만 내가 네게 줄 평화는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성경 한 권 들고 믿음으로 어떤 일이나 감사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인간. 나는 그런 인간을 추구한다.
  
[ 2020-03-28, 22:2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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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답과오답    2020-03-29 오후 3:47
정말 힘이 드시는군요
무었이 우릴 이토록 각박하게 만든건지요
우리는 왜 이리도 악착스러울까요
인성이 갈수록 나빠지는거 같습니다

   이중건    2020-03-29 오전 12:26
또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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