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는 지식 노동자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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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여 년 전 변호사를 처음 시작할 때 돈이 없었다. 아내가 아파트의 옆집에 가서 돈을 꾸고 나는 변호사를 하는 친구에게서 얼마간의 돈을 얻었다. 돈이 없을 때 주변 사람들의 인심을 알게 되는 것 같았다. 가깝다고 생각했던 한 친구는 은행에 저축한 돈이 있는데도 해약하면 이자를 손해 본다고 나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 이자 이상으로 나중에 갚아주겠다고 했는데도 그는 냉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 돈으로 사무실을 얻었다. 월급을 받는 사람은 작거나 크거나 매달 돈이 들어오지만 자영업자인 변호사는 순간순간 돈이 흘러나가는 것 같았다. 운영자금으로 꾼 돈이 조금씩 없어지고 있었다. 하루 앞 한 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사건의뢰가 들어와야 수입이 생기는데 언제 들어올지 보장이 없었다. 사무장은 곧 망할 것 같다고 혀를 차며 나갔다. 여직원도 눈치를 보더니 다른 사무실로 옮겼다. 그게 세상 인심이었다. 같은 건물 뒤쪽에 있는 검사장 출신 변호사의 사무실로 가 보았다. 그가 자랑같이 말했다.
  
  “어제 전화 한 통 하고 칠천만원을 벌었어.”
  
  그야말로 전관예우의 전형이었다. 그게 로비고 청탁이었다. 그 돈을 혼자 다 먹지는 않을 것이다. 후배검사가 돈을 받고 룸살롱에서 향응을 대접받았다면 그건 분명 뇌물이었다. 그런데 그는 자랑하고 있었다. 원래 세상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나 배임을 한 범죄인들은 뇌물 같은 불법적인 방법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구더기가 똥물을 좋아하는 건 그곳이 그들의 고향이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다시 옆에 있는 판사 출신 변호사의 사무실을 가 보았다. 그곳은 브로커를 고용해서 기업형으로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병원을 다니며 교통사고 소송만을 끌어오는 브로커가 있었고 경찰서를 다니며 형사사건을 맡아오는 형사출신 브로커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법률사무소가 아니라 특수한 기업이었다. 그렇게 돈을 벌어 국회의원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그 변호사는 내게 자랑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실망하거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면 그건 바보라는 생각이었다. 똑같은 가치 기준을 가지고 세상을 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 자기에게 들려오는 음악을 듣고 자기의 박자에 맞추어 세상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해가 지고 사무실 창으로 어둠이 밀려올 무렵이면 나는 가만히 앉아 변호사란 직업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곤 했다.
  
  나는 변호사를 지식노동자로 정의했다. 법률상담은 점쟁이같이 사람이 찾아오면 그 말을 듣고 답을 내 주는 일이었다. 예전의 대서소 같이 문서를 써 주는 일도 있다. 변론을 하는 일도 중요한 용역업무였다. 내용증명이나 유언서를 작성해 줄 수도 있고 심부름센터같이 무슨 일이나 대리할 수 있었다. 가게에서 조각 피자를 팔 듯 지식 노동을 그렇게 작게 나누어 팔았다.
  
  나 같은 지식노동자에게 번듯한 빌딩 안의 고급사무실이 과연 필요한 것인지도 자문해 보았다. 로펌이나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들은 많은 돈을 받기 위해 화려한 사무실을 배경으로 고객의 기를 죽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품팔이 지식노동자를 자처한 나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법원 정문 앞 도로를 걸어 내려가다가 작은 구두닦이 박스를 보았다. 그 안을 보니까 그 정도 공간이면 변호사를 하기에 충분할 것 같았다. 작은 책상 하나에 노트북을 놓고 상담과 서류작성을 하면 되는 것이다. 사무실 운영이 곤란해지면 그 정도까지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날품팔이 일꾼이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일하고 그날 그 날의 품값을 번다는 마음이었다. 다른 변호사들이 돈을 번다면 나는 시간을 벌었다. 그 시간에 인문학 책들을 읽으면서 두뇌에 지식을 저축했다. 단테의 신곡 같은 책들을 정독했다. 네 번째 지옥에서 고통 받는 고리대금업자와 사기꾼들을 보며 안내자인 시인이 동행하는 단테에게 말했다.
  
  “인간은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가는 법이라네. 그러나 자신의 수고로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먹을 수 있는 것이라네.”
  
  변호사는 지식노동자이고 그 노동이 기도이고 예배라고 생각해 왔다.
  
[ 2020-04-03, 00: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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