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만 원이나 냈어요…이거는 초등학교 아이라도 쓰겠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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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법률사무소로 사십대 중반쯤의 여성이 상담을 하러 온 적이 있었다. 그녀는 법률서류를 내놓으면서 비웃는 표정으로 이렇게 내뱉었다.
  
  “돈을 이백만 원이나 냈어요. 그런데 꼴랑 이거 몇 장 쓴 거에요. 이거는 초등학교 아이라도 쓰겠네.”
  
  나는 그 문서를 작성한 변호사의 이름을 보는 순간 놀랐다. 그는 민사소송법 학계의 거두였다. 그의 교과서는 법학도들에게는 경전같이 되어 있었다. 평생 판사를 하면서 법원장과 대법관을 지냈다. 감사원장을 지내기도 한 그는 다른 사람들이 쓴 글이 못 미더워 감사보고서도 직접 쓴 분으로 유명했다. 대법관 출신의 글값은 현실에서 수천만 원을 받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이백만 원을 냈다면 대법관 출신들의 기준으로 볼 때는 파격적으로 싼 값이었다. 그 여성이 나를 보면서 말을 계속했다.
  
  “그 문장을 보세요. 그게 어디 문장입니까? 더듬거리는 낙서 수준이지.”
  그 여성은 당연히 내가 그의 말에 동조할 것으로 믿는 눈치였다.
  
  “이걸 쓰신 분이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아십니까? 우리들 대부분 변호사들의 선생님 격이 되는 분이에요. 법률이론의 핵심을 꿰뚫고 쓴 건데 왜 그렇게 비난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그래요? 나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네”
  
  그녀는 찜찜한 표정으로 사무실을 나갔다. 돼지가 진주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 모양과 빛깔이 안 보이는게 아니라 그 효용과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후 대법관을 지낸 그 변호사를 만난 자리였다. 그 여성이 하던 비난은 빼고 그 사건을 맡았었느냐고 에둘러 물었다.
  
  “우연히 상담을 하게 됐는데 불쌍하더라구. 그래서 어떤 법률적 이론으로 대응할까 하룻밤 고심하면서 일본책부터 시작해서 여러 자료들을 찾았었지. 그렇게 법률서류를 써 줬어. 돈도 많이 받지 않았어. 형편이 어렵다고 하더라구. 힘들게 써 줬는데 다시 오지를 않네.”
  
  변호사를 하다 보면 그런 일이 흔하게 있었다. 의뢰인의 두서없는 말들을 인내를 가지고 열심히 들어야 한다. 쓰레기 같은 수많은 말들과 감정의 과잉 속에서 금을 고르듯 필요한 말을 뽑아내야 한다. 그 말들을 퍼즐을 맞추듯 하나하나 연결시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비전문가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법적 이론과 쟁점이라는 엄격한 틀이 있다. 톱니들이 맞물려서 기계가 돌아가듯 증거와도 뒤틀림이 없이 맞아 들어가야 한다. 마지막의 마무리 작업은 법관은 물론이고 보통사람들도 이해가 가게 쉽게 또 재미있게 써야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게 변호의 기술이었다.
  
  미국의 대법원판례를 보면 그 자체가 작품성이 높은 하나의 단편소설이었다. ‘어느 봄날 그는 노을이 짙은 맨해튼 거리를 걷고 있었다.’라는 식으로 도입부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우리의 현실은 그 반대였다. 보통사람인 의뢰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법률과 사실을 녹여서 쓰면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형편없는 글로 착각을 했다. 소화되지 않을 전문용어를 처발라야 위축이 돼서 그 안에 대단한 고급진리가 있는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의사들이 적는 차트도 마찬가지인 경향이 있다. 한글로 ‘감기’라고 쓰면 사람들이 그걸 읽고 무시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라틴어로 감기라고 쓰기도 했다. 법정에 가면 그걸 쓴 변호사도 무슨 소린지 모를 서류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다. 판사들이 아예 읽지도 않는다. 상당 부분은 돈을 낸 의뢰인들을 속이기 위한 가짜 쓰레기도 섞여 있다. 그게 내가 본 법조계의 현실이었다.
  
  변호사 생활을 삼십 년이 넘게 하면서 내가 맡은 사건의 의뢰인의 삶이 문학작품같이 변론문 속에 스며있어야 한다는 진리를 배웠다. 법률이론은 건축으로 치면 단순한 골조공사 같은 것이다. 특별한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법을 배운 사람이면 검색해서 바로 그 형태를 유출할 수 있다. 골조를 잘못 뽑아도 판사는 그걸 고쳐주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이 사건마다 그 사건의 특징과 본질을 묘사하는 게 변호의 기술이었다.
  
  끊임없이 그 기술을 연마해서 소설가다 더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하는 게 변호의 기술이라는 생각이다. 재주가 능한 목수는 목수일 모르는 사람이 그의 재주를 칭찬해 주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는다. 그래도 하루하루 기술을 갈고 닦아가야 하는 게 변호사의 도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 2020-04-03, 10: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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