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십자가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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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책상 옆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평생 가지고 계셨던 십자가와 두툼한 성경을 놓고 있다. 어머니는 그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보면서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앉은뱅이 책상을 놓고 그 위에 성경을 펼쳐놓고 자를 대고 한 줄 한 줄 읽으셨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그 십자가 앞에서 기도를 하고 어머니가 읽던 성경을 이어받아 읽고 있다. 어머니의 십자가 위에는 예수가 양손에 못이 박힌 채 고개를 떨구고 축 늘어져 있다. 그 예수는 이따금씩 말 없는 말로 자신의 삶을 얘기해 주고 있다. 나는 전능한 신보다 인간으로 내려온 예수와 친구같이 대하면서 얘기하는 게 더 좋다.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둥지가 있지만 나는 머리를 둘 곳조차 없었지. 요즈음 세상으로 말하면 노숙자 비슷한 처지 아니었겠나. 출신성분도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었고 나 역시 노동자인 목수였네. 열여덟 살 때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땀을 흘리며 노동을 하고 살았었지. 시골 출신이라 배움도 없었네. 내가 세상에 있던 당시도 가말리엘이라는 좋은 선생 문하로 가서 학문을 한 사람들이 많았어. 로마제국으로 가면 로도스 섬에 법과대학과 의과대학도 있었지. 나는 제국 변방의 나라 시골의 천한 노동자였지.’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습니까? 아니 하나님 그 자체가 되신 거죠.’
  
  ‘광야에 나가 하나님과 만났지. 하늘이 열리더니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내 안으로 들어가셨지. 그리고 부터는 나는 내가 아니었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영이 시키는 대로 말하고 하라는 대로 했으니까.’
  
  ‘물 위를 걷기도 하고 소경을 고치기도 하고 죽은 사람도 살리고 귀신도 쫓아내고 수천 명을 먹이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부활까지 하시고 곳곳에서 기적을 행하셨는데 저는 아직도 과학이라는 고정관념의 틀 속에서 그런 것들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합니다. 예수님 시절 제자들도 그렇지 않았나요? 물 위에 있는 예수님이나 부활한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하면서 무서워했었죠. 그래서 베드로 보고 물위로 내려와 걸어보라고 하셨고 도마 보고는 창에 찔린 옆구리를 직접 확인하라고 하셨지 않습니까? 저는 이제 기적을 믿는 은혜를 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황당하게 보이는 그런 사실들이 믿어진다는 자체가 가장 큰 기적이고 은혜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나는 어머니의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는 예수를 보며 마음으로 다시 묻고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그 모습은 아무리 봐도 좀 그렇습니다. 너무 처참하고 괴기스럽기까지 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의 후예라고 하는 로마 교황을 보십시오. 얼마나 화려하고 위세가 당당합니까? 절에 있는 부처님 상을 보십시오. 금으로 싸바른 모습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옷 한 벌 걸치지 않고 갈비뼈가 앙상한 모습으로 매달려 계신 겁니까?’
  
  말을 하지 않는데도 예수한테서 메시지가 전해오고 있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배고픈 사람을 먹이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줬는데도 나는 배척당했다. 세상에서 있는 짧은 시간동안 나는 날아오는 돌에 맞아 죽을 뻔했고 절벽에서 밀려 떨어질 뻔 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침을 뱉고 채찍으로 때렸다. 제자들은 모두 나를 배신하고 도망가 버렸다. 십자가에서의 나의 죽음은 배척당하고 추방당한 자로서 고난을 받고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겠는가?’
  
  ‘이 세상에 태어난 어떤 사람이 그런 십자가를 지려고 하겠습니까? 건강하고 풍요하게 오랫동안 잘 살고 싶은 게 사람들의 욕망 아니겠습니까?’
  
  ‘내가 보여준 십자가 위의 죽음이 내 인생 최대의 설교다.
  
  한번 너의 자아를 그리고 너의 욕망을 이렇게 십자가에 못박아 보아라. 그리고 그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한번 체험해 보아라.’
  
  어머니의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십자가에서 어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하던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 2020-04-06, 18:1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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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0-04-06 오후 10:14
어머님의 십자가가 십자가 苦像인걸로 미루어 어머님께서는 천주교 신자이셨나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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