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함부로 정죄(定罪)하는 것은 조심해야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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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교 무렵으로 기억된다. 동네에 살고 있던 오십대 남자가 우리 같은 아이들을 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가 잘못된 것은 친일파 때문이다. 그 친일파가 해방 후 수십 년이 됐는데도 사회 곳곳에 뿌리를 박고 있다. 그 친일파를 없애야만 우리의 역사가 바로 되는 거다.”
  
  나는 그 어른의 말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일본은 나쁜 나라였다. 그리고 일본사람은 무조건 죽일 놈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있었다. 부모님은 우리가 일본의 통치를 받던 1926년에 태어났다. 출생시 일본 국적이었다. 이미 조선은 없어진 나라니까. 일본말을 쓰면서 일본사람과 같이 교육을 받고 고등학교까지 다니다가 해방이 됐다. 나는 집안에서 아버지나 어머니가 일본이나 일본사람을 증오하고 욕을 하는 걸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부모가 세상이 말하는 친일파도 아니다. 그 시절 한국인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 자식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함경도 회령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기차역에서 표를 파는 직원이었던 어머니는 종종 이런 말을 했다.
  
  “학교 점심시간이 되면 벤또를 싸 오는 일본 아이들이 참 부러웠어. 그 아이들이 먹는 건 흰 쌀밥이었지. 일본 아이들은 같이 지내보면 정직하고 성실해요. 배울 게 많았어.”
  
  어머니의 인식이었다. 어머니와 동갑인 장모님은 그 시절 경상도 대구에서 경북고녀를 다니다가 정신대로 차출됐었다고 했다. 장모님은 이런 말을 했다.
  
  “정신대로 차출되어 마산 앞바다의 어떤 섬에 가서 일을 했어. 그때는 일본 본토가 폭격이 심해 일본 비행기를 마산 근처의 섬에서 만들었지. 정신대로 차출된 우리는 비행기 생산공장에 가서 일했어. 머리가 좋은 여학생들은 수백 개의 비행기 부품들의 명칭을 바로 외웠어. 그리고 비행기 부품창고에 가서 필요한 부품들을 찾아오는 일을 했지. 그때 일본에서 동경대학을 다니다 장교로 온 사람들은 우리들 처녀들의 선망의 대상이었지.”
  
  장모의 입에서도 일본이나 일본인에 대한 미움이나 욕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일본의 카메라나 전기제품들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는 친일파를 미워하고 우리의 모든 불행은 일본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요구했다. 대학 시절 음식점에서 일본인을 보면 우리들은 공공연히 시비를 걸고 싸움을 하는 객기도 부렸었다. 그래야 어떤 공적인 의무를 수행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해방 후 친일파 척결이 이루어졌다. 그때 친일파 청산이 다 되지 않았다고 해서 육십년 후가 지난 2000년대 초에 다시 친일반민족 진상규명위원회와 재산환수위원회가 생겼다. 당시 사회는 요구했다. 우리들이 생각하듯 생각하라. 우리들이 믿는 걸 믿어라. 그렇지 않으면 미움을 받으리라. 비웃음, 악담, 비방, 배척을 받으리라. 친일진상규명위원회에서 친일파로 찍은 사람들의 집에 소환장을 보냈다. 독일인이 유태인 상점이나 집에 표시를 하듯이 그건 사회적 단죄를 알리는 징표였다. 친일파로 찍힌 사람들의 아들이나 손자들은 기겁을 하고 숨을 죽였다.
  
  수재였던 할아버지를 자랑하던 친구가 있었다. 일제하에서 그 할아버지는 공무원을 했었다. 그래서 친일파가 됐다. 또 다른 친구는 할아버지가 일본 은행에서 돈을 빌려 사업을 했었다. 그래서 친일파가 됐다. 어떤 작가는 일본의 국기가 디자인이 좋다는 글을 썼다고 해서 친일파가 됐다.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반동이나 부르주아 계급을 친일파로 해석하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노동자와 농민을 빼면 대충 친일파로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당시 나는 변호사로서 친일진상규명위원회에 가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했었다. 그 시대에 태어나서 학교에 다니고 취직을 하면서 살아간 것은 죄가 아니라고. 지금 시대 사람이 살아보지 못한 과거를 함부로 정죄하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나의 약한 신념과 용기를 가지고 시대적 분위기를 거스르는 것은 힘든 가시밭길이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은 모여서 돌을 던지는 사람보다 얻어맞는 사람 편에 서는 힘든 일을 하는 운명인 것 같다.
  
[ 2020-04-09, 08: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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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4-10 오후 4:34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있습니다!!! 지난 과거(이씨 조선)는 과거(일제시대)였을 뿐!!! 광복후의 세대(자유 민주 대한민국의 세대)가 정죄할 일은 역사의 몫이다!!! 사실을 사실대로 배워 다시는 잘못 안하는 국민이되어야하는데 이정권의 백해무익한 쓰레기통(부끄러운 역사) 뒤지기의 친일파증오생산은 무엇을 위한것인지 불가해핟다!!! 정죄할수 있는자는 과거(광복 후의) 살아본 역사조차 제대로 올바르게 평가하지도 못하는 자들로 오로지 권력장악을 이라는 자기 목적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국민을 현혹하여 분렬과 혼란을 이르킨 국가적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것은 무슨 의도인가??? 국가의 敵과 我도 구별 못하는 이정권의 무리들은 국민을 멸시,모독으로 침묵하드라도 하늘은 용서하지 않을것으로 확신한다!!! 하늘은 틀림없이 정죄할것으로 믿고 우리 국민은 覺醒하여 잘못된 정권에게 국민이 주인임을 보여주는 명확한 4.15 총선거가 이루어지기 간절히 염원한다!!! 자유 민주 국민은 覺醒하자!!! 놀아나지 않는 賢明한 국민이되자!!! 하도 속이 상해서!!!!
   馬登    2020-04-09 오후 9:04
늘 좋은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엄변호사님. 특히 서초동 법류기술자(?)들을 겪어보니 더욱 그렇습니다. 일본 공무원들 특히 교육자들의 모범됨은 많이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영훈 교수의 반일종족주의 라는 책을 통해서도 많이 반성했습니다.
   白丁    2020-04-09 오후 8:50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마법의 반일카드를 제공해 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역사는 저 정치꾼들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나… 내심 昭和 천황폐하께 감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정답과오답    2020-04-09 오후 2:28
사실을 알면 일본을 증오하기 어렵죠
그러나 우리의 본능은 누군가 증오 해야 존재가치가 있다고 믿기에
없는 증오를 계속 생산해 내야 하는 숙명이 있는거 같습니다
온 사회가 증오로 물들어 있습니다
친일파를 미워하고 잘 사는놈을 증오하며
수재를 박살내고 싶은 민족이 우린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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