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볶이 할머니의 헌신(獻身)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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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 전 한 은행장의 변호를 맡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전방위로 뇌물을 뿌리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뚜껑을 들추고 세상을 보면 그런 게 있었다. 뇌물을 먹은 고위 공직자는 걸려든 그물에서 빠져나가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는 은밀하게 돈을 준 사람을 만나 뇌물을 받은 날짜를 바꾸었다. 공소장에 있는 범행날짜에 뇌물을 주고받은 사람이 증발이 된 셈이다. 그들은 완벽에 완벽을 기했다.
  
  어느 날 중진 국회의원이 나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왔다. 그는 내가 사건을 맡고 있는 의뢰인인 은행장이 법정에서 증언을 할 때 잘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건 은행장을 교사해서 위증을 하게 해 달라는 의미였다. 그 국회의원은 가지고 온 돈뭉치를 보여주었다. 위증에 대한 대가인 것이다. 정계나 관계의 지도자들은 큰 뇌물을 받고도 그렇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 실체를 극명하게 직접 본 경험이었다.
  
  대통령은 큰 뇌물을 받아도 아무도 건드릴 사람이 없었다. 일이 안 되도 항의할 수 없는 절대적인 성역이었다. 동화 속의 이발사같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의 귀인 것을 나만 아는 경우가 있었다. 변호사는 동화 속의 이발사 비슷한 위치였다. 내게 돈뭉치를 가지고 온 정치인은 거물이 되어 지금도 텔레비전 화면에서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이다.
  
  큰 기업의 부회장이 거물 정치인에게 뇌물을 가져다 준 사실로 기소가 됐다. 그 부회장은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담백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번 법정에서 증언을 하고 와서 내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 전에 저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제가 돈을 보좌관한테 준 것으로 진술해 달라는 거에요. 그의 보좌관을 희생양으로 하자는 거죠. 그 제의를 거절하고 사실대로 말했어요. 그런데 참 이상해요, 돈을 준 놈이 줬다고 하는데 판사들이 믿지를 않아요. 돈을 줬다고 하면 나도 뇌물공여죄로 처벌받게 되어 있어요. 그걸 각오하고도 줬다고 하는데 판사들이 믿지 않는 거죠. 믿지 않는 게 아니라 그 거물급 정치인을 봐주려고 진실을 외면하는 거겠죠.”
  
  내가 본 거짓 세상 정계의 이면이었다. 그러면 서민들은 정직하고 착할까? 남대문시장의 분양사기 사건으로 수백 명의 피해자가 속출한 사건이 있었다. 신문에 상가분양이 있었다. 상가 하나만 사면 평생 동안 연금같이 매달 안정적인 고수익을 보장한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퇴직금을 받아 상가계약을 한 사람도 있고 입지 않고 먹지 않고 오랫동안 저축한 돈으로 상가를 산 사람도 있었다. 내가 맡았던 의뢰인은 시장 모퉁이에서 평생 떡볶이장사를 하면서 모은 돈으로 상가를 산 할머니였다. 사기를 당한 피해자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한 사람이 이런 제의를 했다.
  
  “우리가 본 광고하고 똑같은 내용을 다시 신문에 냅시다. 그러면 우리 같은 분양자들이 또 몰려올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 돈을 우리가 배상금으로 받자구요.”
  
  그 말은 사기를 당했으니까 우리도 사기를 치자는 것이었다. 나만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면 남이 어떻게 고통을 받아도 세상이 어떻게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들이었다. 사기를 친다는 죄의식이 없는 거짓 세상이었다. 나는 피해자들을 대리해서 시행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였다. 법률사무소를 찾아오는 피해자들이 각양각색이었다. 변호사를 찾아와서 자기만 먼저 돈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더러는 시행사 임원을 찾아가 자기만 돈을 받게 해 주면 어떤 배신도 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가난하고 교활한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동정심이 증발했다. 변호사는 살인적인 거짓 세상의 악취를 맡고 살아가는 직업이었다. 어느 날 떡볶이 장사 할머니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나는 돈을 먼저 못 받아도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먼저 받게 하세요. 피해자들이 단합하지 않으면 사기꾼들한테 다시 놀림을 당합니다.”
  
  떡볶이 할머니가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피해자들 사이의 이기주의를 막고 헌신적인 가교가 되었다. 그 할머니는 떡볶이를 파는 좌판 구석에 성경을 놓고 틈틈이 읽는 모습을 봤다고 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거짓의 세상과 인연을 끊어야 하나님의 성령이 내려오지 않을까. 세상과 친구가 되려고 할 때 복음은 번영할 수 없다. 엉뚱한 강한 말일 수 있다. 그러나 큰 진리일 것이다.
  
  
[ 2020-05-23, 04:4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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