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에도 영혼이 있어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진행자는 문화예술계의 거물로 인정받는 사회 명사였다. 나이도 나보다 몇 살 위였다. 그는 텔레비전의 큰 프로그램 사회자도 하면서 사람들에게 부드럽고 관대한 이웃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기는 사람이었다. 그가 스튜디오 안의 책상 중앙에 앉아 있었다. 그의 앞에는 여러 가지 자료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게 보였다. 그가 나를 올려다보는 순간 그가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싫어한다는 것은 논리나 이성이 아니라 핏속 깊은 곳에 숨겨진 감정이라는 걸 나는 안다. 그와는 모르는 사이다. 그리고 대화 한번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그의 눈동자는 나를 거부하고 있었다. 법률가라고 하면 일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보였다. 그 중에서도 사회 명사라든던가 아니면 세상에 대해 한 마디 하는 사람들은 더욱 싫어하는 것 같았다. 호랑이는 고양이를 싫어한다고 했다. 내면의 깊은 곳은 같은 과에 속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자기식으로 장황하게 한참이나 떠들어댔다. 나는 그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입은 거짓말을 해도 눈동자는 항상 정직했다. 그의 내면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야 임마, 까불지 말아. 내가 법조계의 높은 놈들도 다 친구로 가지고 있어. 너는 그 한참 아래잖아? 그리고 법이라는 게 별 게 아니잖아? 그냥 기술일 뿐이잖아? 돈 많은 사람들 죄지어도 빼주는 왜곡하는 기술 그리고 힘없고 약한 사람 얽어매는 기술 그런 하등의 기술 아니겠어?’
  
  어쩌면 나의 자격지심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방송에 출연해서 이상하게 불쾌감이 속에서 스멀스멀 피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가 한참을 떠든 후에 질문을 던졌다.
  
  “법이란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리고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는 법철학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내게 제시했다. 어떤 법철학자도 완성된 정의를 내리지 못한 문제였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법을 보는 관점 안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혼이요? 법에도 영혼이 있다는 말입니까?”
  
  그가 ‘이것 봐라’하는 표정이 되어 묻는 것 같았다. 순간 그의 어조는 아니꼽다는 느낌이 배어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가 겪었을 수모와 상처가 짐작됐다. 방송인으로서 팬들의 박수와 칭찬과는 달리 몇몇 검사와 판사 앞에서 굴욕적으로 사정하는 경험을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사람들한테서 흔히 볼 수 있는 반응이었다.
  
  “저는 법에도 영혼이 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영혼이 있다는 말이죠?”
  그가 내게 다그치듯 물었다. 그는 겉으로만 그럴듯한 말을 하는 위선적인 나를 혼내주려고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얼마 전 딸의 이름으로 임대아파트를 얻은 노인에게 주택공사가 나가라는 명도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노인은 그 임대아파트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없었고 딸 역시 자격요건이 되지 않았습니다. 법 논리로 치면 그 노인은 쫓겨나야 맞습니다. 그러나 판사는 형식적인 법리로만 치면 한겨울에 팔십 노인이 거리로 쫓겨나야 하는 입장이라고 하면서 법의 본질은 그것이 아닐 것이라고 판결문에 썼습니다. 그리고 그 노인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저는 본질을 잃지 않는 그런 법의 해석을 영혼이 깃들어 있는 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실에서는 그 반대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권력의 입맛대로 재판을 해 주고 대법관 대법원장으로 출세하는 경우가 있었고 일반 판사들도 청탁을 받고 법을 자의적으로 왜곡하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영혼이 살아있는 판사가 법도 바르게 본다는 뜻입니다.”
  
  “그렇군요.”
  그가 비로소 조금은 납득한 얼굴이 되었다. 그날 나는 모든 법기술자들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올라가 창에 찔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을 죽인 김재규의 죽음을 빨리 확정해 주고 출세한 법관들이 있었다. 김대중을 모략한 재판의 불법성을 눈감아 주고 공천을 신청한 법관을 본 적이 있다. 박근혜 정권의 모든 국정원장을 억지로 회계관계 직원으로 해석해 처벌되도록 한 대법관도 있다. 권력에 빌붙고 싶은 판사들의 법 해석에는 영혼이 들어있지 않았다.
  
[ 2020-06-01, 00:3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정답과오답    2020-06-01 오전 8:01
문제는 그런 괴이한 짓을 좋아하는
법 종사자들이 너무 흔한거 같습니다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