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될 걸 모르고 아등바등했어”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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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에는 화장장에 갈 일이 자주 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모가 가시고 선배나 친구 후배들이 죽어 뼈가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요즈음은 장례풍속을 거의 상조사에서 하는 걸 본다. 마지막 관에 들어가기 전 좋은 옷을 입히고 루즈를 발라주기도 하고 예쁜 얼굴을 만들어 준다. 그리고 가족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지나면 스테인리스 스틸 탁자에 펼쳐진 하얀 뼛조각으로 변한다. 그리고 분쇄기에 들어가면 ‘드르륵’소리가 나면서 뼈가 갈리어 한 사발 정도의 가루로 변했다. 그게 한 생을 살아온 인간의 마지막 물질적인 모습이었다. 그걸 보면서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나의 육체도 분해되고 가냘픈 호흡도 끊어져 어딘가 다른 곳으로 옮겨질 운명인 걸 예감한다.
  
  수사검사로 이름을 날리던 고교 선배가 있었다. 머리도 좋고 담력도 강했다. 리더십과 후배에 대한 사랑도 있었다. 그는 정계로 나아가 대통령 꿈까지도 꾼 것 같다. 충분히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백화점에서 만난 그 선배는 머리를 빡빡 밀고 모자를 쓰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도 그는 누워있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몇 달 후 그의 사무실을 들렀다. 뚱뚱했던 그가 바짝 말라 바지가 아니라 자루 속에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될 걸 내가 뭘 검사 뼈다귀를 타고 태어났다고 그렇게까지 세상에 매달려 아등바등했는지 모르겠어.”
  
  그의 얼굴에서 짙은 후회와 허무의 그림자가 보였다. 그는 그 며칠 후 마침내 병실로 들어갔다. 고통을 더 이상 이겨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는 가정에서도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아이들 결혼도 시키고 부모도 돌보아야 할 위치였다. 장례식장 영정사진 뒤에서 그는 문상을 간 나를 내려다보며 어린애 같이 우는 것 같았다. 그가 화장장으로 들어가 불에 타고 있을 때였다. 친구인 그의 주치의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마지막엔 나보고 죽여줘, 죽여줘 하고 사정을 했어. 그만큼 고통이 심했는데 이제 거기서 해방된 거지.”
  
  살아 있다면 큰 일을 할 선배나 친구들이 일찍 저세상으로 가는 경우를 본다. 그들은 5막짜리 연극에서 이제 3막까지만 출연했을 뿐인데 무대에서 갑자기 쫓겨 내려가는 것 같기도 했다. 프랑스의 작가 위고는 죽는 순간까지도 머릿속에 든 이야깃거리가 너무 많다는 얘기를 했다. 그가 살았더라면 세계인의 마음을 흔들 대작이 많이 나왔을 것이다.
  
  한국문학의 시조격인 김동인 씨는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한국의 고구려 백제 신라에 대한 웅장한 대하소설을 쓰기 위해 수천 장의 원고지를 가져다 놓고 준비하다가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밥이나 축내는 벌레 같은 인생들은 남겨놓으면서 왜 그들을 그렇게 빨리 인생무대에서 쫓아내시느냐고 불평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갑자기 우리 인생들을 삶의 무대에서 쫓아내 저 세상으로 데리고 가는 것은 애초에 우리들을 이 세상으로 보낸 그분이다. 세상에 나올 때도 이유를 모르고 그냥 내던져졌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작중인물인 리어왕의 입을 빌려 힘들고 험한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그게 싫어 울음소리를 낸다고 했다. 우리가 세상에 나왔다가 다시 없어지는 것은 마치 배우를 고용한 감독이 그를 다시 무대에서 쫓아내는 것 같다.
  
  사람마다 다 노년의 계획이 있다. 변호사인 나의 경우는 그래도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고 아직 법정에 설 수 있을 때 몇 사람이라도 성실하게 돕고 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삶의 진실을 작은 글로 써서 블로그에 올리건 작은 책으로 남기고 싶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기차가 지나가는 들녘의 외딴집에서 노인이 한밤중에 작은 등불을 들고 있는 모습이라고 할까. 깜깜한 밤 속에서 작은 위로를 주기 위해서이다.
  
  그런 마음으로 작은 글들을 쓰고 있다. 그러나 인생의 어떤 마지막 목표는 설정하지 않고 있다. 흔히들 인생 5막짜리 연극에서 3막까지만 출연했을 뿐입니다, 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연극에서는 3막만으로도 훌륭한 드라마가 될 수 있다고 그분은 말하는 것 같다. 언제 연극을 끝낼 것인가는 나를 고용하고 해고할 시기를 정한 그분의 뜻에 달려있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다.
[ 2020-07-11, 15: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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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7-13 오후 7:53
서너번은 읽습니다!!! 언제나 바른 느낌이오는 글! 감사! 감사!! 감사드리며!!!
   이중건    2020-07-11 오후 7:11
또 깊은 모든 것을 대변하듯 한 글 잘 보고 갑니다.
삼막이든 뭐든 이 훌륭한 글들 많이 남기시며 만수무강하세요.
만수무강은 북에서 김부자에게만 달 던 것인데 여기와선 변호사님에게 진정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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