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의 꿈
높이 나는 새만이 멀리 본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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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십대 중반 무렵 제네바의 작은 호텔에서 혼자 한 달을 지낸 적이 있었다. 일 때문에 출장을 갔지만 시간이 많이 남았다. 오후가 되면 레만 호숫가로 나가 산책을 했다. 수정같이 맑고 투명한 물이 찰랑거리는 모습이었다. 호수 바닥의 자갈들이 햇살과 물결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그 레만 호수에서 나는 어려서 내가 보았던 신비한 성(城)의 실체를 알아냈다.
  
  어린 시절 허름한 동네 이발소를 가면 얼룩이 진 천정 아래 벽에 페인트로 칠한 풍경화가 걸려있었다. 드넓은 호수 저쪽 절벽 위에 솟아있는 아름다운 성이었다. 그 시절 나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 소년이었다. 그렇게 천국 같은 곳이 이 땅 위에 존재한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그림 속의 그 호숫가와 신비한 성을 가보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었었다. 그런데 그 꿈을 삼십대 중반 제네바에 가서 이루었던 것이다. 페인트 그림의 호수는 레만호였고 산 위의 궁전은 시옹성이었다.
  
  제네바 사람들의 사는 모습도 지구의 반대편 끝 서울에 살던 나의 주변과는 너무나 다른 것 같았다. 낮이면 가게에서 미용실에서 회사에서 관청에서 일하던 사람이 노을이 질 무렵이면 레만 호숫가로 나왔다. 벤치에 앉아 붉게 물들어 가는 호수를 보며 삶의 여백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그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이 내게는 정신적 충격이었다.
  
  그들과 비교한다면 나는 굉음이 울리는 공장 안에서 바쁘게 돌아가는 조금의 여유도 없는 삶을 살았던 것 같았다. 내 또래의 대부분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좋은 학교와 자격증,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던 환경이었다.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면 떨어져 낙오된다는 강박감이 의식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불안하고 조급하게들 살았다. 내남없이 친구들은 직장을 잡고 있어도 그 안에서 또 무한 경쟁 속으로 들어갔다.
  
  매년 봄이 오는데도 경쟁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는 봄이 보이지 않았고 느낄 수 없었다. 내 아파트 한 채를 가지기 위해 젊음을 바꾸었다. 친구들은 임원 자리를 얻기 위해 기업 오너 앞에서 이미 사람이 아닌 굴종하는 노예의 생활을 했다. 공직자도 인사권을 가진 상관 앞에서 마찬가지였다. 나는 그런 환경을 너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살았다.
  
  숲을 빠져 나와야 숲이 보이듯 나는 제네바의 레만 호숫가에서 처음으로 나와 주변의 모습을 깨달은 것이다. 그 무렵 나는 리차드 버크의 ‘갈매기의 꿈’이라는 책을 읽었다. 갈매기 조나단은 선창 쓰레기 더미에 몰려 갈매기끼리 먹이 다툼을 하는 것이 싫었다. 어선 주변에 몰려들어 어부들이 던져주는 먹이를 먹거나 물고기를 훔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혼자 떨어져 나와 나는 연습을 했다. 오늘은 이만큼 내일은 저만큼 마침내 그는 높은 공중을 날게 됐다. 그리고 조나단은 느꼈다. 높이 나는 새만이 멀리 본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사표를 쓰기로 결심을 했다. 내게 있어서 그곳은 갈매기가 먹이를 구하는 선창이었다. 더 이상 위에서 던져주는 편한 먹이를 기대하지 않기로 했다. 십리를 날아가 콩 한 알을 구해 먹더라도 내가 직접 땀을 흘리고 노동을 한 돈으로 먹고 살기로 했다. 갈매기 조나단 같이 하늘을 나는 연습을 어떻게 하면 될까 생각해 보았다. 진리가 담긴 경전을 읽는 것이 날아가는 연습이 될 것 같았다. 조선조의 송시열은 맹자를 천 번 읽었다고 했다. 공자는 주역을 가죽으로 만든 책 표지가 닳을 정도로 읽었다고 했다.
  
  성경을 읽는 것이 하늘을 나는 연습일 것 같았다.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다. 파스칼은 성경을 읽는 중에 하나님이 그의 영(靈) 속에 들어오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그런 하늘나라를 오르고 싶기도 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 같은 세월에 실려 흘러왔다. 나는 아직도 나의 영혼이 어디쯤 있는지 잘 모르겠다. 진리의 하늘을 나는지 아니면 곤두박질을 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지 모르겠다. 멀리 있을 것 같은 하늘나라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도 매일 신문을 보면 이제 상대적으로 얻은 시력이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쓰레기더미에 몰려 먹이 다툼을 하는 추한 인간들의 모습이 보인다. 훔치는 것도 보이고 위에서 던져주는 먹이에 영혼이 팔려 시체만 걸어가는 모습들도 보인다.
  
[ 2020-07-29, 21: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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