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귀신이 보낸 사진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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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를 하면서 우연히 법정에서 윤모 씨를 알게 됐었다. 서글서글한 표정에 부드러워 보이는 타입이었다. 그는 지문인식 기술을 개발해 삼성 현대에 못지않은 재벌반열에 오를 뻔했다고 말했었다. 그의 고문변호사는 내게 그의 기술이 사기가 아니고 진실이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살아있는 사람 손가락의 지문은 순간순간 꽃같이 피었다가 져요. 그런 정보를 서류로 만들면 캬비넷 몇 개를 채워도 모자라죠. 윤 회장은 그걸 실용화해서 세계 최고의 보안기술을 만들었어요. 지금 세계는 국제간 천문학적인 숫자의 달러가 오가는데 해킹당하지 않는 보안기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죠. 윤 회장이 개발한 그 기술을 팔고 국제간 송금액의 극히 작은 비율만 받아도 어마어마한 국가수입이 되는 겁니다. 윤 회장은 마지막에 핸드폰에 지문인식을 하는 보안기술을 담아 은행에 가지 않고도 모든 걸 쉽게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개발해 냈어요. 그렇게 되면 국내 수많은 은행이 지점이 거의 필요 없는 상태가 되는 거죠. 아마 조금만 사업이 더 진전됐으면 윤 회장은 엄청난 재벌회장이 됐을 겁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전혀 엉뚱한 다른 일로 인생이 끝나게 된 겁니다.”
  
  나는 그 윤 회장이라는 사람과 구치소에서 만나 잠시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삼성에서 저에게 핸드폰 뱅킹의 보안기술을 팔라고 했어요. 저는 거절했죠. 저도 삼성 같은 재벌이 되고 싶었어요. 이태리에서 천재 기술자를 몇 명 스카웃하고 삼성에서도 직원을 불러내서 실용화한 제품을 완성했어요. 최고의 재벌그룹에 도전을 한 거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제가 도저히 뚫고 올라가지 못할 촘촘한 망 같은 게 존재하더라구요. 명문학교를 나온 엘리트들의 관계 그물이죠. 명문학교 출신은 수재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서로서로 이끌어주고 밀어주는 사다리라고 할까요. 이 사회의 또다른 귀족인 겁니다. 그래도 대신 돈으로 그걸 뚫었어요. 성공의 고지가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순간 공소시효가 며칠 안 남은 사건이 내게 멸망의 그물로 덮쳐와 어둠의 절벽 아래로 떨어진 거죠.”
  
  그는 십오 년 전 홍콩에서 저지른 범죄사건이 있었다. 동거녀와 단 둘이 있을 때 벌어진 사건이라 과실치사인지 살인인지 분명하지 않은 점이 있었다. 그 무렵 주간지의 한 기자가 우연히 그 기사를 쓰고 방송이 그걸 받아서 사건이 확대됐었다. 나는 그 주간지 기자를 알고 있었다. 그 기자는 기사가 나가게 된 내막을 이렇게 내게 말해주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윤 회장이 십오 년 전 홍콩에 있을 때 동거하던 여자의 사진 한 장을 주면서 의문의 죽음을 얘기해 주더라구요. 그래서 편집장한테 얘기했더니 살인인 점을 확인할 수도 없고 거물급 회장한테서 소송을 당할지도 모르니 기사를 쓰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덮어뒀죠. 그러다가 잡지사를 옮겼는데 거기서도 역시 편집장이 기사로 내보내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그리고 연말이 됐죠. 편집장이 휴가를 가고 업무가 한산해져서 느긋하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내 책상 위로 사진 한 장이 떨어진 거에요. 책상 위 선반의 내 자료더미 속에서 떨어진 거에요. 홍콩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것 같다는 그 여자 사진이었어요. 편집장이 없을 때 기사를 올리면 그대로 통과되겠다고 생각해서 기사를 썼죠. 그렇게 의문의 죽음에 대한 간단한 보도를 했는데 방송국 다큐멘터리팀에서 홍콩에 출장까지 가서 촬영하면서 대대적으로 키우더라구요.”
  
  죽은 여자의 귀신이 그렇게 한 것 같았다. 공소시효가 며칠 안 남은 시점에서 검찰은 윤 회장을 살인죄로 구속 기소했다. 그는 살인죄로 중형을 선고받고 교도소로 갔다. 그리고 그의 기업뿐 아니라 그와 관련됐던 사람들이 깊은 바닷물 속으로 침몰했다. 지상에서 엄청난 행운의 순간은 동시에 사탄의 사자(使者)가 초청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사회적 성공과 돈의 정상의 자리를 주었던 건 누구였을까. 그리고 마지막에 그를 지옥으로 끌고간 건 또 누구였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 2020-09-12, 04:4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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