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게 물러나면 퇴직금과 아파트를 주겠대요”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두 대학총장의 모습>
  
  내가 아는 변호사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귀공자 타입의 그는 서울에 있는 유명대학의 교수가 됐다.
  
  “처음 교수직을 맡을 때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달하는 게 보람이 있었는데 교수 사회가 얼마나 말이 많고 파벌이 많은지 몰라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내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회의가 와요. 지금 학교의 소요사태도 그렇고”
  
  그가 학생처장 보직을 맡고 있는 그 대학은 여러 날 노조가 농성 중이었다. 하소연을 하러 온 그를 사무실 근처의 밥집으로 데려가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지금 총장은 평생 재야운동을 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교직원 노조에서 총장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 같아요. 노조의 일차 목적은 총장을 만나 개망신을 주는 건데 총장이 그런 걸 전혀 겁내지 않고 같이 당해보자고 하는 입장이야. 그보다 더 노조가 답답해 하는 건 총장이 아예 노조를 상대하지 않는 거에요. 노조원들이 총장 집으로 몰려가 밤새워 농성해도 눈도 꿈쩍 하지 않아요. 그러면서 총장이 아침에 출근할 때 노조원들에게 밤새 수고했다고 하니까 노조원들이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재야 운동가가 세긴 세네”
  내가 맞장구를 쳤다.
  
  나는 몇 년 전 또 다른 대학의 분규를 변호사로 지켜본 적이 있었다. 총장은 평생 학자로 살아온 학 같은 품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하나님에게 몸과 영혼을 바친 신실한 믿음을 가진 목사이기도 했다. 그가 총장에 취임을 하자 노조는 학생을 동원해서 내쫓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총장을 아침에 출근하지 못하도록 교문에서 막기도 하고 총장실 문을 봉쇄해 놓기도 했다. 노조는 모함을 해서 총장을 배임죄로 고소를 하기도 했다. 변호사인 내가 보기에는 바로 무혐의 불기소처분을 받을 사건이었다. 티끌만한 아무런 잘못을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와 함께 검사실로 갔다. 그는 평생 수사기관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고 했다. 검사서기 앞의 접이식 철 의자에 앉자 그는 안색이 변했다. 조사가 끝난 후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 총장을 그만둘래요.”
  
  그 정도에 휘청거리는 총장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강인함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노조 측은 대한변호사협회에 담당변호사인 나를 진정했다. 나를 약한 그 총장에게서 떼어내기 위한 방법 같았다. 변호사인 나에 대한 진정이 무혐의 처분이 되자 노조는 대한변협이 같은 변호사 감싸기라면서 다시 진정을 했다. 끈질겼다. 흔들리는 총장이 두 사람이 있을 때 나에게 이렇게 의논을 해 왔다.
  
  “노조에서는 내가 곱게 물러나면 퇴직금과 지금 사는 아파트를 보장해 주겠대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이 거리에 내동댕이치겠대요.”
  
  학자 출신의 청렴한 총장은 재산이 없는 것 같았다. 이미 그는 물러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평생을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존경받았던 그의 신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런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처럼 모함을 당하고 수모와 폭력을 감당하라는 뜻이었다. 예수는 행복과 지위를 보장하지 않았다. 자기를 따르는 사람들에게 고통의 십자가를 질 것을 제시했다.
  
  “아니 저는 그 십자가를 지지 못하겠어요. 아내와 둘이서 나머지 여생이 중요합니다. 단 위에서 십자가를 평생 가르쳐 왔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나는 그의 말에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나 역시 깨지기 쉬운 그릇 같은 나약한 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몇 년 후 그가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말하는 교리나 이론이 나의 가슴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 올라 처형되는 그 자체가 그의 최대의 설교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리나 이론이 아니었다. 불가마 속을 통해야만 도기도 색채가 견고해진다. 인간도 현실의 여러 고통들을 겪어야만 강해진다. 현실의 고난들은 보이지 않는 검은 은혜인지도 모른다.
  
[ 2020-09-12, 17:5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