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공원 노숙자의 말 없는 신입(新入) 배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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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가 집을 나가 노숙자가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몇 번 만났지만 성격이 부드럽고 착한 사람 같았다. 사업에 실패하고 자기 방에 칩거하다가 어느 날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그를 지하철 을지로역 입구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갔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외가로 먼 친척이 되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의 떠남이 어쩐지 진정한 자유를 찾아 나선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얘기를 들으면서 떠오르는 몇몇 광경이 있다.
  
  십여년 전 이른 아침 캐나다의 토론토 거리를 걸을 때였다. 전화 박스 옆에서 노숙자 한 사람이 담요를 덮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의 머리맡에는 지난 밤 읽다가 만 문고본 책이 놓여 있었다. 제목이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제법 깊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 같았다. 그가 단순히 빌어먹는 걸인 같지는 않았다.
  
  이십년 전쯤 그 무렵 시베리아를 기차를 타고 횡단한 적이 있었다. 오래된 도시에 내려서 거리를 걸어보곤 했다. 보드카에 쩔어서 비가 뿌리는 길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알콜 중독자가 많이 보였다. 내 눈에 그들은 이미 영(靈)이 빠져나가고 본능이 담긴 몸뚱어리만 남은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 무렵 일이 있어 동경에 갔다가 우에노 공원을 산책한 일이 있었다. 공원 한쪽 구석의 벤치와 잔디는 노숙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중 한 벤치가 비어 있었다. 벤치 위에 필수품을 담은 박스가 있는 걸 보니 어떤 노숙자의 자리인 것 같았다. 나는 일부러 그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뒤통수 쪽에 미세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보는 척 하면서 뒤쪽에 신경줄을 뻗고 있었다.
  
  오십대쯤의 아저씨 같은 일본인 노숙자가 나의 모습을 조심스럽게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판단하는 것 같았다. 내가 노숙자로 그곳에 합류하려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그가 발소리를 죽이면서 한 발 한 발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아주 조심스럽게 자기의 물건들이 들어있는 박스를 들고 가려고 했다. 말을 안해도 그 마음이 그대로 너울처럼 전해져 왔다. 그는 신입자인 내게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얼른 일어서면서 그게 아니라고 사양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말없는 배려를 거기서 보았다. 그것은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이기도 했다.
  
  배를 타고 캄차카반도로 가기 위해 요코하마 항의 거리에서 본 광경이 있다. 습기가 가득 찬 장마철이었다. 이따금씩 비가 주룩주룩 내렸던 날의 저녁 아홉 시쯤 됐을까? 내가 묵는 모텔에서 나와 밤거리를 산책했다. 그러다 시청 근처의 지하광장에 이백 명 가량의 사람들이 모여서 누워있는 모습을 보았다. 타일이 깔린 넓은 광장에 노숙자들이 군대처럼 가로 세로 열과 오를 지어 단정하게 누워 있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있는데도 목소리를 높여 떠드는 사람이 없었다. 몇사람이 서너 단의 층계참에 모여 속삭이는 정도였다. 신문지를 깔고 바닥에 누워 작은 문고판 책들을 읽고 있는 일본인 노숙자의 모습도 보였다. 책을 보고 있는 캐나다와 일본의 노숙자들을 보면서 그들은 물질적으로 가난할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자기가 잡아놓은 벤치를 양보하려는 우에노 공원 노숙자에게서 흘러나온 마음은 평생 잊혀지지가 않는다.
  
  한동안 ‘거리의 변호사’가 되려는 마음을 품고 탑골공원 뒷골목을 일주일에 한두 번씩 들렸다. 오갈 데 없는 가난한 노인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서 옷장에서 낡은 옷을 입고 그곳에 가서 거리의 경계석에 앉아 있었다. 겨울이었다. 어떤 노인이 지나가면서 내 손에 핫팩을 하나 주고 간다. 그걸 비비면 손이 따뜻해진다고 했다. 잠시 후 노숙자 같은 사람이 지나가면서 털실로 짠 목도리 하나를 주고 갔다. 봉사단체에서 나누어 주더라는 것이다. 또다른 노숙자가 지나가다가 기모바지를 하나 주고간다. 그들의 온정에 겨울바람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드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수는 새도 둥지가 있고 여우도 굴이 있지만 자신은 머리를 둘 곳조차 없다고 했다. 예수님도 그런 노숙자 수준은 아니었을까. 부처님도 동냥밥을 얻어먹으면서 사십 년 동안 걸어다니는 생활을 했다. 아무런 지위가 없고 아무런 소유가 없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살라는 것이 예수나 석가의 사상이라고 다석 류영모 선생은 말했다. 다석 선생은 빌어먹는 거지보다는 이마에 땀흘리며 사는 농부를 이상으로 삼았다. 톨스토이가 이상적인 인물로 그린 ‘바보 이반’이 되자는 것이다.
  
  
  
[ 2020-09-22, 03:5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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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丁    2020-09-22 오후 9:40
역시 일본, 일본인.
   청년백수    2020-09-22 오전 10:55
몇년전 일본 노숙자의 다큐를 본 적이 있는데 노숙자 고참이 신입을 보고 절대 행인에게 폐가 되는 행동을 하지마라는 지침을 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은 신입환영 행사로 단체 목욕을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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