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어묵'의 짜장면과 짬뽕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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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인터넷에서 ‘삼호어묵’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주부가 기자와 카톡으로 인터뷰한 글을 봤다. 정권의 부동산 정책에 화딱지가 나서 글을 올렸다는 삼십대 주부인 그녀의 글이 화제가 되고 있었다.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내가 짜장면이 싫다고 해서 어떻게 짬뽕 쪽이라고 하는 거냐구요? 나는 잡채밥도 울면도 마음대로 선택해서 먹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녀가 좌파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우파라고 몰아붙인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에 대한 그녀의 답변이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 세대나 윗세대는 자라면서 한 가지 사상만 뼈에 박히도록 세뇌되면서 살아왔다. 제복을 입은 군인들은 그게 더욱 심했다. 나보다 열다섯 살 가량 많은 친하게 지내는 고교 선배가 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기자가 된 후 군 복무를 위해 사병으로 입대했다. 그가 사병일 때 바로 위의 장교가 노태우 대위였다. 그 시절 노 대위는 입만 열면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라는 말을 했다. 한번은 같이 일하는 사병의 어머니가 아프다는 연락이 왔다. 휴가를 내서 고향으로 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노태우 대위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군인으로서 개인적으로 휴가를 가는 게 과연 옳은지 생각해 봐야 하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당시 장교의 머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국가관과 애국심의 표현이었다. 군대 시절 노태우 대위 밑에서 일하던 선배는 이렇게 덧붙였다.
  
  “한번은 노태우 대위가 집을 이사하는 데 가서 도우라고 하더라구. 그래서 새로 얻은 셋집 앞에 가서 기다리니까 살림을 실은 트럭이 오고 예쁘장한 여자가 앞 운전석에서 내리더라구. 나중에 영부인이 된 김옥숙 여사지. 이불 보따리를 나르고 그 집 청소를 했어. 국가와 민족만을 아는 장교를 위하는 거니까 이삿짐센터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것이었겠지. 그후 세월이 흘러 노태우 대위가 대통령이 되시고 나는 신문사 편집국장이 됐어. 청와대에서 만난 적이 있지. 나를 몰라 보더라구. 그래서 나도 아는 척을 하지 않았어.”
  
  선배의 머리 속에 남은 것은 ‘국가와 민족’이란 단어였다. 고등학교 시절 우리들은 의무적으로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걸 강제적으로 달달 외워야 했다. 그 첫머리에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라고 되어 있었다. 태극기를 깃대에서 내리는 시각이 되면 각자 그 자리에서 정지하고 가슴에 손을 올린 채 국가에 대한 충성선서를 해야 했다.
  
  그 시절 어느 날 나는 갑자기 그게 싫었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타고 태어난 것 같지 않았다. 차렷 자세를 취하지 않고 자리에 그냥 그대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윗 학년의 다른 학생이 와서 따귀를 올려 붙였다. 나는 리어카 위에 카바이트 불을 켜놓고 책을 파는 청계천의 어두운 골목을 돌아다녔다. 거기서 사회주의를 간접적으로 소개한 책도 사고 히틀러의 ‘나의 투쟁’도 사서 읽었었다. 단색의 단세포 생물이 되어 사는 게 싫었다.
  
  대학 시절도 역시 우리들은 병영국가에서 살았다. 헌법 교수는 교실 안에서 눈치 보며 개인주의 자유주의를 강의하고 문 밖은 국가주의가 매연같이 꽉 차 있었다. 정권이 요구하는 사상에 순응해야 양지를 걸을 수 있었다. 시대의 흐름에 저항하면 감옥행이었다. 세상은 순응과 저항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다.
  
  인간으로 자유롭게 살아도 된다는 사상을 어떤 글에서 봤다. 사백년 전 런던의 뒷골목에 볼품없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너무 조용해서 주위에서는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몰랐다. 절대주의 국가주의가 만연하던 그 시대 그 남자는 불기 없는 방에서 책 한 권을 써냈다. 개개인이 가장 소중한 존재이고 국가는 그 개인의 생명과 자유를 위해 존재한다는 내용이었다. 국가주의가 만연하던 그 시대에서는 파격적인 이단이었다. 그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였다. 그의 자연법 사상이 프랑스로 가서 루소의 사상이 됐고 다시 미국으로 가서 독립선언문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나는 국민이라면 세금을 내고 군대 갔다 오면 자유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각 사람이 처한 위치가 다르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자기의 위치와 일할 범위를 알고 자유롭게 살아가면 된다. 좌도 우도 아니고 양심에 따라 살고 싶다. 시대의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정신적 전족을 다시 채우려고 한다. 필명이 삼호어묵인 주부의 말대로 짜장면 짬뽕 말고 예수표 잡채밥이 먹고 싶다.
[ 2020-09-27, 22: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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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정당당돌직구    2020-10-07 오후 8:20
짬뽕이든 짜장이든 돈이 있어야 사먹을수 있고 선택의 자유도 생기지 않나요. 돈 없으면 단무지에 맨밥 먹어야 하고 그도 없으면 쌩으로 굶어야 합니다.그 쌩으로 굶던 시대에 밥 좀 먹고 살자고 획일적인 사고를 강요하고 국가획일주의를 펼치고자 독재(김일성의 그런 독재와는 차원이 다른)에 가까운 통치를 한다고 그 시대에 사는 사람으로서 비판한다면 나는 그게 누구든간 짜장이든 짬뽕이든 먹을 자격이 없는 철부지라고 생각합니다. 현재를 살고 있는 이성을 가진 성년이라면 그리고 선택의 자유를 누릴 풍요를 가진 국민이라면 굳이 과거와 같은 국가제일주의에는 자연스러운 거부감을 갖지 않을까요? 나는 모든 것을 흑백으로 나눌려고 하는 지금의 정치인들 특히 내로남불당, 그리고 위 글에서 당시의 필자가 한 행동과 같은 소영웅주의자야 말로 다양한 개성이 넘치는 자유와 풍요의 시대에 오히려 과거의 유물처럼 과거에 틀에 빠져 단세포화 된 비 이성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삼호어묵의 짜장면과 짬뽕의 항변은 그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stronger    2020-10-07 오전 6:25
정치와 기 기조가 되는 현실적인 정치사상은 우리가 사는 집과 같은 것이다, 그 집 속에서 살면서 짜장면이나 짬봉을 또는 잡채밥을 먹는 것은 자유다. 그러나 그 집을 더 좋은 집으로 바꾸거나 만드는 것은 음식을 먹는 자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집주인의 생각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 생각이 상반되는 두개 일 수는 없는 것이다. 또 그 중간도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어는 한가지 즉.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되는 그런 것을 선택해야 하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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