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꾼 최요한 선생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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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구백구십칠년 유월 십오일 뙤약볕이 쏟아지는 일요일 점심시간 무렵이었다. 나는 몇몇 사람을 따라 광석면 율리에 있는 나환자촌으로 들어섰다. 같이 간 사람들은 특이한 사람들이었다. 밤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삼류가수나 일거리가 별로 없는 춤꾼, 노래꾼 몇 명이었다. 인기도 없고 돈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에서는 천대받아도 나환자촌에 와서 공연을 하면 최고의 스타가 된 기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몇 명이 모여 그늘진 곳을 찾아가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고 했다. 나환자촌은 조용했다. 농로 옆에 빨갛고 하얀 접시꽃이 쏟아지는 햇볕을 받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녹슨 농구대에서 아이 한 명이 공을 던지고 있었다. 같이 가는 춤꾼 최 선생이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학춤을 추는 춤꾼이에요. 아내도 소리를 하죠. 환갑을 지내니까 이제는 밤무대에서도 불러주지 않아요. 지금까지 집도 없어서 교회 귀퉁이에 있는 방을 공짜로 얻어서 살고 있어요. 제가 벌이가 없으니까 아내와 딸이 점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예인답게 그는 단번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
  
  “밤무대에서 나를 불러주지 않으니까 그 다음에 나는 이런 나환자촌을 다니면서 학춤을 췄어요. 처음 공연할 때 사람들이 와서 손을 막 잡아요. 여기서는 저도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으쓱해지더라구요. 그런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간 사람, 코가 떨어진 사람, 눈이 없는 문둥이들을 보니까 화들짝 놀라 손을 빼고 싶더라구요. 나도 사람이니까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좋아하면서 손을 잡는데 내가 뺄 수 있겠어요? 그냥 손을 잡아주고 있었죠. 그랬더니 숨어서 제 춤을 구경하던 사람들까지 확 몰려오더라구요.”
  
  늙은 그는 그곳에서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우리들이 간다고 그곳 마을회관에서 나환자 출신들이 점심상을 차려 놓았다. 기름을 두른 검은 불판 위에서 삼겹살이 굽히고 상추와 된장 마늘이 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 마을 총무라는 노인이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내가 악수를 청하면서 손을 내미니까 그 노인은 의도적으로 손을 뒤로 뺐다. 나에 대한 배려였다. 한쪽 눈알이 빠지고 그 자리가 누렇게 변해 있었다.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를 하다가 어느 날 나병에 걸린 걸 알았어요. 저주를 받은 거죠. 혼자서 집을 나왔죠. 모진 생명 유지하려고 구걸도 했어요. 사람들이 밥도 안주고 때리고 침을 뱉기도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여기로 왔는데 저 같은 나환자 한두 명이 모여 살고 그렇게 사람들이 늘다 보니까 마을이 됐어요. 모여서 닭과 돼지를 키우고 살았어요. 나병도 다 났어요. 그렇지만 그 병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그대로들 있는 거죠. 제 고교 동창들을 보면 시장이 되기도 하고 대사가 되기도 했어요. 제 아들이 금년에 서울대 입시에서 떨어졌는데 재수를 하려는가 봐요. 보고 싶어도 멀리서 바라봐야죠. 갈 수는 없죠.”
  
  가슴이 뭉클한 얘기였다. 손가락이 모두 없어진 여인이 이마에 진땀을 흘리면서 밥을 해서 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내 옆에 있던 춤꾼 최요한 선생이 상추에다 흰밥을 넣고 고기 한 점과 마늘 쌈장을 얹어 입에 넣고 와작와작 씹었다. 나도 그를 따라 그렇게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넘어갔던 상추쌈이 나도 모르게 저절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걸 보면서 춤꾼 최 선생이 귀에 대고 조용하게 속삭였다.
  
  “나도 밥 먹을 때 처음에 이상했어요. 그런데 악수하고 같이 밥을 먹어야 여기 사람들이 좋아하니까 그렇게 해뿌렀죠. 사람들이 참 좋아하더라구요.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밥도 실컷 먹고 그래요.”
  
  그가 맛있게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나의 위선을 깨달았다. 보여지는 나는 안 그런 척 하지만 내면의 나는 그들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춤꾼 최 선생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평생 아내는 소리를 하고 남편은 춤을 추었지만 빛을 본 적이 없었다. 가족을 데리고 살 반(半) 지하방을 얻을 돈도 없다고 했다. 그가 얘기중에 이런 말을 했다.
  
  “가끔 울적하면 동대문 시장을 가요. 배로 벌레같이 시장바닥을 기면서 물건을 파는 사람을 보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위로를 얻죠. 병이 들어 한동안 밥도 못먹고 약으로만 살았던 적이 있어요. 그러다가 꿈에 예수를 봤는데 형체도 없더라구요. 그러면서 하는 말씀이 나보고 죽으라는 거에요. 영생을 얻으려고 예수 믿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면 되느냐고 따졌죠. 억울하더라구요. 깨고나서 곰곰 생각해보니까 사실적으로 죽으라는 말이 아닌 것 같더라구요. 새로 태어나라는 말씀 같았어요. 그래서 다음부터 이렇게 나환자촌을 다니게 된 거죠.”
  
  얼마 후 춤꾼 최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바람결에 들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다. 어느날 텔레비전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대스타인 미녀 가수의 모습이 나왔다. 그 춤꾼 최 선생의 딸이었다.
  
[ 2020-10-14, 06:0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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