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살 공무원 형 이래진 씨 “윔비어 가족, 북한 인권 단체와 공조하고 싶다”
"북한군은 30시간 표류한 동생을 바다에서 2시간 동안 끌고 갔다…전쟁 중에도 민간인 학살은 범죄다"

RFA(자유아시아방송)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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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C:서해 NLL 인근 해상에서 한국 공무원이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은 북한 당국의 잔혹성과 인명경시 태도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써 한국 국민과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사망한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는 석연치 않은 동생의 사망경위를 밝히기 위해 지금도 동분서주하고 있습니다. RFA 서울지국의 이현주 기자가 이래진 씨를 만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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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심적으로 힘드신 시기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 9월 21일, 동생의 실종 사건이 발생했고 24일, 북한군에 의해 총격 사망했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한국 사회에도 큰 충격이었지만 가족들이 받았을 충격은 말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이래진:막내는 (아빠가) 선물을 사올 것이라고 아직 믿고 있고 고등학교 2학년인 큰 아이는 (사건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지금 시험 기간이니까 오전 수업만 하고 바로 오는데 처음에는 학교를 거의 못 갔습니다. 친구들의 수군거림도 있었고요.
  
  기자:돌아가신 동생분이 몇 째이십니까?
  이래진:5남 2녀 중에 4째입니다.
  
  기자:부모님은요?
  이래진:아버님은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생존해 계시지만 치매세요.
  
  기자:가족들에겐 어머님의 치매가 힘든 일이겠지만 넷째 아드님의 사건은 모르시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어요.
  이래진:한편으로 불행 중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생이 꽃게를 몇 번 갖다 줬나 봐요. 그 꽃게가 맛있었다고 계속 말씀하세요.
  
  기자:가족들, 그 얘기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시겠어요…
  이래진:그렇죠. 지금 사건 발생하고 4주 지났는데 저는 한 4년 4개월 산 느낌입니다.
  
  기자:제가 인터뷰하시는 걸 몇 번 봤는데 한 번도 (형님이) 눈물 흘리시는 걸 못 봤습니다. 참 굳건하시구나 생각도 했지만 한편으론 눈물 흘리실 경황도 없으신 게 아닌가…
  이래진:네, 그 정도 바쁘게 지나왔고요. 분노가 워낙 강하니까. 눈물보다는 강한 다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기자:지금은 울 때가 아니다…
  이래진:그래서 제가 제수씨와 통화를 못 해요. 아… 정말 통화를 못 하겠더라고요.
  
  기자:동생의 실종 이후 수색 현장에 직접 방문하셨고 들었습니다. 21일 실종 이후 수색은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이래진:21일 날 4시 30-34분경에 실종 상태를 통보받았습니다. 22일 아침 8시에 인천에서 연평도로 가서 10시경 사고 선박에 탑승했습니다. 선장한테 보고를 받고 논란이 됐던 (동생의) 슬리퍼 상태 확인했고 동생의 침실도 확인한 뒤 바로 수색에 임했습니다. 가장 확실한 헬기를 동원해서 수색을 해야 하는데 헬기는 당시에 1기밖에 동원이 안 됐습니다. 죽고 나니 6대까지 증원하더라고요. 함정도 해군 함정만 많을 때는 23척까지 투입됐는데요. 죽고 난 뒤에 2천-3천 척을 투입한들 뭐가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자:24일 오전 합참의 공식발표가 있었습니다. 실종자가 피격됐다는 발표였는데요. 이 발표는 수색 중에 들으셨겠네요?
  이래진:배에서 봤어요. 아주 짧은 내용의 발표였는데요. 그때까지만 해도 사건을 유심히 재구성해보지 못했습니다만 동생의 사망은 지금 생각해보면 심정지 내지는 익사로 사망을 하지 않았겠느냐 생각합니다. 총격은 2차 사망이었다고 추정합니다. 북한군은 처음 간단한 심문을 끝낸 뒤 (동생을) 줄로 묶어서 2시간을 끌고 갔다고 해요. 30 시간 정도를 해상에서 표류했다면 사람이 기운이 다 빠져버립니다. 건장한 체격의 사람도 2시간 이상을 끌려가면 물을 엄청 많이 먹습니다. 동생은 반 실신 상태에서 끌려가니 엄청나게 물을 먹었을 겁니다. (배의) 스크루도 그렇고 파도 등으로 강제적으로 물을 마시게 됩니다. 익사나 심정지가 먼저 오지 않을까 판단합니다.
  
  기자:24일 발표된 사건은 남한에서도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다음 날인 25일, 김정은 위원장이 사과했는데요. 남한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유족들은 어떻게 보셨습니까?
  이래진:이례적인 것이 아니라 잘못했으니 시인을 했겠죠. 김정은의 입장 발표문에 대해서는 제가 왜 일부 수긍을 했냐면 동생의 시신이 북한에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시신을 송환, 인도받는 차원에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에게 빠른 시일 내에 가족의 품으로 돌려달라는 것이죠.
  
  기자:유엔에 동생의 피살 사망 사건에 대한 공식 조사를 요청했고 유엔 북한인권사무소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유엔 또 국제 사회에 어떤 역할을 기대하고 계시나요?
  이래진:철저한 진정성 있는 조사와 투명한 정보 공개를 요청했고요. 유엔은 감시 기구잖아요. 사법적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은 적지만 유엔이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보다 더 적극적이고 더 발 빠르게 발표하고 이 부분에 관련해 심각하게 보고 있거든요. 북한의 만행과 잔인성을 부각시키다가 남한의 군과 정부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압박하고 있습니다.
  
  기자:인터뷰 중에 유족들은 북한의 잔혹상을 국제 사회에 널리 알려 이 같은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차원이기도 하다고 밝히셨는데요.
  이래진:북한이 왜 잔인하냐면 비무장인 민간인, 그것도 공무원을, 거의 반 죽음 상태의 동생을 2시간 정도 무지막지하게 끌고 가서 사망하게 만들었잖습니까. 사망 직전의 동생을 또다시 총격해서 사망시켰잖습니까. 이 부분은 어떻게 설명해도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두 번 다시 있어서 안 되는 비극이거든요. 그래서 재발 방지에 관련된 국제 공조와 해난 사고에 관련된 부분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는 재발 방지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자:퀸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75차 유엔 총회에 보고할 북한 인권 보고서 15일 공개했습니다. 동생분의 피격 사망 사건도 포함됐는데요. 보고서에는 민간인을 사살한 사건은 국제법 위반이며 북한은 공무원 피격 책임자 처벌하고 유가족에게 배상해야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이래진:(퀸타나 보고관에게) 처음엔 총격에 의한 사망, 두 번째는 익사나 심정지에 관한 리포트를 동시에 보냈습니다. 그것을 명확하게 조사하고 책임자 처벌이라든지 공동조사, 재발방지 등을 다 제안을 했습니다. 사고 경위 리포트도 다 보냈었고요. 그래서 그 부분을 보고 좀더 발 빠르게 움직인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민간인, 전쟁 중에도 민간인은 안 죽이는데 하물며 신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동생을 죽여버렸다? 이 부분에 관해서는 북한도 그렇지만 남한도 자유롭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 과정을 그대로 지켜봤기 때문에…그래서 이 부분을 유엔에서 공동조사를 해달라는 겁니다. 왜 죽였고, 왜 안 지켰느냐를 동시에 물어봐야 될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한 답이 있을 것 아닙니까? 저는 그것을 알고 싶습니다.
  
  기자:33개의 북한 인권단체들이 공동으로 이번 사건과 북한 인권의 심각성에 대해 유엔과 유럽 연합에 서한을 보냈습니다. 이제 한국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의 북한 인권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래진 : 앞으로 그런 공조를 해야겠습니다. 그런 단체들과도 또 웜비어 가족, 재단과도 공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북한 인권 이전에 동생은 해상 공무원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상사고에 관련해 주도적으로 재단, 단체를 만들어서 정부에 건의도 하고 국제사회에도 알리고... 이런 부분이 계속 진행된다면 좀 더 발전된 남북의 상황, 북한의 인권에 대해서도 좀 더 심도 있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젠 북한도 스마트폰이 보급됐고 정보를 취득할 수 있는 능력도 있고 경제상황도 과거보다는 좀 더 발전되지 않았습니까? (비무장 민간인을 쏘라는) 잘못된 명령…그런 부분들이 계속 계몽화되지 않고 설득하지 않고 계속 방치한다면 북한은 더 강한 압박을 받을 수 있고 완전히 고립된다면 그 인권은 더 비극적일 겁니다.
  
  기자:가족들이 북한 정부에 전하고 싶은 말씀이 분명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이 방송을 통해 전해주시죠.
  이래진:왜 신분을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코로나를 이유로 동생을 죽였는지, 왜 공무원 신분이면 남북 관계 향후 발전을 위해서 반드시 송환을 했어야 하고, 정말 인도주의적, 정말 인간들이었다면 30시간 차가운 바다에 있었던 사람을 최소한 건져 올려서 보온 유지해 주고 음식, 물 제공을 했어야 했는데 강력하게 항의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유골이나 시신을 가지고 있다면 인도주의 차원에서 빨리 송환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기자:사건 발생 이후 4주가 지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지금 바라시는 건 무엇일까요?
  이래진:빨리 장례를 치를 수 있는 유해 유골을 반드시 찾기를 바랍니다. 이런 일을 어떻게 상상을 했겠습니까? 지금도 믿기질 않습니다. 지금도 제 전화를 보면 동생과의 통화기록이 지금도 있습니다. 못 지우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애정 하는 동생입니다.
  
  기자:가족들이 바라는 대로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오늘 긴 시간 인터뷰 감사합니다.
  이래진:감사합니다.
[ 2020-10-17, 06:0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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