超상류사회 체험記
“정몽준 회장이 전세 비행기를 얻어 자기가 초대한 사람들을 데리고 갈 것 같아. 거기 같이 타자고.”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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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천이년 유월 이십이일 광주에서 월드컵 축구 사강전이 벌어질 때였다. 뜨거운 열기가 온 나라를 들끓게 했다. 거리에는 차가 없어지고 가게들도 문을 닫았다. 전 국민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열광했다. 축구 경기의 표를 사기 위해 매표소 앞에서 텐트를 치고 밤을 새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때 축구경기와 함께 초상류 사회를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주요 일간지 정치부장을 하는 친한 선배가 전화로 이런 말을 했다.
  
  “어제 정몽준 회장하고 저녁을 먹었는데 축구 구경하러 같이 가자고 하길래 엄 변호사하고 내 표를 얻었지.”
  
  정몽준은 축구협회 회장이었다. 월드컵 열기를 타고 자연스럽게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부상하고 있었다. 이미 한국에서 그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선배가 덧붙였다.
  
  “정몽준 회장이 전세 비행기를 얻어 자기가 초대한 사람들을 데리고 갈 것 같아. 거기 같이 타자고.”
  
  그 전세 비행기 안은 대통령이 될 것 같은 재벌 회장이 특별히 초청한 사람들만 모인 초상류사회였다. 내가 낄 자리가 아니었지만 보고 싶은 호기심이 일었다.
  
  다음날 나는 그 비행기에 탔다. 뉴스에서 보던 거물급 정치인들이 신문을 뒤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고급의상에 화장을 한 여성 국회의원들이 보였다. 전 안기부장, 전 감사원장, 전직 장관들이 보이고 현직의 검찰 간부와 언론사 간부들이 타고 있었다. 그들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축소판 상류사회의 구성원인 것 같았다. 그들이 국가가 향하는 좌표를 결정하고 그들중에서 장관이 임명될 것이다. 사십 분의 비행 끝에 광주공항에 착륙했다. 정몽준 회장은 대기하고 있던 버스 앞에서 초청한 사람들과 한 사람 한사람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어쩌면 영주(領主)와 가신(家臣) 관계의 시작 같기도 했다. 정 회장이 버스에 올라타 운전석 뒷좌석에 앉았다. 길거리 곳곳에 정몽준 회장을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정 회장이 옆에 앉아 있는 언론사 간부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맨 처음에는 월드컵 열기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모두 걱정하더라구. 그런데 축구야 본 게임이 시작되면 자연히 열기가 생기는 거지 사전에 만든다고 되나? 내가 그냥 기다려 보자고 조직위원회 식구들에게 말했지. 아니나 다를까. 지금 봐. 열기가 대단하지.”
  
  십년 전 그의 아버지 정주영 회장이 대통령이 되려고 할 때 그에 대해서 부정적인 말이 돌았다. 재벌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뼈 속까지 도련님 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아버지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이미 그는 대통령보다 더 교만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보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입고 있는 옷도 수수한 감색 자켓에 앞이 뭉툭한 검은 구두를 신고 있었다. 구두코에 먼지가 끼어 있는 게 보였다. 머리도 기름을 바르지 않은 더부룩한 스타일이었다. 그가 말하는 소리가 뒤에서 계속 들렸다.
  
  “참 오신 분들 어디 식당에서 밥 먹고 가는 것도 괜히 번잡하고, 내가 축구장에 점심을 차려놨는데 빨리 가서 드시는 게 좋지.”
  
  그가 그렇게 말하면서 앞에 있는 버스 기사에게 말했다.
  
  “이봐요 출발하지. 그리고 차창 옆에 붙은 그 햇빛 가리개 좀 올려요. 밖이 잘 안보여.”
  “아? 예 예 알겠습니다.”
  
  버스기사가 당황한 목소리로 가리개의 한쪽 나사를 돌렸다. 나사가 풀어지면서 햇빛 가리개가 기울었다. 당황한 운전사가 다른 나사를 풀려고 했다.
  
  “무리하게 하실 필요 없어요. 그대로 두세요.”
  
  기사는 정신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정 회장이 그가 허리를 움찔하더니 허리에 차는 색을 들어 올리면서 말했다.
  
  “가만있자 이 가방이 누구 거지?”
  그가 옆의 앞자리에 앉은 여직원을 보면서 물었다.
  
  “이거 니거니?”
  “아 아니에요.”
  여직원 역시 당황한 표정이었다. 모두들 그를 임금님 같이 대하고 있었다. 버스가 경기장 부근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거 봐요”
  차 안에 있는 어떤 사람이 차창 밖을 가리켰다. 빨간 셔츠를 입은 시민들의 물결이 경기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가로수마다 걸린 플래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정몽준 회장님 사랑해요’
  
  축구 열기 못지 않게 차기 대통령 후보자에 대한 지지가 급격히 온도가 올라가는 것 같았다. 경기장에 들어가기 위해 검색대를 지나야 했다. 대통령이 참석하기 때문에 철저히 몸수색을 하는 것 같았다. 대통령 경호원과 경찰관이 정몽준 회장을 보더니 말했다.
  
  “회장님은 그냥 들어가시죠.”
  그가 대한민국에서 어떤 위치인지 잠깐 동안 보고도 알 것 같았다.
  
  VIP석 라운지에는 뷔페식으로 음식과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다. 전세 비행기를 타고 온 초대받은 사람들이 각테일 잔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최상류사회의 파티인 셈이다. 나는 구석에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오랜만이오”
  김 의원이 지나가면서 악수하자고 손을 내민다. 법무장교 선배였다. 그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권력에 예민한 후각을 가지고 행동도 재빨랐다. 누구를 만나도 기분 나쁘게 하지 않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출세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매끈한 그의 입과는 달리 눈동자는 웃고 있지 않았다. 또다른 소리가 들렸다.
  
  “엄 변호사님 반가와요. 우리 악수 한번 할까요?”
  검사 출신의 여성의원이 활짝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역시 성공한 정치인은 뭔가 다른 것 같았다. 그녀가 변호사 시절 사건을 놓고 나와 껄끄러운 일이 있었다. 나는 엉거주춤한 데 비해 그녀는 노련하고 매끄러운 태도였다.
  
  사무라이라는 별명을 가진 중진의원 옆에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이 모여 웃고 떠들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쓸쓸해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구석에서 혼자 커피잔을 들고 서 있는 여당 대통령 후보였던 분이 보였다. 흘러간 권력가 옆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음식을 먹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육공 정권에서 대통령 후보로 인기도가 치솟았던 권력의 실세인 장군이었다. 권력의 옷을 벗은 그의 표정에 우수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고개를 갸웃하며 나를 유심히 바라보는 여성이 있었다. 옷깃에서 금배지가 반짝였다. 뉴스시간에 화면에서 본 얼굴이다.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녀가 내 앞으로 다가와 말했다.
  
  “저 혹시 그렇게 유명한 씨이오 안철수씨 맞죠?”
  그녀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이 자리를 이용해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그녀가 멋쩍은 듯 되물었다. 나는 파티에 잘 못 끼어든 초대받지 않은 구경꾼이었다.
  
  육만 명의 관객들이 스탠드에 꽉 들어차 함성을 질렀다. 한국과 스페인 선수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었다. 골키퍼의 공로로 한국이 이겼다. 관중들이 열광하고 있었다. 그 열기가 차기 대통령선거의 열기로 이어질 것 같았다. 스포츠가 단순한 게 아닌 것 같았다. 얼마 전 국방부에서 국장을 하는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터키에 대포수출을 하려고 계약을 체결했는데 터키 선수들에게 잘해줘야 해. 그래서 국방장관이 타워호텔 선수들 숙소를 찾아가 일일이 위문을 했지. 터키 응원단도 만들고 말이야.”
  
  초상류사회 사람들은 참 바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기 권력자와 미리 관계를 설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읽던 소설을 꺼내 들었다. 헌책방에서 이천 원 주고 산 이병주씨의 ‘행복어사전’이었다. 신문사 말단 교정원이었던 주인공은 혼자 가난하게 살면서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감히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지도 않았다. 소시민인 그는 그저 자기만이 보고 느끼고 쓸 수 있는 영역을 원고지에 또박또박 적고 싶었다. 초상류사회를 하루 구경하면서 나는 차라리 소설 속 주인공이 더 자기를 자각하는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 2022-07-05, 00: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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