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 자의 인내(忍耐)
‘남편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습니다.…환자가 의식은 있으나 소통이 불가하여 허락하에 대신 소식 전합니다.’

엄상익(변호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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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고난(苦難)>
  
  어제 나를 찾아온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얼마 전 양치질을 하는 하는데 입에서 물이 새는 거야. 안면마비 증세가 온 거지. 다행히 뇌의 문제가 아니고 신경의 문제라서 넘어갔어.”
  
  그는 잠시 놀랐을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 아버지는 환갑이 되기 전에 돌아가셨어. 어머니는 마흔세 살에 돌아가셨어. 지금 내 딸의 나이지. 그걸 생각하면 나이 칠십인 나는 뭐가 닥쳐와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야.”
  
  나이가 우리를 달관하게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어려움이 커다란 파도같이 다가오는 걸 본다. 중풍으로 반신이 마비되어 재활병원에 있는 대학 동기에게 서 전화가 왔다. 그에게 종종 안부를 물었었다.
  
  “여기 나같이 몸이 마비돼서 재활치료를 받는 사람들이 몇백 명이 돼. 모두들 매일 몇 시간씩 걷는 연습들을 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나하고 똑같으니까 괜찮은 것 같아.”
  
  그의 목소리는 밝아졌다. 처음 쓰러졌을 때의 절망과 어두움이 사라진 것 같다. 같은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한쪽 눈이 녹내장 진단을 받았다. 내 눈에서 세상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실버타운 내에서 더러 마주치는 내 또래의 전직 교수가 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도 한쪽 눈이 녹내장이에요. 아무 것도 안 보여요.”
  
  그가 백태까지 낀 한쪽 눈을 질끈 감고 다시 한번 주위를 확인하는 모습이었다. 병이란 나이를 먹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손님이라는 걸 느끼면서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암 진단을 받고 입원해 있는 친구가 있다. 크고 작은 어려움의 인생 파도를 넘어온 친구였다. 고등학교 삼학년 때 그와 같은 반이었다. 그는 온몸에 성실이라는 공기를 두르고 다니는 것 같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독일로 유학해서 힘들다는 경제학 박사학위를 따고 돌아왔다. 그는 연구소에서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모범시민으로 살았다. 그는 고교 동기들 사이에서 신앙의 지도자이기도 했다. 모임을 만들어 작은 예배를 주도하고 병들고 힘든 친구들을 찾아다니면서 기도해 주는 일을 했다. 술담배나 골프 같은 오락을 그가 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거의 천사 수준이었다. 그런데 천사가 지는 십자가는 더 크고 무거운 것 같았다. 그 누구보다도 경력과 실력이 탄탄한 그에게 좋은 대학의 교수 자리가 오지 않는 게 이상했다. 그 친구는 남이 겪지 않는 아들의 사고를 겪기도 했다. 군에 간 아들이 트럭을 타고 가다가 앞 유리가 깨져 그 파면에 눈알을 찔려 실명한 것이다. 아버지인 그가 진땀을 흘리며 고통받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선한 일만 해 왔던 친구에게 암이라는 손님이 빨리 찾아왔다.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카톡으로 상황을 물었었다.
  
  ‘담도가 막혀 황달이 왔어. 그걸 뚫어야 항암치료가 가능하다고 그러네. 고열이 나고 소화가 안돼. 대소변도 못 보고’
  
  그래도 그가 곧 회복될 걸로 생각했다. 하나님이 특별히 사랑하는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다시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체력이 있어야 하는데 먹지 못해서 그런지 체력이 회복이 안 되네. 그게 문제야’
  
  누군가 자꾸 장애물을 그의 앞에 놓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도 그는 이겨 낼 것 같았다. 얼마 후 다시 그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전이가 많이 되어 수술이 어렵다고 그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다시 메시지가 왔다.
  
  ‘그동안 고마웠어.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견뎌내고 있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
  
  마지막 인사 같은 모호한 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연락이 없었다. 사흘 전 그의 카톡에 메시지가 하나 떴다. 그의 아내가 보낸 내용이었다.
  
  ‘남편이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겼습니다. 기도와 위로에 감사드립니다. 환자가 의식은 있으나 소통이 불가하여 허락하에 대신 소식 전합니다.’
  
  때가 다가온 것 같았다. 그가 마지막 고통의 언덕을 넘는 그 자체가 기도라는 생각이다. 고통은 선을 이룸이기도 하다. 큰 건물이 지진에 견디듯 그는 세상의 마지막인 죽음의 고통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에게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믿는 자의 인내를 보는 것 같다.
  
[ 2022-11-03, 21:4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미투데이미투데이  요즘요즘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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