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2월 초 엄동설한의 러시아를 방문했다. 강추위 속에서 중국에 대한 러시아의 경계심이 서려 있음을 피부로 실감하는 여행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 가운데 하나로 동양 언어에 관하여 권위 있는 연구교육기관이다. 이 대학의 한 연구동을 찾아갔더니 중국 정부의 문화공작기관이나 다름없는 공작학원 기관지가 쌓여 있었다.

최신호를 넘기니 중국 공산당의 외교정책을 선전하는 내용뿐이었다. 정치 냄새가 풍기는 잡지라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다. 이 대학은 2006년 중국 교육부 산하 국가 기관과 계약을 맺고 정식 공자학원을 설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역사와 전통 문화에 관심은 있지만 사회주의 선전에는 흥미가 없다. 사회주의는 1917년 러시아 혁명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이 땅에서 탄생했는데 이제 역사의 저편이 됐다면서 직원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중국은 러시아를 강렬하게 의식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의 포성에서 시작된 사회주의로 인하여 중국의 인민들은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압정에서 해방됐다는 중국 공산당의 선전을 굳게 믿으며 중국의 관광객들이 대거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찾는다.

이들에게 있어 관광의 핵심은 러시아 혁명 당시 포격당한 겨울궁전을 포함하여 에르미타주 미술관이다. 반면에 교양 있고 우아한 유럽인을 자처하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시민들의 입장에서 어쩐지 오싹해 보이는 중국 관광객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새하얀 눈에 덮인 거리를 파괴하는 행위는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침을 뱉지 마시오’, ‘먹고 남은 음식을 화장실에 흘려보내지 마시오’ 등의 거친 표현의 중국어 된 팻말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중국 관광객들의 이런 행동을 응징하는데 있어 공자학원에서 배운 중국말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련 붕괴 직후에 비해 러시아인들의 표정은 밝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같은 러시아에 서도 유럽 방면은 상황이 좋아졌지만, 러시아 극동지역은 걱정'이라고 현지인들이 염려하고 있다. 러시아 극동지역 인구는 600만 명에 불과하지만 국경 너머의 중국 동북3성에는 1억 1000만 명의 중국인들이 살고 있다.

평화적 이웃이라면 좋지만 러시아를 찾는 중국인들은 사할린을 포함한 극동지역은 중국의 고유 영토였으나 제정 러시아에 빼앗겼다고 주장해왔다. 중국 국내 인터넷에서는 강대해진 중국이 러시아와 맺은 불평등 조약을 바로잡아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경론도 횡행하고 있다.

중국의 여론을 보고 러시아는 앞으로 역사교과서 개정을 준비하는 중이다. 극동지역은 국제법에 따라 러시아에 병합됐다는 내용이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영토는 우리 국민이 피를 흘리며 얻었다고 러시아인들은 믿고 있다.

러시아 지리학협회를 찾았을 때도 전시가 끝나면서 그 믿음이 전해졌다. 제정러시아 시절 근대적 훈련을 받았던 군인들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유라시아의 초원을 달려 태평양 연안까지 질주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민족과 지리에 관한 면밀한 조사를 한 뒤, 이를 황제에 바쳤다. 이후 이들 조사를 기초로 러시아의 코사크 군대의 군화를 거쳐 선주민들이 정복되어 결국 황제의 신민이 됐다는 것이 러시아의 근대사였다.

러시아 협회에서는 1년에 한 번 푸틴 대통령이 연설을 통해 뛰어난 학자들을 표창한다. 2016년 11월에 러시아 지리에 능통했던 한 소년이 표창을 받으면서 '러시아 국경은 끝이 없다'고 말하여 국민들을 열광시켰다.

푸틴은 과거 어느 러시아 황제보다도 러시아 국민과 국토를 열광시키고 있다. 이웃국가들의 도전에 대해서도 경계를 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