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기 8편
 

피렌체, 예술가의 도시

어제 베니스 관광을 마친 우리 일행은 210분의 버스 이동으로 이탈리아 중부지방, 단테의 고향 피렌체에 도착하였다. 영어식 지명으로는 플로렌스(Florence)로 불리는 피렌체는 다양한 역사적 유산을 갖고 있는 도시이다.

피렌체는 사람들이 자연적으로 모여 살다 보니 도시가 형성된 것이 아니다. 분지 형태로 되어 있는 피렌체는 원래 수도 로마를 방어하기 위하여 시저가 만든 요새(要塞)로 군인들과 그 가족들에 의하여 형성된 도시이다.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洲)의 도청 소재지인 피렌체는 인구 50만의 아담한 도시이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세계사적으로 유명한 많은 거장들을 배출한 역사의 고장이 피렌체다. 피렌체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발상지이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곡》을 쓴 단테의 고향이다. 《신곡》의 이탈리아어 의미는 ‘신의 은총‘ 이라고 가이드가 설명해줘서 처음 알게 되었다.

근대 소설의 선구자로 불리는 파리 태생의 보카치오 역시 이곳에 살면서 명저 《데카메론》을 완성하였다. 보카치오가 《데카메론》을 쓰게 된 원동력은 단테가 쓴 《신곡》을 읽고 난 감명 때문이란다.

조각가 미켈란젤로 역시 피렌체 출신으로, 피렌체 대성당의 요청에 의거 그 유명한 다비드 상(像)을 조각하였다. 혹시 다비드 상에 대하여 잘 모르는 분을 위하여 설명 드리면, 다비드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다윗 왕으로 왕에 오르기 전에 골리앗을 돌로 죽인 사람이다. 다비드 상은, 청년 다윗이 나신(裸身) 상태로 돌을 던지기 위하여 돌을 집어 든 모습을 묘사한 조각상이다.

이탈리아 빈치 지방에서 태어난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아버지를 따라 이 지역에서 젊은 시절 한때 예술 활동을 펼쳤으며 화가이자 조각가 라파엘로 역시 피렌체 인근 지방 출신이다.

더욱 우리들에게 피렌체가 친근감을 주는 이유는 피노키오의 고향이라는 데 있다.

르네상스를 주도한 메디치 가문

피렌체라는 지역이 유명인들을 많이 배출하고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주도하여 찬란한 문화 유산을 창조할 수 있었던 데는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였던 명문 가문, 메디치가(家) (Medici Family)가 있었기 때문이다.

메디치家는 13세기에서부터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재력과 뛰어난 외교술로 7대에 걸쳐서 프랑스 및 영국 왕실과 혼맥(婚脈)을 형성하며 피렌체 공화국과 토스카나 대공국의 통치자로 군림하였다. 메디치家는 피렌체 통치 기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 등 예술가들의 예술 활동을 지원했다. 또한 3명의 교황(레오 10세, 클레멘스 7 세, 레오 11세)을 배출하기도 했다. 당시 유럽 굴지의 금융가로 14세기부터 피렌체의 정계(政界)에 본격 등장한 메디치 가문은 피렌체 공화국의 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국부(國父)의 칭호를 받았고, 유럽의 16개 도시에 은행을 세우는 등 오늘날에도 하기 어려운 엄청난 재력을 과시하였다.

메디치家의 후손 중 마리아 데 메디치는 프랑스 앙리 4세의 왕비가 되는 등 유럽의 군주들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그 후 차차 세력이 쇠퇴하여 1737년 7대 째의 대공(大公) 잔 가스토네의 죽음으로 가계(家系)가 단절될 때까지 피렌체를 실질적으로 통치하였으며 메디치家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스페인이나 프랑스 군주에게 돈을 빌려주기까지 하면서 이들 열강으로부터 이탈리아의 방패막이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이탈리아에 왔으니 원조 스파게티를 먹어보지 않으면 섭섭할 것 같아 점심을 스파게티로 먹었는데 국내에서 먹었던 스파게티와는 뭔가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은 피렌체 시가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피렌체 동산에 올라 시내를 조망하고 기념사진도 찍은 후 단테의 생가와 한 때 이탈리아를 풍미했던 대가들이 거닐었을 미켈란젤로 광장을 둘러보고 피렌체 두오모 성모 마리아 성당을 관광했다.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은 성 베드로 성당, 밀라노의 두오모 성당, 퀠른 대성당에 이어 유럽에서 네 번째로 큰 성당이라고 한다. 캄파날레라고 불리는 높이 85m의 종탑은 1334년 설계되고 1395년도에 완공됐다. 흰색, 연두색, 분홍색 등의 토스카나 대리석을 사용하여 만들어 웅장하면서도 화려하다.

90m 높이에 달하는 성당의 돔(두오모)은 브루넬레스키(피렌체가 낳은 르네상스를 빛낸 건축가)에 의해 1463년 완공된 것인데, 돔 내부에는 화가 바사리가 착수했으나 그의 사망으로 1579년도에 추카피에 의해 완성된 또 다른 ‘최후의 심판’이 그려져 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는 다른 작품이다. 이 성당이 더욱 유명한 이유는 미켈란젤로마저 감탄했다는 르네상스의 거장 조각가 기베르티가 20년에 걸쳐 구약성서 내용을 주제로 하여 만든 성당 동쪽 문, ‘천국의 문’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이태리타월’이 없다

이탈리아 커피는 옛날부터 맛이 있기로 정평이 나 있다. 그 맛을 본 고장에서 커피를 마셔보고서야 실감했다. 쓴 맛보다는 구수하고 부드러우며 은은한 향이 좋고 숭늉과 같은 맛이 입에 감긴다. 감미로운 커피를 마시며 사랑을 하기 때문에 이탈리아인들을 정열적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흔히들 이탈리아인들을 바람둥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유럽에 와서 실상을 알고 나면 좀 의아해진다. 이탈리아가 유럽에서 가장 이혼율이 낮다고 하니 말이다. 이탈리아인에 바람둥이가 많은 것은 맞는가 보다. 우리는 왜 선글라스를 쓸까? 자외선을 피하고 눈이 부시는 것을 방지하고, 자기 얼굴을 가리는 역할, 얼굴이 타지 말라고, 게다가 좀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은 여기에 더하여 음탕한 것을 훔쳐보는 데 색안경이 일조를 한다고 했다. 눈으로 바람피우는데 선글라스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다. 

목욕 문화도 이탈리아는 우리와 다른 것 같다. ‘이태리타월’의 원조는 이탈리아가 맞을 것 같은데 정작 본 고장에 그런 타월은 없다. 이탈리아인들은 우리처럼 탕 속에 들어가서 하는 입욕을 하지 않는다. 네로(Nero Claudius Drusus. AD37.12.15~68.6.9)황제가 목욕탕 정치로 불리는 사치 호사로 나라를 말아 먹은 후부터라고 하는데 믿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들은 하여간 샤워만 한다. 한국인들도 요사이는 입욕을 옛날처럼 자주 하지는 않고 샤워로 몸만 씻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데, 아마 옛날처럼 한 달에 한두 번 기껏 날을 잡아서 목욕탕에 가야만 목욕을 할 수 있었던 시절이 가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시도 때도 없이 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탈리아 여자들은 남자보다 늦잠을 자다가 남자가 먼저 일어나서 커피를 타서 대령하면 입술만 쪽 내민다고 했다. 그만큼 여성 파워가 세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좋은 예를 보여준 영화가 ‘대부’가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 시실리 출신의 범죄 집단 마피아의 대부 알파치노 집안  사람들은 피 터지는 총 싸움으로 영화 전편 내내 손에 땀을 흘리게 하는 긴장과 카리스마를 자아내는 잔인한 갱단 패밀리다. 그런 마피아들도 집안에만 들어서면, 어머니나 부인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이고 얌전한 모범생 가장이자 아들일 뿐이다.

영화에서는 다른 갱 조직과의 죽고 사는 문제를 치르고 저녁 시간에 맞추지 못하고 30분 늦게 온 아들이 알파치노 부인에게 “저녁 식사 시간이 8시인데 지금 몇 시인데 지금 오는 것이냐”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데, 아들은 그 순간 악랄한 갱 단원이 아니라 순종하는 얌전한 어린 아이일 뿐이다. 이렇게 대답한 것으로 기억한다. 

“네, 어머니!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시간을 절대로 어기지 않겠습니다.”

남 탓하는 한국인

좀 지저분한 얘기지만 전 편에서도 언급했던 이탈리아의 화장실 문화에 대해서 한 가지 더 언급해야 하겠다. 유럽 여행하는 동안 화장실 얘기는 자주 등장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행 중 호텔에 머무는 시간이 전체 여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게다가 여행 중에는 빡빡한 일정 때문에 밖에서 공중 화장실을 이용할 시간도 부족하고 매번 이용 시마다 우리 돈으로 750원 내지 1500원을 반드시 내야 하기 때문에 호텔 출발 전에 꼭 중요한 볼 일을 보고 나와야 하는 곳이 화장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화장실 샤워장에는 정체불명의 잡아당기는 줄이 있는 곳이 있는데 호기심 많은 한국인 투숙객들이 그 정체가 궁금하여 한 번씩 꼭 잡아 당겨 본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본 적이 없으니 그 줄의 정체가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 사실 그 줄은 ‘생명의 동아줄’이다. 목욕 중 뇌진탕, 뇌졸중, 심장마비, 기타 등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입욕자가 그 줄을 잡아당기면 프론트 데스크에서 응급 상황임을 알아차리고 구급차를 부르고 출동하는 구난 신호줄인 것이다.

호기심으로 잡아당겼다가는 정말로 큰일을 만드는 줄이다. 혼비백산하여 들 것을 들고 올라온 종업원들이 방문 노크 할 겨를도 없이 비상키로 문을 열고 들어와서 보니 아무 영문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콧노래까지 불러가면서 샤워를 계속하는 한국인을 보고는, 종업원을 골려 주려고 일부러 장난한 것으로 오해하고 이탈리아어로 욕을 곱빼기로 하고 내려갔는데 욕인 줄 모른 그 한국인은 그 상황에서도 아래 도리만 가리고 싱긋이 웃었다고 한다. 그 후로 한국 관광객을 인솔하는 가이드들은, 생명줄이 달린 호텔에 입실하게 될 경우 사전에 반드시 앞에서 벌어졌던 해프닝까지 곁들여서 줄을 잡아당기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줄을 잡아당긴 한국인이 있었다고 했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왜 그랬느냐고 물었더니 그 관광객 왈, “정말 종업원이 오는지, 온다면 출동하는 데 몇 분이나 걸리는지 시험해보려고 잡아 당겨 봤다.” 아무리 교육해도 효과가 없고 호텔 측으로부터 강력하게 항의를 받은 가이드가 그 관광객에게 좀 심하게 야단을 쳤더니, 그 관광객은 나중에 가이드가 관광객 편이 아니라 호텔 편에 섰다고 가이드 피(FEE. 아시다시피 가이드 봉급은 쥐꼬리만 하고 이 돈과 현지 특산품 매장 구매 커미션이 급료나 마찬가지다)를 못 내겠다고 버티더니 귀국 후 가이드가 속한 여행사에 가이드에 대한 불만을 인터넷으로 올렸더라고 했다.

자기가 원인 제공을 했거나 잘못을 저지르고도 책임을 전가하는 한국인이 우리 주변에도 많지는 않지만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경험담보다는 가이드가 한 다음 말이 우리 한국인들의 낯을 뜨겁게 했다.

“그 후로, 정말 문제가 있어서 그 줄을 잡아 당겨도 한국인이 투숙한 객실에는 종업원들이 더 이상 출동을 하지 않는다”는 말 한 마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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