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일화가 무산되고 선거에 지면 이제 김문수가 온전히 'X바가지'를 다 덮어쓰게 됐다. 

한덕수는 7일 김문수와 단일화 관련 회동에 앞서 "단일화가 제 날짜(대선후보 등록 마감일인 11일 전)에 이뤄지지 않으면 대선 본후보 등록을 하지 않겠다. 이게 제 원칙"이라고 말했다. 

한덕수가 후보 등록을 하지 않으면 김문수가 자동으로(?) 국힘당 후보 자격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아마 단일화를 요구했던 국힘당 지도부와 보수 절반은 선거도 하기 전에 김문수에게 등돌릴 확률이 높다. 전당대회에서 '김문수 후보 교체'까지 시도될 지 모른다.

애초에 이길 수없는 대선이지만 이대로 졌을 경우 "김문수의 욕심으로 단일화를 안 해서 졌다"며 김문수는 보수 진영에서 '공공의 적'이 되는 셈이다. 김문수에게는 '배신' '사욕' 등의 낙인이 찍혀 정계에서도 영구 추방될 것이다.  

'통상전문가'로서 협상을 해봤던 한덕수는 이런 고단수 계산으로 '김문수가 비협조적이면 난 후보 등록 않겠다'는 패를 던진 것이다.

직전까지는 당지도부가 김문수에게 단일화를 너무 압박한다거나 한덕수는 왜 뒤늦게 들어와 후보 자리를 먹으려고 하느냐 등 비판 여론이 높았지만, 한덕수가 "그렇다면 난 그만두겠다" 일종의 벼랑끝 전술로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

국힘당과 보수 쪽에서는 이제 '한덕수와 단일화 과정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나' 하는 불안감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김문수는 확실하게 코너에 몰리게 되는 셈이다. 

윤석열의 계엄과 탄핵으로 비롯된 조기대선에서 보수 후보들이 단일화해도 이재명에게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더욱이 지지기반이 유사한 '김문수+한덕수 단일화'의 시너지 효과는 별로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이를 할 수 없게 됐을때 국힘당과 보수 절반은 결코 그 책임당사자(김문수)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가뜩이나 이들은 김문수가 경선 과정에서 말했던 한덕수와 단일화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는 걸로 의심하고 있는 중이다.

이날 예상대로 김문수와 한덕수의 1시간 15분 ‘후보 단일화’ 담판은 결렬됐다. 

아마 김문수는 한덕수에게 내 손을 들어주면서 사퇴해달라고 설득했을 것이고, 한덕수는 자기에게 유리한 여론조사 방식을 얘기했을 것이다. 접점이 있을 리 없다. 한덕수는 회담장에서 먼저 퇴장했다. 

한 후보 측은 "당에서 단일화에 대해 입장(여론조사)을 정해주면 거기에 응할 것이고 그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론조사 방식이면 응하고, 그게 안 받아지면 난 드롭할 테니 당신 혼자서 해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해 김문수는 구체적으로 "(한덕수가) 11일까지 진전이 없으면 본인이 등록을 안 하겠다고 했다"며 "'그럼 11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단일화가 되는 거냐'고 하니, (한덕수가) '그렇다'고 했다. 본인은 '무소속으로 출마할 생각도 없고, 당에서는 (무소속) 등록 자체에 대한 계획이나 그런 것을 준비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대화가 어려웠고 의미 있는 진척이 없었다.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덕수의 벼랑끝 협상 전술에 '안타까운 쪽'은 김문수가 될 수밖에 없다. 대부분 협상에서 잃을 게 많은 쪽이 불리하다. 

김문수는 정치를 오래 해온 입장이고 횡재처럼 굴러온 대선꿈의 기회를 잡았고 세차례 당내 경선까지 치렀다. 그가 아무리 '맑은 영혼' '사심이 없다'라고 해도 결코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다. 그에게 달라붙은 측근과 세력이 놔두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덕수는 비록 출마는 했지만 그만둬도 별로 잃을 게 없다. 대권을 위해 투자를 별로 한 것도 없었다.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 막판에 한번 뛰어든 것이다. 그는 여기서 포기해도 "보수 단일화라는 여망을 받아들여 출마 결심을 했는데 김문수가 안 받아줘 그만둔다"는 퇴로 명분도 있다. 이럴 경우 김문수는 앞서 말한대로 단일화 무산의 'X바가지'를 다 뒤집어쓰는 것이다.

김문수는 비록 경선 최종승자가 됐으나, 본선에서 이재명을 이길 확률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아래 관련기사 참고). 이게 객관적인 정세 판단이다. 그럼에도 김문수는 패배가 거의 확실한 '국힘당 후보 자리' 지키기에 매몰돼있다. 그는 '이재명을 어떻게 하면 이길까' 고심은 없고 대선 패배 후 당권 장악에 관심이 있는 건가. 김문수는 '출마 초심'을 잃으면 안 된다.

지금의 단일화 담판에서는 마음을 먼저 비우는 쪽이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한덕수가 그걸 아는 것이다. 

한덕수는 "단일화 절차, 국민의 힘이 알아서 정하시면 된다. 저는 아무런 조건 없이 응하겠다"며 "저는 투표용지 인쇄 직전까지 국민들을 괴롭힐 생각이 전혀 없다. 정치적인 줄다리기는, 하는 사람만 신나고 보는 국민은 고통스럽다. 그런 짓 저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는 자기 얘기를 했지만 김문수를 직격한 것이다. 한덕수 출마를 욕하는 이들조차 한덕수의 이런 말에는 공감을 표할지 모른다.

이날 담판이 결렬되고 몇 시간 지나 김문수는 한덕수에게 "8일 추가 회동해 단일화 논의를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그가 다급해졌다는 뜻이다.

이제 김문수도 미련 없이 자신을 버리는 배팅을 해야 한다. 한덕수 제안(여론조사 방식)을 통크게 받아주고 자신의 운명을 걸어보라. 이것도 통과 못하면 어떻게 이재명과 대결할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