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다수 국민의 걱정은 '쇠고기'와 '촛불'이 아니라 앞으로 5년의 국정이다. 대통령이 국정을 이끌어 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요 그 신뢰를 바탕으로 한 권위이다.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는 깊게 금이 갔고 그의 권위는 크게 추락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고 정부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내걸고 약속했다. 경제 살리기가 그 중심에 있었다. 대운하 건설과 통폐합을 통한 '작은 정부'도 큰 덩어리의 하나였다. 그는 친기업 정책을 내세워 규제 개혁을 다짐했고 공기업을 대거 민영화하겠다고 했다. 한·미 동맹관계를 복원해 안보를 다짐하겠다고도 했다.

그의 약속은 출범 3개월도 안 돼 무너지고 있다. 대운하는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작은 정부' 정책은 그것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졸속적으로, 너무나 안이하게 접근한 나머지, 쇠고기 파동을 통해 역풍을 맞았다. 공기업 민영화 계획은 정부 스스로 거두어 들였다. 그의 '기업 프렌들리' 정책은 노조에 의해 반(反)노조로 낙인 찍혔고, 중소기업들에 의해 '재벌 프렌들리'로 외면당하는 신세가 됐다. 좌파는 다시 반동(反動)의 기운을 타고 이 정부를 흔들고 있다. 그의 위기는 전 세계적인 유가인상과 원자재 품귀현상 그리고 환율인상 등에 기인하는 것이 크지만 이명박 정부는 이런 요인들을 예견하고 대비하는 데서 큰 허점을 보였다.

그가 내건 야심 찬 '개혁안'들이 '촛불'에 밀려 이처럼 스스로 포기하고 덩어리째 무산되고 만다면 이 대통령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MB적(的)인 것들이 없어진 MB의 가치는 과연 어떤 것인가? 더구나 외국인의 관점에서 볼 때 수도 서울에 몇만, 몇십만 명이 시위했다고 대통령이 국정일관성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후퇴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면 그의 대외 신인도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쇠고기 문제를 떠나 이 정부에 대한 총체적 불신으로 인해 한·미 관계가 퇴색되지 않을까도 걱정이다.

이 대통령은 실패자가 될망정 배신자가 돼서는 안 된다. '못난 대통령'으로 남을망정 포퓰리스트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 그는 이번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들의 신뢰에도 보답하지 못한 실수를 범했고 국민의 자존심과 건강권을 허술히 다룬 잘못을 했지만, 그렇다고 우회전 신호를 켜고 좌회전하는 '제2의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그런 관점에서 이 대통령의 선택은 세 가지로 모인다. 첫째 어떤 경우라도 현상을 모면하려는 거짓말이나 어설픈 행동을 하지 말기 바란다.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에 대해서도 국민에게 변명하거나 사태를 호도하려 들지 말고 매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설명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모습이 바람직하다. 절대 즉흥적으로 말하거나 처리하지 말고 신중하게 검토하고 숙고해서 역사에 기록하듯이 처신하기 바란다.

둘째 정부를 다시 짜고 사람을 다시 썼으면 한다. 이 정부로는 더 이상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 이미 금 간 그릇을 자꾸 땜질하려 들지 말고 새 그릇을 장만해야 한다. 지금 이 대통령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형(兄)도 아니요, 정적도 아니요, 여당도 아니고, 야당도 아니다. 아쉬워도 할 수 없다. 누구는 '마누라와 자식 빼고는 다 바꾸는' 자세를 말했다지만 지금 국민의 입장에서는 'MB 빼고 다 바꾸는' 쇄신이 절실하다는 것을 이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 대통령은 자신의 과거, 예를 들어 현대 CEO, 서울시장, 청계천… 이런 것들을 깨끗이 잊어버려야 한다.

남은 것은 이 대통령이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일이다. 정치적 도박이라고 해도 좋다. 그에게는 신뢰와 권위를 회복할 시간과 집중력이 필요하다. 국민에게 시간을 달라고 하고 최선을 다해, 사력을 다해 자신이 선택됐던 '의미와 가치'에 충실하게 임한 뒤 자신의 거취를 결정한다는 각오로 국민 앞에 서야 한다. '촛불 분위기'의 연장선상에서 5년을 지리멸렬하게 가는 것은 대통령의 길이 아니다. 하는 일마다 시청 광장에 모인 반대자들이 자신에게 이렇게 하라, 하지 마라 하며 '명령'하는 수모를 당하며 사는 것은 대통령의 삶이 아니다. 오늘의 사태도 그 때문이었지만 이 대통령의 최대 취약점은 항상 타이밍을 놓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