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앙칼지고 긴 비명을
바로 옆에 서 있던
20대 여성이 질러댔다.

패밀리마트 부근에서
청년들이 우르르 달려가더니
전경들에게 사지를 붙잡혀 들려가던
청년을 구출해서 돌아왔다.

오늘 0시7분.
광화문 네거리
감리교본부 빌딩 옆 대로에서
경찰이 물대포를 쏘면서
시위대를 밀어붙인 직후에
목격한 장면이다.

버스정류장에서
비명을 질러대던 여자는
한참 숨을 헐떡이더니
일행인 듯한 남자가 와서
눈물을 닦아주자 진정하고선
비각쪽으로 건너갔다.

청계천 입구 네거리
태평로로 밀려난 시위대는
픽업트럭 위에서 방송하는
지휘부의 지시를 잘 따르고 있었다.

조선일보-코리아나호텔쪽은
한바탕 격전을 치른 뒤끝이라
현관 불마저 꺼져 깜깜했다.

'시청역 1번 출구에서
사복 경찰과 크게 붙었다'

누군가의 외침에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뒤를 밟아 가는데
덕수궁 담벼락에 붙은
커다란 대자보 넉 장이
눈에 들어왔다.

고시철회
명박퇴진
말로만 듣던 '맞불'찌라시를
대형확대한 것이었다.

대한문 앞을 지나
(지하철)1번 출구 조금 못미쳐
왼쪽 구두수리 노점 뒷벽에다
한 40대 후반의 남자을 몰아놓고
시위대들이 욕설과 주먹질을 퍼붓고 있었다.

상의가 찢어진 채 겁에 질린
가련한 사나이를
한참 동안 들들 볶아대더니
대책본부로 가자면서
시청앞 광장으로 끌고 갔다.

교통정리하던 경관 5-6명이
그를 구출하려고 다가오자
군중이 뺑 둘러서서 윽박지르니
뒷걸음질치고 말았다.

사나이가 끌려간 곳은
재능빌딩 건너편
진보신당 인터넷방송 칼라TV
방송본부 캠프.

캠코더와 카메라들이
포진한 가운데
의자에 달랑 앉혀놓고
수십명이 뺑 둘러서서
인민재판을 진행하고 있었다.

중구난방 떠드는 질문과
체념한듯 뱉는 대답으로 미루어
사복형사가 시위가담자를 연행하다
붙잡혀 봉변을 당하고 있었다.

한 시위자를 오래동안 지켜보다가
잽싸게 붙잡아 스타렉스 뒤로 태우고
문을 닫는 순간 시위대에 들켜 붙잡힌 것이었다.

말깨나 하는 친구는 다 나서서
미란다 원칙이니 별걸 다 들먹이면서
경찰도 아니면서 선량한 국민을 납치해서
돈을 뜯으려고 하지 않았느냐는 등등
별의별 질문을 다 던지는데
대답이 시원찮다 싶으면
마구 욕설을 하면서 윽박질렀다

심문 도중에 MBC에서 온다며
반가워들 하다가 막상 와도
화끈한 기사감이 안된다 싶었는지
김이 빠진 분위기였다.

3단 사다리에 올라선 카메라 기자도
이왕 왔으니 찍는 시늉이냐 하자는 듯이
별다른 의욕을 보이지 않았다.

반시간쯤 지났을까?
아까 밀려났던 교통경관 대여섯명이
경위 한 명과 함께 플라자호텔 건너편에서
다가오는 게 보였다.

호르르르
잽싸게 호루라기가 울리면서
우르르 몰려 가더니 경관들을 에워싸고
못 온다고 막으니 옆으로 비실비실 물러난다.

하도 안쓰러워
그중 대장인 듯싶은 이에게 물었다.
아무리 그렇다해도 오늘 같은 날
근무복 차림에 맨손으로 나오면 어떡 하느냐?
경찰관은 물끄러미 쳐다보곤 아무 대답도 안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민재판을 뒤로 하고
광장을 둘러보니
플라자호텔 앞 천막에선
노래소리가 흘려나오고 있었다.

광화문 네거리 쪽으로 돌아오니
조선일보-코리아나호텔 앞에
전경들이 방패를 들고 포진해서
시위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소강상태인 것 같았다.
시위대 본부는
예전 위치를 고수하고 있었다.

동화면세점 앞으로 해서
네거리 횡단보도로 오니
막 차량통행이 재개됐다.

샛골목으로 해서
집에 도착해 615TV를 보니
낯익은 얼굴이 진행하고 있었다.

6월10일 저녁
그날 처음 마이크를 잡았다던 신출내기가
그새 베테랑이 되어 주절주절 잘도 읊었다.
이름은 최한욱.

'지난번에 6-25기념식을 봤는데
원수를 무찔러 어쩌고
2008년도에 이거 무슨 짓입니까.
다른 나라에서 다 욕 먹어요.

이명박이 소셜리스트라고 하면서
경찰 앞에서는 평등한가 봐요
다 잡아가니
초등학생도 국회의원도 스님도…

정주영 회장이 갔다와 갖고
평양이 기름덩이 위에 둥둥 떠 있다고 한게
1998년의 일입니다.'

남북협력을 하면 잘 산다는 등
일류 선동꾼이 다 됐다.
때마침 경찰의 진압이 시작되자
앵커는 피치를 올렸다.

'민주당의원들이 스크램을 짜고 막아섭니다
이것이 10년 전으로 돌아가네요.
10년 정권 잡았다고 배에 기름이 끼여서…

이명박이 아침이슬 모릅니다.
이명박이 대학 다닐 때
양희은이 아직 어렸고
63세대라 아침이슬 몰라요
이명박은 입만 열면 거짓말입니다.'

그럴까?
불법시위 엄정단속을 공언한 지가 언제인데
국무총리까지 나서 엄정단속을 다짐한
바로 그날 저녁에도 전날보다 수가 확 줄어든
불법시위대를 제대로 진압 못하는 정권이니
시위대조차도 조롱하는가 보다.

119신고를 받고
조선일보 앞으로 달려갔던
소방차들도 불법시위대에 붙잡혀
물을 다 빼내고서야 겨우 빠져 나갔다며
신나게 떠드는 멘트에서

비겁하고 나약한 대통령 때문에
공권력의 첨병인 경찰과 소방관들만
죽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