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을 구제금융 대상국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기사가 자주 나온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세 신문, 즉 월스트리트저널, 파이넨셜 타임스, 뉴욕타임스가 비슷한 보도를 했다. 한국 정부는 IMF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해명한다. IMF와 그 어떤 협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늘 李明博 대통령은 '외환위기는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연설했다.

한편 IMF는 아이슬랜드에 대해서 21억 달러,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165억 달러의 구제금융 지원을 해주기로 했다. 파키스탄과 헝가리는 IMF를 상대로 구제금융 지원에 대해서 협상중이다.

IMF는 미국發 금융위기에 휩쓸려 든 개발도상국을 살리기 위해선 현재의 구제금융 규모인 2000억 달러를 1조 달러 수준으로 늘려야 한다고 선진국의 중앙은행들에 호소하고 있다. IMF는 특히 브라질, 南아프리카, 터키, 한국 같은 나라들에 주목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기초가 튼튼하고 경제운용도 건전한데, 미국發 금융위기에 말려 들어가 외화자금을 제대로 구하지 못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국가不渡가 날 나라도 있다. IMF는 이들 나라에 대해서 구제금융을 제공하더라도 조건을 붙이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1997년 IMF는 한국에 300억 달러의 지원을 하면서 여러 가지 개혁안을 조건으로 달았었다. 일종의 징벌적 조건이었다. 이번에 IMF는 브라질, 한국 등에 대해선 돈만 빌려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실상이 이러한데도 정부는 IMF의 도움을 받는 것은 1997년 IMF 관리체제의 再演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가능성이 언급되는 것에 대해 매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IMF의 지원을 받는 게 과연 수치스러운 것일까? 더구나 IMF는 구제금융 지원에 별도의 조건을 달지 않겠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국제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모습인데, 이것이 과연 국가적 수치인가?

97년의 IMF 관리사태를 악몽처럼 간직하고 있는 관료들은 IMF라는 말만 나와도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보인다. 과거의 기억에 너무 집착하면 달라진 세상을 맞을 수가 없다. IMF가 한국의 억울함을 이해하고 도와주겠다고 나선다면 굳이 이를 거절할 필요가 있을까? 한국이 IMF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은 국제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한국이 IMF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는 뉴스가 나가면 이는 證市를 안심시킬 것이다. 한국이 국가不渡 사태로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안심감을 줄 것이다. IMF를 굴욕의 상징처럼 생각하는 것은 97년식 발상이다. 지금 우리는 2008년에 살고 있다. 미국을 제외하면 그 어떤 나라도 국가不渡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우리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거의 전적으로 미국 금융위기 때문이다. 한국만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부끄러워할 이유가 없다. 한국이 IMF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창피한 일이 아니라 든든한 일이다. IMF란 말에 너무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이다.

오늘 뉴욕타임스 칼럼에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먼은 러시아와 한국을 예로 들면서 '정부는 외화 보유고를 많이 쌓아두었으나 민간기업이 외화 빚을 많이 지는 바람에 이들 시장의 硬착륙이 금융위기와 버금가는 두번째 위기를 부를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앞으로는 큰 소리를 치면서도 뒤로는 最惡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는 조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