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으로부터 2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박원순이 연일 여론을 향한 泣訴(읍소)작전을 펴고 있다. 순수 시민운동가인 자신이 거대한 국가권력의 탄압을 받고 있다며 국민이 자신을 구해주어야 한다는 식이다.

국정원 소송에 내심 캥기는 게 있긴 있는 모양이다. 소송 논거가 부당하다면 국정원을 맞고소하면 될 텐데 그러지는 못하고 구차하게 이 말 저 말 늘어놓으며 여론의 동정이나 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더욱 한심하고 가증스러운 것은 이 과정에서 박원순이 자신을 ‘힘 없는 피해자’로 부각하기 위해 ‘위장술’을 사용하고 있는 듯한 점이다.

그는 9월 23일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자선운동이라든지 희망제작소와 같은 우리 사회의 거버넌스를 증진시키기 위한 국민희망 프로젝트를 해왔는데 왜 나 같은 사람까지 사찰을 하고…”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보다 포지티브하고 긍정적인 운동을 많이 하고 싶은데 나를 이렇게 끌어당겨서 이런 문제를 만드는 정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도 했다.

이 말만 보면 그는 오직 거버넌스 확대를 위해 노력하는,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시민운동가인 것 같다. 또 그렇게 착각하고 있는 국민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의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자신의 ‘당파성(黨派性)’을 철저하게 감춘 기만책이다. 박원순은 시민운동가이면서 反정부 정치운동가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그가 야권의 차기 대선후보감으로 오르내리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박원순은 이 정부 들어서도 중요한 정치적 고비고비마다 反정부활동의 중심에 섰다. 반면 좌파 정권 10년간은 정부와의 유착관계 속에 자신의 ‘사업’을 쑥쑥 키워왔다. 이게 정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긴 말이 필요 없다. 지난해 이후 주요 언동을 살펴보자.

°법조계 877명 시국선언 참여(6.10)
- 노무현 수사관련 사과, 남북관계 복원 등 요구

°시민사회와 정치권의 소통을 위한 연석회의 합의문 발표(6.9)
- 대통령의 근본적인 정책 기조 전환, 미디어법 등 각종악법 강행처리 반대
* 백낙청 교수, 정세균 민주당 대표, 강기갑 민노당 대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 등 동참

°노무현 자살에 대한 정부 책임론 적극 제기(5.25)
- 사실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엄청난 비극적인 결심까지 하게 된 배경은 현 정부의 핍박이 좀 심각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지 않느냐

°‘정권’에 맞설 시민연대기구 구성 제안(‘08.9.24)
- 촛불승리의 완성을 위해 각 사회단체가 폭넓게 참여하는 조직화된 협의기구를 구성하자
* 이후 참여연대·한국진보연대, 민주노총,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이 주축이 된 ‘비상시국회의’에서 ‘민주주의와 민생을 위한 새로운 연대기구’
(민민연) 구성 합의

°이명박 대통령 취임 100일 기념 긴급 시국선언문 발표('08.6.2)
- 대통령이 (촛불사태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하고, 쇠고기 수입 협상과 대운하 사업, 공영방송 장악 시도 등을 즉각 중단해야
* 백낙청, 임종대 참여연대 대표,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한상렬 상임대표 등 동참

위에서 박원순과 함께 했던 인물이나 단체는 주로 오종렬, 한상렬 같은 종북주의자들, 민노총과 같은 시대착오적 좌파 단체, 그리고 민주당 민노당 등 야당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 10년간 과연 박원순이 정권을 향해 이런 反정부적 언동을 한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지난 두 정권은 큰 틀에선 잘했기 때문”이라는 궤변은 제발 늘어놓지 말자. 어떤 권력은 괜찮아서 별로 비난할 게 없고, 어떤 권력은 군사독재도 아니고 적법 절차에 의해 탄생한 권력인데 사사건건 투쟁하자고 덤벼드는 행태를 非정치적이라고 우기는 것은 정말 웃기는 일이다.

헌법적 정통성을 갖고 있는 권력 중에 걸핏하면 퇴진을 요구받을 만큼 일방적으로 비판만 받거나, 반대로 별로 비판할 게 없는 권력은 세상에 없다. 권력을 그렇게 흑백으로 나누어 보는 사람은 본인이 분명한 당파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은 “나는 현 정부가 무조건 싫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다. 그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나는 야권의 정치지도자가 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사람인데 (정부가) 오히려 자꾸 이렇게 키워주려고 하는 모양“ 이라고 말했다. 지독한 당파성을 이미 행동으로 보여줘 놓고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다거나 입당하지 않는다는 알량한 이유만으로 '나는 중립'이라고 말하는 그의 입이 가증스럽다.

박원순은 절대 순수 시민운동가가 아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 채 얄팍한 동정을 구하며 궁지를 빠져나오려는 행태는 참으로 옹색하다. 차라리 국정원, 정권과의 정치투쟁을 선언하라. “내가 정권을 미워했기 때문에 탄압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라. 그것이 참여연대를 오늘날 反정부·反한나라당 시민단체의 선봉으로 키운 박원순다운 선택이 될 것이다.
2009.9.24.

자유주의진보연합